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7년 성서와 문화

인생을 가득히

성서와문화 2010.01.19 18:29 조회 수 : 1270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1. 와서 아침을 먹어라


신선한 아침 바닷가에 오신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고기 잡는 비결을 일러 주셨다. 그리고 그는 모래밭에 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물고기를 굽고 있었다.
스승의 지시에 따라 많은 고기를 잡은 제자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조반을 영어권에서는 breakfast라고 한다. fast란 금욕적인 단식을 뜻한다. 경건한 종교적 행위이다. 이러한 단식을 깨버리는 것(break)이 아침식사요,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이었다.
율법에 충실했던 바리세인들과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때에 따라 단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겠는가?” (마가 2:19)


신랑은 그리스도시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어찌 두려움과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찬 혼인 잔치이다.


2. 인생을 가득히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의 가나라는 마을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까지 초대되어 참석하고 있었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흥을 돋우어주는 음료이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다. 잔치의 흥이 깨지게 된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일꾼들에게 말했다. “뜰에 빈 항아리 여섯 개가 있지 않느냐.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워라. 그 다음에 이것을 떠서 잔칫상으로 가져가거라.” 일꾼들은 이에 순종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좋은 포도주였다.(요한 2:1-10)
물은 일상적인 것이요, 포도주는 값지고 특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말씀 안에 살 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맛있고 흥겨운 포도주로 변한다. 그를 믿고 받아드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을 주신다.(요한 1:12) 그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특권이다. 잔치 인생이 전개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에 이르기까지 여섯 개의 빈 항아리가 주어져 있다. 삶이란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작업이다. 제7일은 주님의 날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항아리에 채워져 있는 만큼의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마다 채우는 물의 양이 다르다. 어떤 이는 겨우 바닥에, 어떤 이는 중간쯤까지, 그리고 어떤 이는 주어진 하루를 가득히 채우는 삶을 살아간다. 비록 다 같이 엿새를 살았다 해도 바닥에 겨우 물기가 남는 인생과 가득히 산 인생과는 그 양과 질이 다르다. 오래 사는 것만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가득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요한 10:10)


3. “153”의 비결


예수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은 그들의 그물이 찢어질듯이 많은 물고기들을 잡아 올렸다. 큰 고기만도 무려 153마리라고 했다. 이 숫자는 풍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153인가. 이 숫자가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예로부터 분분해 왔다.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가 1:17) 하신 선교적 사명의 빛에 비추어서, 153은 세계인종의 전체 수를 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수리적으로 풀이한다. 1에서부터 17에 이르기 까지 모든 수를 합산하면 153이 된다. 17의 10은 십계명이요, 7은 성령의 은사를 뜻한다. 그러므로 153은 성령의 은사로써 계명을 완수하게 될 때 풍요로운 인생이 성취됨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다.(어거스틴)
또한 어떤 이는 100과 50과 3을 따로 따로 읽는다. 100은 하늘나라에 충만할 이방인들이요, 50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요,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한다고도 했다.
153은 시각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게 하는 하나의 신비의 숫자로 남아있다.
나는 풍류도의 시각에서 이렇게 풀이한다.
1은 하나님이요, 5는 나(吾)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한 14:20) 곧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삼태극이 된다. 3이란 곧 삼태극을 뜻한다. 이러한 삼태극 관계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우주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며, “한 멋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153’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이요, 복음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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