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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모작 인생의 여유

성서와문화 2010.01.19 18:28 조회 수 : 1437

 
[ 작성자 : 박 명 철 - 신학 / 연세대교수 ]


오늘과 같이 바삐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인생의 여유”를 운운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빨리 빨리”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성공은 했지만 짧은 인생으로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살 것인가는 창조주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큰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 것이 농사방법 가운데 하나인 “삼모작”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벼농사나 밭농사를 할 때, 벼농사는 1모작 농사를 하고, 밭농사는 주로 2모작을 합니다. 그러나 태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3모작이 가능합니다. 기후와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에 따라 3모작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우리의 삶의 조건과 환경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3모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 번 인생을 산다면 우리의 생활에도 보다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때 유행했던 “9988234”와 같이, “99세까지 88하게” 사는 인생이 된다면 - 과거와 같이 짧고 굵게 사는 모델이 아니라 - 길고 멋진 3모작 인생을 계획해 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전에 노년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책 한권을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저자보다는 책 제목이 멋있어서 샀습니다. 그 제목이 “마흔에서 아흔까지”입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저자(유경)가 말하는 “노년”이란 - 무가치하고 폐기물처럼 쓸모없는 기력이 다 빠진 황혼기가 아니라 - 자기 “인생의 총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생의 시점이요 기회로 보고, 노년을 위해 중년에 꼭 해야 할 10가지를 저자는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건강은 필수”이며, “친구”가 있어야 하고, “부부관계는 안녕한지”,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지” 미리 마련하고, “죽을 준비” 또한 미리 하라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런 인생은 중년에 미리 준비하고, 생활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함으로 성취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의 통계보고는 한국의 가족주기에서 일정한 변화의 특징이 아래와 같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둘째는 자녀출산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셋째는 슬하의 자녀를 시집, 장가보내고 난 후, 부부만이 남아서 생활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 해방 전까지는 평균수명이 60세 전후였습니다. 50·60년대는 66세로서 5-6년이 더 연장되었습니다. 70·80년대에 와서는 75세로서 해방시기에 비해 약 15년이 연장되었습니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을 넘고 있습니다.
- 해방 전까지는 자녀출산이 평균 6명이었습니다. 60년대에 와서는 자녀 출산이 3-4명으로 줄어들었고, 70·80년대에 와서는 평균 2명으로 줄어들다가, 요즘은 1.3명으로 더 줄고 있습니다.
- 해방 전까지는 6명 자녀 가운데 막내자녀를 결혼시켜 출가시키는 기간이 장장 4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기간이 고작 1~2년에 불과했습니다. 60년대 와서는 부부만 남는 기간이 8년~10년으로 연장됩니다. 70·80년대에 와서는 막내를 출가시키는 기간이 28년으로 줄어들고, 반면에 부부만 남는 기간이 23년으로 길어집니다. 현재 평균수명이 80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40대 중반에 1명의 자녀를 출가시키고 나면 나머지 35년간을 부부만이 함께 사는 기간으로 남게 됩니다. 연세가 든 부부가 길고 긴 나머지의 인생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젊었을 때, 그 모든 정력을 다 소진시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단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라톤 경기와 같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완주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인생을 계획하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여유와 휴식이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게 새겨 봐야 할 과제가 됩니다.
나이 들어 늙게 되면, 노화로 인한 질병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이 기간을 “의존수명”이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의 평균 의존수명이 10년이라고 합니다. “9988234”에서는 의존수명을 2, 3일로 매우 짧게 설정하고, 이것을 ‘희망사항’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생 80 내지 90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의존수명, 10년을 뺀 나머지 70년 내지 80년의 인생을 신명나게 살 수는 없을까? 이것은 점차 우리의 현실적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배교수님의 퇴임기념회에 참가하면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도권에 묶여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하고 사셨는데, 이제부터는 맘껏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기 바란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사실, 여가란 “비의무적 자유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와 과제란 없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율에 맡겨진 시간입니다. 이러한 시간이 우리인생에서 얼마나 있을까? 노년기는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멋진 인생의 시작입니다. 고대 희랍의 인생관은 “꽃”에 비유했습니다. 꽃이 화려하게 피는 순간을 인생에서 최고의 정점으로 삼고, 이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인생을 “강”에다 비유하였습니다. 산중의 물줄기가 계곡을 타면서 냇물이 되고, 이것이 샛강이 되고, 샛강이 모아져 강줄기를 이루고, 이것이 이어져 망망대해(茫茫大海)로 흐르는 강에 비유하였습니다.
우리의 사고가 히브리 사람과 같이 생활에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삼모작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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