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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서는 촛불

성서와문화 2010.01.19 18:11 조회 수 : 1418

 
[ 작성자 : 허 만 하 - 시인 ]


강렬한 불빛을 밤바다를 향하여 내뻗는 등대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자루 양초처럼 보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 과히 멀지 않는 간절곶 언덕 위에 서 있는 등대는 그렇게 희다. 기슭은 바로 동해의 물결이 부서지는 언제나 축축한 검은 바위다. 이곳을 지나는 길은 줄곧 해안선을 따라 굽이친다. 만나는 마을 이름도 일광(日光), 월내 (月內) 로 햇빛 달빛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정다운 길이다. 이 길 위에 서면 해묵은 숙제가 하나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은 어둠을 만난 등대 불빛이 사라지는 모습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것은 빛 과 어둠의 접촉면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일과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자기 불빛 끝간데(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바라보며, 꼿꼿하게 서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수직이란 개념을 정립하려 했던 사람이 바슐라르(Gaston Bashelard, 1884-1962)다. 대지의 수평을 벗어나 상하로 바로 서는 상상력은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상상력에 부합한다. 우리들의 의식은 수직으로 섬으로서 일상의 영역을 벗어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촛불이라 하면 생각나는 시 한편이 있다. 남미 몽테비데오 태생의 프랑스 시인 슈페르비엘(Jules Superville, 1884-1960)의 「불꽃의 첨단」(이하 「촛불」)이란 작품이다. 나는 언젠가 이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번역에 조금 손을 보면서 옛날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다루어 본다.


평생을
촛불 불빛으로 그는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따금 그 불꽃 위에
손을 쬐였다
살아 있는 것을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죽은 그 날부터 그는
켜진 촛불을
그의 몸 곁에 두고 있다
이번에는 손을 숨긴 채.


아름답고도 깊이 있는 시다. 과학사학자였던 바술라르와는 다른 접근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슈페르비엘에게 쓴 첫 편지에서(1925/ 11/28), “나는「촛불의 첨단」같은 시 안에 있는 부드럽고 확고한 가벼움을 찬탄합니다”라 하고 있다. 이 ‘가벼움’이란 말이 나에게는 슈페르비엘의 「촛불의 첨단」이 가지고 있는 깊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로 생각되었었다. 내가 이 가벼움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것은 릴케가 그의 독자에게 쓴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구절을 만났을 때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확실히 손에 잡히는 익은 과실같이 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게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손에 닿자마자 그것은 도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다. 릴케는 사물을 자기 안에 붙들어 맴으로서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시인의 내부에서 되살아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사물을 내부에 받아드려 붙들어 맴으로서 사물을 구원함과 함께 시인 자신도 살아난다는 의미의 말이다. 만년의 릴케가 가슴 안에서 새가 날고 나무가 자라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릴케가 말한 가벼움은 중량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강진의 청자 가마터에 부서져 있는 도자기 파편에 남아 있는 이름 모를 도공의 뜨거운 손자국 같은 가벼움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릴케가 51세의 젊은 나이로 이승을 하직했던 것은 1926년의 막바지 12월 29일의 일이다. 사인은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이 원인이 된 백혈병이란 이야기가 있다. 수척할 대로 수척해 있었던 그가 임종 직전(12월 21일) 슈페르비엘에게 연필로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무거운 병에 든 몸으로, 괴롭고 비참한 가엾은 병신으로, 불확실한. 인간다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재차 만날 수 있었다는 부드러운 의식에 한순간이라도 돌아 온 것은 당신의 부름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오. 시인인 벗이어, 그리고 나는 아직도 세계를 생각하오. 대지에서 태어난 일을 추억하오, 가엾은 질그릇 조각인 나는…. 서로 떨어져 있던 이 두 시인의 사귐이 시작된 것은 한해 전에 출간된 슈페르비엘의 시집 『중력』( 1925)이 계기가 되었었다. 작품「촛불」이 수록되어 있는 이 시집을 받아 본 릴케는 슈페르비엘에게 답신을 썼던 것이다. 이 두 시인은 서로의 내면세계를 비쳐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시인의 서로 다른 시공간의 접점으로는 우선 실존의 위기와 그 극복을 향한 노력(삶과 죽음의 문제를 시적 주제로 삼는 점)과 사물을 바라보는 형이상학적인 눈을 들 수 있다.(이러한 자세와 눈은 한국 시에서는 드문 자질이다). 정신의 세계는 뉴튼 공간 원리를 거부한다. 시적 공간에서는 구만리장천을 떨어져 있어도 바로 이웃에 몸을 붙이고 있을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아득한 공간을 사람은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 시인 김춘수는 천사를 실감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것을 범신론적으로 느꼈었다.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생시에 그가 직접 들려 준 이야기로 청마의 세계에는 천사가 없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단순히 상상력의 부족을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말은 그보다도 훨씬 큰 함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즈음에 깨닫게 된다. 김춘수는 나의 시에서 형이상학적 성질을 처음으로 말했던 시인이다. 글로서도 이야기했었지만(『김춘수 사색 시화집』, 현대 문학사, 2004), 본인의 생가가 있는 통영에서 있었던 한 공식 문학행사에서 (2004년 3월), 청중 앞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서울 언저리 분당에서 영면했었다. 그가 남긴 시집『들림 도스토예프스키』(민음사,1997)는 인간 존재의 의미(신의 문제)를 시적으로 접근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저서라 나는 본다. 슈페르비엘의 최후의 시집 제목은『비극적 육체』이다. 그가 말하는 몸의 비극성은 어려운 개념이다. 나대로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은 몸의 또 다른 몸인 정신으로(양의성으로서의 현존) 가시적 사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저장하여 시인 안에 머무는 확고한 모습을 주는, 주체-객체 사이의 상호 전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풍경이란 풍경이 내 안에서 자기를 그리는 것을 내가 의식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던 것은 세잔이다. 몸과 정신의 분열을 극복하려 평생을 바쳤던 메를로-퐁티가 세잔에 경도했던 것은 이해할만하다. 말년의 하이데거가 프랑스로 세잔의 집을 찾아보고 세잔의 길을 걸으며 멀리 상 빅트와르 산을 바라보았던 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추위를 느끼게 하는 날씨 속에서도 어제 하늘은 가을같이 깨끗했었다. 어제는 가까운 동해 바닷가 길을 둘러보았었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 물빛도 정갈했었지만 미나리 밭 겨울 미나리 신선한 초록색도 유난히 밝은 것이었다. 어제 머리 속을 맴돌았던 숙제는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이 아니라, 야생의 철학자 멩를로-퐁티가 남긴 다음 말이다. 그것은 어둠과 등대 불빛의 접촉면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접촉면이었다.


신체는 세계 앞에 똑바로 서 있고, 세계는 내 신체 앞에 똑 바로 서 있어서 양자 사이에 있는 것은 포용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 수직적인 두 존재 사이에 있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접촉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