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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식문화 단상

성서와문화 2010.01.19 18:28 조회 수 : 1553

 
[ 작성자 : 김 윤 옥 - 여성신학 ]

 
독일생활 13년은 나에게 독일을 제2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두 아이들이 독일에서 살고 있고 여섯 손주들이 거기에서 자라나고 있어서 더욱 애정이 가는지 모른다. 처음에 독일에 도착했을 때는 많은 문화 충격으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반독일인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내가 한국을 떠났던 것은 1975년 봄이었으니 한국은 한창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독일은 한창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고 내가 귀국한 1988년까지는 독일교회 목사들이 표현하듯이 “참 그 때가 좋은 때”였다.
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이델베르그에 도착한 나는 당장 식생활 문화에 적응을 해야 했다. 주변의 슈퍼에 가보면 한국시장에 있는 식료품과 전혀 다른 것들이 깨끗이 종이봉지에 포장되어 있었고 야채도 빈약해서 김치를 위한 배추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무우와 항가리 고춧가루를 사서 깎뚝이를 담아보았더니 그 고춧가루가 이상한 향기가 나서 망쳤던 기억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감자와 고기가 주식이다. “루터가 독일을 흔들었고 프랑시스 드레이그가 그것을 진정시켰다. 그는 독일인에게 감자를 주었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감자는 끼니마다 반드시 접시에 올리는 주식이다. 독일인 기질을 실리적이라고 표현하는데 독일요리를 보면 그런 기질이 잘 나타나는 것 같다. 근면하고 회색으로 흐린 날씨들을 인내하며 시간약속을 잘 지키고 손에 들어오는 식료품이 한정되어 있는 사람들의 요리가 바로 독일인들의 요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인의 요리는 섬세함 보다는 만복감을 중요시한다. 옛날 유머어로 독일요리의 유일한 결점은 먹은 후 며칠 지나야 배가 고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 아들이 지금 살고 있는 뮌헨 시내 카우핑거스트라쎄에는 어거스틴이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에서 독일인들이 즐겨 먹는 슈바인스학세(일종의 돼지 족발요리)를 시키면 3인분가량의 산더미 같은 돼지다리가 사우어크라우트라는 김치찌개 맛이 나는 양배추 요리와 함께 나온다. 1980년 중반부터 유럽에서는 건강과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고기의 섭취량을 줄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독일인들만은 유유히 그런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다.
독일요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구트 뷜거릭헤 퀴헤(좋은 시민요리의 뜻)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두터운 고기 한 덩어리에 감자나 파스타를 곁들이고 새러드 접시가 붙어있는 세트를 말한다. 나도 이것을 즐겨 먹는데 그 맛은 대도시의 레스토랑이나 시골 길가의 레스토랑이나 똑 같다. 계량화하고 같은 재료와 향료를 사용하는 정직한 요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대 오랜 불황시대를 끝내고 다시 고기가 여유있게 나오자 독일 사람들은 경쟁하듯이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에 감자 한 개로 지낸 적도 있다고 하이델베르그의 마가렛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독일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돼지이다. 비교적 쉽게 사육할 수 있는데다 큰 덩어리를 먹으면 필요한 영양소와 칼로리를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 나아가서 요리연구가의 말에 의하면 독일인의 유전자에는 몇백년전부터 고기는 돼지고기가 제일 맛이 있다고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인들은 돼지의 울음소리 이외의 모든 부위를 요리한다”는 격언도 있다. 그리고 그 요리는 참으로 맛있고 풍부하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에게는 독일생활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이런 점이었다.
