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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무어의 ‘성모자상(聖母子像)’

성서와문화 2010.01.19 18:34 조회 수 : 1768

 
[ 작성자 : 최종태 - 조각가 ]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는 영국의 역사에서 셰익스피어만큼 존경받는 대 예술가이다. 영국의 조형예술을 세계 정상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 최초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의 친구인 허버드리드에 의해서 줄기차게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특히 194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고부터 국제적인 명성이 확고하게 되었다. 그가 1943년 노샘프톤 성당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만들게 된 데에는 운명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런던이 폭격되었다. 사람들은 지하대피소로 지하철 안으로 피난하였다. 헨리 무어는 1940년에서 1942년에 걸쳐서 무수한 피난민들을 그렸다. 그리고 한동안은 광산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일하는 광부들을 그렸다. 그는 전쟁의 참화를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수 많은 대피호의 그림들, 또 이 성모자상으로 하여 헨리무어는 대중의 마음속에서 확고한 위치를 얻었다. 전쟁이 예술가로 하여금 성모자상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그의 인도적 정신이 성모자상으로 승화 된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헨리무어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고전적인 균제미를 갖추고 있다. 그 이후 두 손으로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모자상과 인간 가족들이 조각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뉴욕의 근대미술관에서 대회고전이 열렸다. 그 전시회가 전후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비평가이며 무어 찬미가의 한 사람인 실버스터는 다음과 같은 말로서 이 예술가의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
“무어의 기묘한 변형적인 형태는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낄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어떤 본질적인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한번 인식되기만 하면 그 진리는 필연적으로 되어버린다. 처음의 놀라움은 금방 잊어버리고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며 합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사물과 자연은 한 천재의 손에 의해서 마음대로 변형되는데 그리하여 새로운 자연으로 변신한다. 새로운 보편적 진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무어는 조각적 형태가 갖는 표현 가능성에 대해서 또 물질에 대한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예술과 휴머니즘의 문제에 대한 사색과 탐구에 일생을 바쳤다.


헨리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이 인간과 사회로부터 유리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지금은 추상적인 형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는 휴먼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형태에서 최상의 배경은 자연이다. 낮의 빛, 별들의 빛이 그것에는 필요하다. 나의 형태는 어디든지 간에 풍경 속에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헨리무어는 조각예술을 실내에서 야외공간으로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세계도처에 놓여져 있다. 잔디밭 위에, 나무들 사이에, 또 산언덕에 맑은 전원의 공기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놓여져 있다. 그는 인간을 주제로 하고 90의 긴 생애를 거기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성모자상을 만들게 된 시기는 가장 창작욕이 왕성한 때였고 전쟁으로 인한 위기상황 속에서였다. 아마도 이 모자상은 무어의 전 생애에 걸친 제작생활 속에서 대표적인 걸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무어의 평생 후원자였던 허버드리드는 종교와 예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다.
“예술과 종교의 관계는 우리들이 당면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이다. 옛날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는데 약500년 전에 전 유럽에서 결렬의 징후가 나타났다. 이른바 르네상스라는 시기였다. 예술은 독립적이고 자유롭고자 했다. 예술의 본질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술가의 개성 이외의 것들을 가차 없이 제외하려 하였다. 마침내 예술은 통일감을 잃어버렸고 조화의 결핍을 가져왔다. 예술과 종교 사이에서 그것을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였다 하더라도 위대한 예술을 만든 사람들의 생애를 잘 관찰해 보면 종교적 감수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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