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6년 성서와 문화

秋史(추사)와의 아름다운 만남

성서와문화 2010.01.19 18:11 조회 수 : 1672

 
[ 작성자 : 허 영 환 - 미술사가 ]


秋史의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
방 가운데 노인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몸은 자그마하고, 수염은 희기가 눈 같고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눈동자는 밝기가 칠같이 빛나고, 머리카락이 없고, 스님들이 쓰는 대로 짠 원모(圓帽)를 썼으며, 소매 넓은 두루마기를 헤치고 젊고 붉은기가 얼굴에 가득했다. 팔은 약하고 손가락은 가늘어 섬세하기 아녀자 같고, 손에는 먹물이 묻어있는 큰 붓을 들고 있었다. 힘이 빠진 팔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71년 한 생애의 마지막 글씨(絶筆)로 생각되는 현판 글씨다. 板殿(경판을 보관한 집)이라 큼직하게(글자 한자의 크기는 가로세로 50여 센티) 쓰고, 왼쪽에는 七十一果病中作(일흔 한 살 된 과천사람이 병중에 쓰다)이라고 위에서 아래로 썼다.
파란만장한 생의 마지막 기력을 이 큰 두 글자를 쓰는데 바친 듯 노인은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조선왕조 철종 7년(병진년, 서기 1856년 음력 10월 10일)가을이었다.
秋史(또는 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마지막 불꽃, 즉 최후의 광망(光芒)을 보기 위하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봉은사(奉恩寺, 올해로 개산 1212년이 되는 고찰이며 서울에서는 제일 큰 절이다.)를 나는 두 번 찾아 갔다. 처음은 1978년 추사 김정희의 일대기(永遠한 墨香)를 쓰기 위해서였고, 두번째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봉은사 경내에 늦가을 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있던 날이었다.
글씨는 볼수록 어린아이 글씨처럼 꾸밈이 없었다. 추사가 말한 대로 불계공졸(不計工拙, 잘 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의 경지라 할까? 아니면 대교약졸(大巧若拙, 크게 기교를 부린 것은 마치 잘못된 것, 다시 말하면 어리석은 것 같다)이라고나 할까? 큼직한 현판(77×181cm)에 양각된 글씨는 금분으로 칠해져 있어 황금색이 완연하였다. 화엄경판 3,175장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인 판전(정면5간 측면3간의 맛배지붕, 단층 40여평의 목조건물, 1856년 건립, 5색 단청이 화려함) 안에는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에 열중하고 있는 스님과 몇 명의 불자들이 있었다. 전각 안에는 향내도 가득했다. 경판은 동, 서, 북쪽 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소전(素筌)이 가르쳐 준 秋史
필자는 삼십이 넘어서야 불세출의 명서화가(明書畵家)였던 추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의 예술세계에 푹 빠져 그에 관한 수필. 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것은 25년 전에 작고한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 1981)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소전 선생은 추사가 왜 추사인가, 추사는 얼마나 위대한 서화가였는가, 추사의 창조적 상상력과 탁월한 조형능력은 어떠했는가, 그의 유작을 어떻게 감정(진위를 가려냄)하는가, 1944년 일본 동경이 불바다였을 때 어떻게 추사 최고의 작품인 세한도(歲寒圖, 한국 국보180호, 추사 59세 때인 1844년작, 23.3×108.3cm, 종이에 수묵으로 그림과 글씨를 그리고 씀)를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 전 경성제국대 교수, 추사연구의 최고권위자)로부터 양도 받아가지고 서울로 왔는가 등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소전선생은 필자에게 좋은 글씨(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도 써 주셨다. 1968년 가을이었다. 그 후 필자는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秋史故宅)을 찾아갔고(1970), 드디어는 秋史一代記를 썼다. 1978년이었다. 이보다 2년 전인 1976년(추사서거 120주년)에는 동주 이용희 교수의 명논문<阮堂바람>도 읽었고, 당대 최고의 추사연구가인 최완수 간송 미술관실장이 낸 秋史集도 탐독했다.
1986년에는 秋史가 서거 일년전 쯤에 쓴 것으로 보이는, 즉 1855년 무렵에 쓴 蘭香之室(난초향기가 가득한 방)을 느티나무 판에 각자하여 거실에 걸었다. 秋史는 香자위에 禾(벼화)자를 얹혀 써, 蘭자와 비슷한 획으로 하는 창조성을 발휘했다. 즉 조자(造字)를 했다. 이 글씨 역시 추사의 남다른 창조성을 보여주는 명필이다. 이 해 가을 문화재 소장가였던 신충효(申孝忠 1934~1986)씨로부터는 후지츠카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淸朝文化東의 硏究, 1936년, 동경제국대학>을 기증받아 읽었다. 그리고 필자의 회갑 때인 1996년 봄에는 세한도(歲寒圖)를 주제로 시를 짓기도 했다.(필자의 시집 <붓 한 자루로 세상을 얻었구나>에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 솔가지 몇 개로
