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7년 성서와 문화

음악 片紙 ⅡⅩⅡ - 순결한 신앙 그리고 음악

성서와문화 2010.01.19 18:27 조회 수 : 1368

 
[ 작성자 : 김 순 배 - 피아니스트 / 평론 ]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음악은 프랑스적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 내면성찰의 느낌을 진하게 담고 있습니다. 격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호소력을 지닌 그 음악의 분위기 탓에 뚜렷한 이유 없이도 그는 종교적인 성향을 지닌 작곡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를 대표하는 걸작 ‘레퀴엠(Requiem Op.48)’ 덕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고전음악 감상자라면 누구나 애호해 마지않는 ‘레퀴엠’ 한 곡으로 포레의 이미지는 이미 상당부분 결정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실상 포레의 종교적인 작품은 이 ‘레퀴엠’이 거의 유일한데도 말입니다.
수 십 년간 파리의 여러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던 포레이지만 정작 오르간을 위한 작품을 남겨놓지는 않았습니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종교적이고 고전적인 음악학습’을 위한 니더마이어 학교에서 교회음악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졸업 후 파리시내의 성당들을 전전하는 오르가니스트 시절을 오래도록 겪은 것이 오히려 포레로 하여금 음악적 자유를 더욱 갈망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포레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다녔던 학교와 이후에 이어지는 커리어의 성격상 종교음악과의 연대를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의례적인 행사를 위한 전통 추종적인 기존의 성당음악은 진정한 그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는 그의 음악정신이 너무도 참신한 상상력과 영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포레는 11년 동안이나 좋은 오르가니스트와 성가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었지요. 그런데 몇 군데의 부 반주자 자리를 거쳐 마침내 그가 정착하게 된 ‘마들렌 성당(Eglise de la Madeleine)’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터였습니다.
이곳은 파리에서 노트르담 성당 다음가는 유명하고 규모가 큰 성당으로서 52개에 달하는 거대한 코린트식 원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외관과 더불어 르네상스 풍의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내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마들렌은 파리의 부유하고 유명한 인사들의 집결소가 되었고 주일 미사 후에는 여러 가지 성격의 사교행사장으로 변형되었지요. 유력인사들에겐 이곳이 그들 집안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더없이 유용한 장소가 되어 준 것입니다. 이들이 성당의 운영에 여러 가지 지원과 편의를 제공했을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작곡가 포레에게 이곳은 불행하게도 일종의 환멸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카톨릭 신앙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교회체제의 부패와 변질을 그 누구보다도 괴로워했던 예민하고도 올곧은 성향의 음악가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래되고 묵은 전통에 사로잡힌 교회의 수뇌부들은 포레가 원하고 시도하는 어떠한 음악적 실험이나 혁신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음악적 이미지들을 실현하고자하는 창작의욕에 넘쳐있던 걸출한 예술가에게는 참으로 답답한 환경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렇게 마들렌 성당의 음악책임자로 일하며 모종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1888년 즈음 그의 분출하고픈 음악 혼에 불을 붙인 계기가 바로 ‘레퀴엠’에의 착수입니다. 이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전통에의 명백한 반항이었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이해와 칭송이 증폭되는 인간 포레의 절절한 신앙고백이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의 아름다운 표상이 되는 예술작품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포레는 우선 레퀴엠을 통상적인 미사곡 순서에 의거해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례 ‘연미사(죽은 자를 위한 미사’)에 따라 붙는 ‘Dies ire’(최후 심판의 날)을 아예 처음부터 넣지 않음으로 자신의 음악철학을 분명히 표명했습니다.
