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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두움

성서와문화 2010.01.19 18:10 조회 수 : 1346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해 뜨는 동방을 향해 이주해 오던 우리 조상들은 스스로를 불러 밝 또는 환인이라 했다. 이것이 오늘의 한인 또는 한국이라는 명칭의 기원이다.
한인들은 선사시대부터 하느님에게 제사를 드려왔다. “항상 시월에는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연일 주야로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위지> 동이전) 그리고 새해에는 일제히 해맞이 행사를 벌렸다. 하늘의 빛이 생명의 원천인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는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간다. 생명의 빛은 밝지만 시간과 함께 지나가 버린다. 이러한 생명의 빛을 영원에 잡아매자는 것이 종교이다.
해지는 서방 불국토를 관장하고, 극락왕생을 주관하는 아미타부처님은 무량수(壽)불이요, 무량광(光)불이다. 불교를 수용한 한국에서는 자연히 등불을 밝히는 연등회(燃燈會)가 성행했다. 연등회란 부처님의 밝은 덕을 찬양하는 등공양(燈供養)이다. 이것은 새해의 첫 보름달을 기해 열리는 법회였다. 그리고 지금은 4월초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법회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의 전통적인 제천의례나 해맞이 행사와 접목된 불교적 민족축제이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道)가 있었고, 우주만물은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이 말씀이 인간이 되어 오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인간을 살리는 생명이요 빛이다.
어두운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를 지나 사흘이면 다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날을 태양의 생일이라 하여 축제를 올렸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문명을 지배하게 되자 그들은 이 날을 그리스도의 생일로 정하고 등불을 밝히며 축제를 올리게 되었다. 로고스가 인간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생명의 태양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의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다.


작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유사 이래 최대의 빛의 축제라는 “2005 하이 서울 루미나리에”가 열렸다. 시청 앞과 청계천,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불꽃으로 장식했다. 루미나리에는 빛의 축제라는 뜻이며, 이것은 16세기의 이태리에서 성자를 기리던 축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서양의 연등회였다. 성자들의 생명의 불꽃을 영원화 하려는 종교.예술적 행사였다. 우리도 작년 성탄절을 기해 화려한 빛의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 실린 한반도의 야경사진을 본적이 있다. 미국이 쏘아올린 위성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전모가 보였다. 그런데 남한 일대는 환한 전기불로 덮이다시피 한데 비해, 북한은 평양과 원산 등지에 희미한 불빛이 보일 뿐 전체가 캄캄한 암흑세계였다. 하도 대조적인 광경에 충격마저 느꼈다.
이것은 바로 종교의 유무 곧 신앙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를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종교가 없는 곳에는 생명의 불빛이 있을 수가 없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다. 억압된 민중을 환상 속에 잠재우는 것이 종교라고 본다. 빛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통해 민중을 해방하는 사회주의 혁명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집권층의 절대 권력을 요청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한다.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초월적 절대자를 신봉하는 종교들이다. 종교는 세상적인 어떠한 절대 권력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련도 북한도 종교 활동을 탄압해 왔다. 그로 인해 민중의 해방이 아니라 민중의 생명의 불꽃만 꺼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역사적 현실이 설명해주고 있다.
공산주의의 대부였던 소련은 가난한 민중만 그대로 남겨둔 채 70년 만에 붕괴되었고, 공산주의 정권이 60년간 지배해온 북한은 암흑세계로 변해버렸다. 민중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민중의 인권은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있다. 국제적인 식량지원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고, 국제적인 인권옹호운동의 대상국으로 전락된 것이다.


우리를 당혹케 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한국의 정치적 이념과 행정이 갖는 지향성 문제이다. 어두운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한다. 초기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아마추어들이 모여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의 한국은 한 세기 전의 한국사회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양극화 이념의 칼로 가라놓고, 개성을 무시한 평준화라는 방망이로 다스리려고 한다. 심지어는 행정수도와 지방과의 관계도 양극화로 보고, 수도를 분산하여 평준화를 이루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정책도 그러하다. 남북의 평준화를 꿈꾸는 듯하다. 국제사회와는 담을 쌓고, “우리끼리”를 외치면서 “주체”를 자랑하며 죽어가는 형제를 껴안고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모성애는 갸륵하고 동정이 간다. 그러나 의술이 발달한 현대가 아니겠는가. 참 부모 형제라면 세계의 명의들과 손을 잡고 죽어가는 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 참된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우상신이 하나님께 대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념이 아니라 종교의 있고 없음이다. 종교 없는 백성은 바알신이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종교가 살아 있다.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이다.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합치면 남한의 태반이 종교인들이다.
성탄절의 불빛과 부처님 오신 날의 불빛을 우상들의 어두움으로써 덮어버릴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