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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ⅡⅩⅢ - ‘그들의 사생활’

성서와문화 2010.01.19 18:31 조회 수 : 1260

 
[ 작성자 : 김 순 배 - 피아니스트 / 평론 ]

 
모(某) 지면에 연재하는 칼럼을 위해 ‘그들’의 ‘뒤’를 캐면서 저는 무수히 시험에 들곤 합니다. 그들의 음악만 듣고 마냥 감탄할 때는 알지 못했던 인간으로서의 그들, 좋게 말하면 위대한 작곡가들의 ‘인간적인 면모’ 혹은 그들의 ‘어두운 구석들’ 때문이지요. 적어도 그들은 나 혹은 우리와는 무언가 다를 줄 알았던 겁니다. 우리들의 우울한 나날들을 햇살처럼 밝혀주기도 하며 단지 그것 때문에 마구 살고 싶게도 만드는 지고지순의 음악을 만든 주체(主體)들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지닌 인간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사춘기의 아이들처럼 배신감에 망연자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이건 마치 어릴 적 경험했던 ‘예쁘고 멋진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았다’라는 무지막지한 착각과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지요.


위대한 작곡가들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행동양식이나 나아가서 삶의 거점까지 바꿀만한 중대 사안이었습니다. 우리의 바흐 선생께서도 단지 월급 얼마 더 준다는 이유로 직장 옮기기를 수회 하셨고 (망설인 횟수까지 첨가하면 더더욱 많지요.) 말년을 돈 없어서 비참하게 보낸 분들이 ‘Monsieur 모차르트’를 위시해서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예 생업으로는 다른 것을 하고 음악에는 순정(純情)만을 바친 이들도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유복한 일생을 보낸 작곡가들이 일단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건 생각할 여지를 심하게 남기는 게 사실이군요. 남들보다 훨씬 더 ‘오리지널’한 음악을 남긴 분들에게 이 현상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역으로 그저 그런, 당대에 소비되고 말 일회성 작품들을 열심히 생산 해 낸 분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별로 들은 바 없으니 과연 이는 무엇을 말함인지요?


여자관계, 자주는 남자관계도(!)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신이었거나 극히 복잡했으며 한 여자만 바라보다가 기어이 끝이 안 좋았다거나 다중적인 성향을 지니는 등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들의 사생활은 보통을 넘어서는 피곤한 양상을 자주 보여줍니다. 혹 알고 계시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특히 19세기 낭만 작곡가들의 이성관계(더불어 ‘동성관계’)는 그들 앞에서 표했던 경의를 다시 거두어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만큼 참으로 착잡한 것입니다.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평안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 쯤은 그들의 비범함을 인정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사랑하는 그들에게는 모종의 심층 심리학적, 정신 병리학적으로 문제가 공통적으로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특히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은 치유되지 못할 정신적 트라우마(trauma)를 마치 영구적 문신처럼 지니고 있었더군요. 많은 경우 그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연유되었고 일생 그들을 따라다녔으며 당연히 그들의 작품에 음으로 양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는바 빼어난 작곡가들은 어떤 식이든 그 상처들을 창조적으로 사용하기는 했지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음악은 그들 당사자들에게도 ‘출구’이자 ‘위로’였을 것입니다. 자정작용(自淨作用) 혹은 자가치유(自家治癒)의 한 방식으로써의 음악 만들기라고나 할까요.


서양 국적의 그들이 신과의 관계에서 설정한 자신의 아이덴티티 또한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 내지는 암호가 됩니다. 때로는 불화했거나 때로는 친화했고 혹은 한껏 헤맨 후 결국 투항을 택했던 그들. 물론 가시적으로 남은 기록에만 의존해 그들의 깊은 내면 정황을 추측하고 단정 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이념에 적극 동조했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과연 그들 정신의 몇 퍼센트를 그것에 내주었는지 우리가 속속들이 알 길은 없습니다.


어떻든 그들은 보통사람들인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과장되게 삶의 여러 국면들을 온 몸으로 통과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대가로 불멸의 보석 같은 음악들을 토해 놓았구요. 잠시 그들 사생활의 어지러움에 시험 들었던 저는 다시금 생각하기를 그 어지러움이란 그들 음악의 광채를 몇 배로 돋보이게 할 유난히 짙고도 어두운 배경은 아니었는지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나 ‘현악 사중주’를 들으며 매일 저녁 집에 가는 길, 골목마다 창궐했던 홍등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던 이제는 생각하면 가슴 저릿하게 애처로운 작곡가의 일상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음악이 전해주는 환희와 숙연함 사이 어딘가에서 그를 기억할 뿐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처음 받아들인 것은 그들의 음악이었고 결국 그들의 사생활이란 이제 사랑하기 때문에 크게 숨쉬고 껴안아야 할 그들의 그림자 또는 그들의 거품같은 ‘alter ego’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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