카톨릭 의전 음악인 레퀴엠 미사곡에 이토록 개인적인 소신과 음악 빛깔을 덧입힌 경우는 아마도 비슷한 시기 브람스가 만든 ‘German Requiem’을 제외하곤 유일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포레의 이 작품을 ‘French Requiem’이라 부르기도 한다지요.
우선 그 발상에 있어서 철저히 ‘산 자’들을 위로하며 내세를 향한 긍정적인 비젼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브람스와 포레는 닮아 있습니다. ‘레퀴엠 미사’곡의 순서배열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파격은 통하고 있지요. 포레의 레퀴엠에는 ‘Dies ire’가 생략된 대신 ‘Pie Jesu’, ‘Libera me’, ‘In Paradisum’등과 같이 전통을 벗어난 제목들이 배열하게 됩니다. ‘Dies ire’와 ‘Benedictus’대신 삽입한 ‘Libera Me(자유케 하소서)’와 보통은 하관식 때 읊어지던 ‘In Paradisum(천국에서)’은 의전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기도(Prayer)입니다. 그래서 그의 레퀴엠은 의례적인 진혼미사곡이 아닌 ‘죽음을 위한 자장가(lullaby for death)’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 당시, 유럽을 매료시켰던 베를리오즈나 베르디가 이미 펼쳐놓은 과장되고 실물대보다 지나치게 거창해 보이는 레퀴엠 작품들에 포레는 본능적인 반감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최후 심판의 날(Dies ire)’로 표상되는 필요 이상의 ‘종교적 겁주기’에 그는 이미 식상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것은 그가 마들렌 성당의 합창지휘자와 오르가니스트로서의 경험을 통해 익히 접했던 종교적인 ‘Cliche(상투어법)’라고도 할 만한 것들이었지요. 포레가 파악한 레퀴엠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간을 심판에 부치는 그런 무자비함이 아닌 천상을 향한 순수한 소망, 죽음이 삶보다 더 행복한 그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 따라서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위로를 뛰어넘는 최상의 위안으로서의 아름다운 진혼곡이 그의 이상(理想)이었던 것입니다.
포레의 레퀴엠은 그러니까 작곡자가 죽음을 보는 관점자체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죽음이란 심판을 목전에 놓은 자가 통과하는 고통스러운 관문이 아닌 행복한 구원의 시간, 천상에 있을 지복(至福)을 향한 비상(飛翔)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포레는 낭만음악의 끝자락 즈음에서 프랑스적 감성의 세련되고 미묘한 부분을 아름답게 드러낸 음악들로 널리 기억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레퀴엠은 이른바 종교음악이 점차 기세를 잃고 그 존재의미가 약화되는 시대에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오지요. 그가 기존의 전통적인 레퀴엠의 작법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의 매력은 배가됩니다. 비록 거의 평생을 봉직한 오르가니스트로서 실제적인 그 부분의 작품은 남기지 못했어도 포레는 ‘레퀴엠’을 통해 너무나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교회환경을 통해 느꼈던 속물성에의 환멸은 그의 음악이 전달하는 시리도록 맑고 순정한 고백을 통해 신앙의 순결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듯합니다. 거창하고 장황한 인본주의적 스타일이 높은 파고(波高)로 밀어닥쳤던 19세기 말 음악계에 놀라울 만큼의 희소가치를 지니며 오늘도 우리에게 끝없는 감명을 전달하는 포레의 작품들은 그리하여 오래도록 옆에 두어 사랑하고 어루만지고픈 음악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2007년의 성탄절을 맞으며 성서와문화 2010.01.19 1295
29 음악 片紙 ⅡⅩⅣ - 라흐마니노프의 ‘샤인’ 성서와문화 2010.01.19 1347
28 겸재(謙齋)는 왜 겸재인가 성서와문화 2010.01.19 1441
27 헨리 무어의 ‘성모자상(聖母子像)’ 성서와문화 2010.01.19 1765
26 시이나 린조의 『아름다운 여자』를 읽고 성서와문화 2010.01.19 1458
25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서와문화 2010.01.19 1262
24 수기치인(修己治人) 성서와문화 2010.01.19 1473
23 <성구명상> 자연과 신앙 성서와문화 2010.01.19 1403
22 울란바토르에 다녀와서 성서와문화 2010.01.19 1296
21 산촌의 아침 - 시를 쓰는 마음 (4) 성서와문화 2010.01.19 1444
20 음악 片紙 ⅡⅩⅢ - ‘그들의 사생활’ 성서와문화 2010.01.19 1260
19 간디의 “가장 창조적인 경험” 성서와문화 2010.01.19 1308
18 꽃이 있는 길 성서와문화 2010.01.19 1414
17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 성서와문화 2010.01.19 1359
16 인생을 가득히 성서와문화 2010.01.19 1270
15 신학자 바르트와 모차르트 성서와문화 2010.01.19 1292
14 독일인의 식문화 단상 성서와문화 2010.01.19 1535
13 삼모작 인생의 여유 성서와문화 2010.01.19 1438
12 꽃잎 같은 제의(祭儀)를 꿈꾸며 성서와문화 2010.01.19 1339
» 음악 片紙 ⅡⅩⅡ - 순결한 신앙 그리고 음악 성서와문화 2010.01.19 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