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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

성서와문화 2010.01.19 18:29 조회 수 : 1355

 
[ 작성자 : 이 광 호 - 철학, 연세대교수 ]


1. 대기만성형의 학자
퇴계 선생의 탄생 500주년이 되던 해에 「퇴계(退溪) 이황 사상의 종교적 성격」이라는 제목으로 『성서와 문화』에 글을 실은 일이 있다. 이글에서 필자는 “천명론(天命論)과 리발설(理發說)을 중심으로 한 퇴계의 종교적 성향은 이벽(李蘗, 1754~1806)과 정약용(丁若鏞,1762~1836)을 비롯한 남인계 유학자들에게는 유학과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는 사상의 고리가 되었다고 보여진다.”고 하였다.
퇴계는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영원한 진리를 태극, 리, 하늘 등 여러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삶은 영원한 진리에 대한 열망과 사랑과 기쁨과 환희로 충만하다. 영원한 진리를 중심으로 한 그의 삶은 동양적으로 말하면 도학자이지만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종교적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열망과 사랑을 기쁨과 환희로 승화시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퇴계는 어려서부터 유가경전을 공부하며 유학사상의 수기와 치인을 두 기둥으로 삼는 이상주의 사상체계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수양을 통한 자기완성과 자기완성에 기초하여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유학의 강령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완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리고 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유학의 이상은 이렇게 높은데 자신이 살고 있던 조선조 사회의 현실은 어떠하였던가? 퇴계 선생은 수많은 선비들이 끊임없이 유배되고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사화의 시대를 살았다. 사대사화(四大士禍) 중에서 무오사화(1498)만 제외한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는 모두 그의 생애 중에 일어났다. 을사사화 때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형이 죽음을 당하였으며, 자신도 화를 당할 뻔하였다.
퇴계는 유학을 국교로 삼는 조선왕조 사회에서 유학자라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참혹한 화를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땅이 좁아 사람이 엷은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자들의 학문이 지극하지 못한 탓”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학자들이 학문을 통하여 진리를 인식하고 진리인식에 기초하여 덕성을 함양하고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높은 식견을 길러야만 화를 당하는 일이 없이 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충 아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흐리멍덩한 태도를 싫어한 퇴계는 오랜 침잠과 축적을 통하여 진리와 자신이 하나가 되기를 기다린 다음에야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53세 이후에야 그는 저술을 통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자신이 얻은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시작하였다. 한 번 붓을 들기 시작하자 막혔던 호수가 터진 듯 시대를 가름하는 작품을 끊임없이 발표하였다. 그 뿐 아니라 제자들과 깊고도 자상한 토론을 전개하며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쏟아 놓았다.


2. 그의 ‘위기지학(爲己之學)’
그러면 퇴계가 성취하여 후세에 전한 학문은 어떠한 학문인가?
그의 학문은 물론 유학이며 성리학이다. 유학은 수기와 치인을 두 기둥으로 삼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성리학은 이 두 기둥 중에서도 수기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데 주희(朱熹, 1130~1200)를 가장 존경하고 주희의 영향을 크게 받은 퇴계는 ‘수기(修己)’를 더욱 강조하였다. 수기란 자기자신을 수양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수양하여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도모하는 학문은 자기를 위한 학문이라는 뜻에서 ‘爲己之學’이라고 불리우고, 또는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성학(聖學)’이라고도 불리운다.
그런데 오늘날의 의미에서 볼 때 과연 ‘爲己之學’ 또는 ‘聖學’이 학문이 될 수 있는가?
오늘날을 대표하는 학문은 과학이다. 과학은 대상이 없으면 탐구하지 못한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대상세계가 가진 비밀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것이 과학이다. 그런데 ‘爲己之學’과 ‘성학’이 추구하는 학문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자기자신이다. 자기자신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다. 주체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대의 심리학은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다. 마음을 대상화하지 않고 삶자체로서 연구하는 학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서구의 객관주의 학문에 익숙하게 된 오늘날의 학자들이 동양의 사상을 대할 때 제기하게 되는 의문이다.
그런데 퇴계는 객관적인 학문을 거의 말하지 않았다. ‘爲己之學’과 ‘성학’을 주로 말하였다. 그가 만년에 저술한 대표적 저술은 『성학십도』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爲己之學’을 강조하고 “군자의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爲己之學)은 깊은 산 무성한 숲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일토록 향기를 발하는 난초의 삶과 같다”고 하였다. 퇴계가 현대인에게 주는 가장 큰 소식은 이 과학의 시대에 과학과는 다른 학문의 세계가 있으며, 이 학문이야말로 현상세계의 대상적 진리만을 다루는 세계가 아니라 현상세계의 근원인 영원한 절대진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길을 열어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퇴계가 평생을 바친 학문은 사실 퇴계만의 학문은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불교와 노장사상과 유학은 서로 간의 특수성은 있지만 과학이라는 학문과 대비한다면 모두 퇴계의 학문과 유사한 면이 있다. 서양에서는 희랍시대 이래 자연을 대상화시켜 연구하는 방법인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종교라고 하여 학문의 영역 밖으로 취급하였다. 서양에서 과학과 종교는 이렇게 해서 분리되게 되었다.
퇴계는 인간이 현상세계를 넘어 절대불변의 진리에 학문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진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理)’는 지극히 텅 빈 것이면서 지극히 알찬 것이오(至虛而至實), 지극히 없는 것이면서 지극히 있는 것이오(至無而至有), 움직이되 움직임이 없고(動而無動), 고요하되 고요함이 없는 것이며(靜而無靜), 깨끗하고 맑아(潔潔淨淨) 조금도 더할 수도 없으며 조금도 덜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음양오행과 만물만사의 근본이면서 음양오행만물만사 가운데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허와 실, 유와 무, 동과 정을 포괄하면서도 그러한 상태를 넘어서 있어, 사람의 힘으로 줄이거나 더할 수 없는 영원불멸의 실재하는 세계를 진리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진리의 세계는 모든 현상의 뿌리가 되어 현상 가운데 있지만 현상 가운데 구속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역시 이 절대진리의 산물이며, 사람 몸의 주인인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진리가 들어와 본성으로서 자리잡고 주인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학문은 안과 밖이 없는 절대진리에 대한 참다운 이해와 참다운 이해에 기초한 실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거경(居敬)과 궁리(窮理)와 실천(實踐) 이는 그의 학문의 세 축이다. 거경이란 공경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며, 궁리는 진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거경으로 내면에 있는 진리를 함양하고 궁리로 안과 밖에서 조화를 이끌어가는 진리를 훤하게 비추고, 실천을 통하여 자신과 진리가 하나되는 삶을 지향한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이 학문을 하고 도를 닦음에 잘못됨이 많은 이유는 ‘理’자가 알기 어려워서 그렇다. ‘理’자를 알기 어렵다는 것은 대강 아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참되게 알고 오묘하게 이해해서(眞知妙解) 완전한 앎에 이르는 것(到十分處)이 어렵다는 것일 뿐이다.”


거경과 궁리로 진리를 참되고 오묘하게 이해하고, 아울러 의(義)를 실천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되는 삶을 통하여 얻게 되는 삶의 즐거움을 완락재(玩樂齋)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경을 주로 하되 의를 쌓는 공부를 해야 하니, 잊지도 않고 조장도 하지 않으면 진리와 차츰 융통하게 된다네.(主敬還須集義功。 非忘非助漸融通。)
주렴계가 만한 태극의 오묘한 데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리의 즐거움이야 천 년 전과 지금이 같음을 믿게 되었네. (恰臻太極濂溪妙。 始信千年此樂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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