지금도 해마다 독일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나는 소고기로 된 ‘좋은 시민요리’를 주문하는데 그러면 왜 맛있는 돼지고기는 먹지 않지 하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는 프로이라인을 참아야 한다. 이 동양여자는 요리의 맛을 몰라 그런 얼굴이다. 독일인 특유의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기도 하다. 나는 돼지에 알레르기가 있어요 미안해요 라는 불필요한 변명을 덧붙혀야 할 정도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하는 말로 프랑스요리는 요리이지만 독일에는 요리가 없고 저장식품 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부어스트라는 소시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샤르르 드골이 275종의 치이즈가 있는 프랑스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 말이 유명한데 1500종의 부어스트를 가진 독일의 통치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원래는 버리는 고기부위로 만드는 것이여서 빈곤층이 먹었던 이 부어스트는 곧 독일민중의 사랑하는 식품으로 자리하고 지금은 지방마다 지역마다 자기들의 자랑스러운 부어스트를 만들어 먹고 있다.
향료나 채워진 고기의 종류에 따라 부어스트의 맛은 천차만별이다. 독일인들의 말에 의하면 가장 맛있는 부어스트는 튜링거(튜링겐 산)와 손가락 크기의 뉴른벨거(뉴른베르그 산)이고 내가 살았던 프랑크프르트의 프랑크프르터는 미국의 핫도그의 선조인데도 독일에서는 좋은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독일생활에서 여행도 하며 이것저것 맛을 보아서인지 우리는 지금도 한국에서 만들어 놓은 소시지는 도무지 먹지 못한다. 그 풍미가 이상하기 때문이리라. 김치 맛이나 불고기 맛이 나는 부어스트라니.
고기요리에 곁들이는 야채로 독일인들은 양배추를 즐긴다. 독일어로 ‘크라우트’라고 하는 양배추를 많이 먹는다 해서 영국인들은 독일인을 크라우트라고 멸시하는 호칭으로 부르지만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페이지는 영국에는 야채가 세 가지인데 그 중 두 가지는 양배추이다 라고 말해서 사실 영국 야채의 빈곤을 더 비꼬고 있다. 이 크라우트를 독일인들은 물에 삶아낸다. 원래 물에 고아내는 것이 독일식 야채요리법인데 이때에 야채가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고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이델베르그 대학가에 자리잡은지 얼마 되지 않아 칼스루에에서 살고 있는 프리드리히 목사의 초청을 받았다. 프리드리히 목사 부부가 우리 부부를 환대하는 동안에 그 집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서 한국인인 나로서는 앉아있기가 편안하지 못했는데 그 요리의 야채가 어찌나 푹 고아졌는지 입안에서 녹아버려서 나는 노인이 자기가 먹기 좋으라고 만들었구나 했다. 후에야 그것이 전통적인 독일 야채요리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독일 사람들은 아들의 손님은 아들부부가 환대하고 자기는 요리를 해주는 것이 옳다고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시부모들이 생각을 해 볼 대목이 아니겠는가.
독일의 문호 하이네는 독일인 식탁에서 제일 자주 볼 수 있는 검소한 감자를 찬양했다. 유럽의 다른 지역처럼 독일에서도 감자는 16세기가 되어서 알려졌다. 그러다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감자를 절찬하면서 감자먹기가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조리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북부지방이나 남동부 지역에서 많이 먹고 남서부는 국수로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감자요리로만 끼니가 되는 요리도 많다.
우리가 프랑크프르트에서 살 때 오펜바하라는 작은 도시에 헤쎈주 지방의 목사들이 모인 적이 있었는데 살츠카토펠이라는 삶은 감자요리가 큰 그릇에 가득이 나오고 포도주가 풍부하게 놓였던 기억이 있다. 삶은 감자와 포도주를 마시며 저녁 내내 세계의 빈곤문제를 토론하던 그 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성인 나로서는 잊을 수 없고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독일 식문화는 오후 네시경의 카페에서의 크바치(잡담)이다. 오후 네시경이 되면 거리의 카페들은 여자들로 가득 찬다. 독일어로 카페라는 말자체가 늦은 오후의 케익과 커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느긋이 앉아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귀에 담고 잡담을 즐기는 그 시간은 참으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유럽의 식문화는 지금도 나에게는 한국음식 다음의 고향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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