추운 겨울 당한 후에야/ 송백의 푸르름 알게 된다고/ 참 솔가지 몇 개로 깨우쳐 주는구나/ 歲寒圖여.
어린아이 장난인가/ 귀양살이 울분인가/ 맵고 찬 節操를 표상한 것인가.
비바람 눈보라 찬 세상을/ 流轉에 流轉을 거듭한 너/ 오늘도 참 솔가지 몇 개로.
썩은 세상을 후려치고 있구나.
秋史의 독창성과 개별성
수많은 책을 읽었고, 文史哲(문학.사학.철학)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글씨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선비의 서화(書畵)에는 문자(文字)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기운이 넘친다고 한다.
또 가장 예술적인 것은 가장 간결하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꾸밈이 없어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 같다고 한다. 그 예술작품은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런 타고난 예술가의 예술행위(작업)는 놀이라는 것이다. 즉 예술에서의 놀이(遊於藝)인 것이다.
秋史가 그랬다. 그는 9999분의 인재가 있어도 1분의 천재(타고난 재주)가 없으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화법이나 서법(書法)은 有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無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入於有法 出於無法 我用我法이라고 했다. 5체 서법에 능통했던 그가 만고불후의, 영세불망의 추사체(秋史)를 완성한 것도 그 자신만의 서화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에의 길이 고독하고(孤) 고통스러운(苦)것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죽는 날까지 온힘을 다하여 실천했기 때문에 빛나는 이정표(마일스톤)를 세울 수 있었다. 특히 9년간(1840~1848)의 제주도 귀양살이는 그를 인격적으로, 예술적으로, 나아가 학문적으로까지 최고봉에 올려놓았다.
그가 24세 때인 1809년 가을, 청나라 서울 연경(지금의 북경)에 가서 그 곳의 최고학자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 완원(阮元, 1764~1849)등의 각별한 가르침을 받은 것도 그의 서화완성에 큰 도움이 되었고, 추사의 명성을 중국에까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까지 꽃다운 이름(芳名)을 알리게 되었다.
모지고 굳세며 예스럽고 졸박한(方勁古拙) 예서법(隸書法)을 익히고서 독창성과 개별성이 뛰어난 秋史書法을 완성한 그의 서법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秋史는 예서법은 모든 서법의 근본이며, 예서는 대체로 번드르한 모습이나 시정(市井)의 속기(俗氣)를 걸러내야 하며, 예서 쓰는 법은 가슴 속에 청고청아(淸古高雅)한 뜻이 있지 않다면 나올 수가 없으며, 가슴 속에 청고고아한 뜻은 文字香과 書卷氣가 없으면 팔뚝아래와 손가락 끝에서 발휘될 수 없으니 보통 隸書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秋史의 예서(隸書)는 고졸(古拙)하고, 거칠고(粗), 묵직하고(重), 예리하고, 힘찬 운필미(運筆味)와 개성미個性味)가 넘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秋史隸書의 특성은 점의 다변성, 고획(孤劃)의 강조, 횡획(橫劃)의 반복과 통일성, 점획(點劃)의 비균제성(非均齊性) 등이라 하겠다.
예를들면 新安舊家, 如筠斯淸, 端硏竹爐詩屋, 黃華朱實, 谿山無盡, 殘書頑石樓 등의 글씨가 그렇다.
秋史의 해서(書) 역시 정제된 조화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비균제적인 文字의 조형(造形)을 통해 생동감이 넘치고 강렬한 개성미가 있는 해서법을 즐겼다. 秋史書의 특성은 점획에 있어서의 태세(太細)의 부각, 방필(方筆)의 운용, 전절(轉折)부분의 강조, 點劃의 포치에 있어서 소밀(疏密)의 강조 등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松風山月, 春風秋水, 凡物皆有, 五岳六經, 唯愛圖書 등의 글씨가 그렇다.
秋史의 行書는 근본적으로 그의 예서나 해서와 유사한 양식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행서의 특성은 점획의 태세에 따른 현저한 대비. 전절부분의 강조, 점획의 도출(跳出), 점획의 위치변환 등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漢人刻印, 蘭盟帖, 百舌詩話軸 등의 글씨가 그렇다.
秋史탄신 220주년과 서거 150주기가 되는 올 가을(10월)에 필자는 그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네 곳에서 다시 가졌다.
국립중앙박물관(秋史 김정희-學藝일치의 경지-). 과천문화회관(추사글씨 귀향전-후지츠카 기증 추사자료전-). 간송미술관(秋史百五十周忌紀念展). 삼성미술관 리움(秋史室)등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蘭香之室에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