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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치유

성서와문화 2010.01.19 18:08 조회 수 : 1456

 
[ 작성자 : 김 성 환 - 세브란스 호스피스 팀 ]

 
‘치유’라는 용어는 통상 ‘병든 상태가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을 때 사용한다. WHO에서는 “건강이란 육체적 질병의 없음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에서는 좀 다른 차원에서 보고 있다.
예수께서는 ‘네 발’, ‘네 손’,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고, ‘장애의 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났다’ (마 18:8-9)고 하셨다. 즉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처음 만드실 때의 모습에서 ‘건강’의 원형을 찾고 있다. John Wilkinson은 그것을 ‘샬롬’(Shalom)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샬롬이란 말에는 온전함(Wholeness), 완전함(completeness), 안녕함(wellbeing)이란 의미와 충만함(fullness)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건강’을 ‘처음 창조의 모습’(Shalom)이라고 볼 때 과연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 완벽한 치유가 있을까? 오늘의 첨단 의학 기술은 옛날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치료는 다시금 질병으로 이어지게 해서 결국 질병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불완전한 치료 밖에 되질 않는다. 즉 이 땅에서는 영원한 치유란 있을 수 없다. Francis McNutt는 ‘궁극적인 치유는 죽음이다’ 라고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아름답고 존엄하고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일이 참된 의미에서 완전한 치유라고 보고 싶다. 이러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한다


환자 ; 말기위암, 간 전이된 52세 남자, 가족사항-부모 형제 6명 그리고 부인과 두 아들, 종교-무, 직업-회사 중역, 약 1개원 동안 8-9회 만남.
첫 번째 만남 ; 호스피스 사무실에서 지목한 환자이다. 병실에 들어서니 환자와 부인, 작은아들이 1인실에 있었다. 환자는 복수와 황달로 병세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필자의 방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환자는 서슴치 않고 말을 꺼낸다. “몇일 전에 친구 한분이 어떤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기도해 주겠다고 해서 그 분께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환자는 지금 통증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목사님 말씀하시길 “형제는 아직 죽을 시기가 덜 되어서 데려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순간 환자의 유난히도 큰 두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쭈르륵 흘러 내렸다). 환자는 자기의 고통을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그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던 모양이다. 목사님의 말로 인한 충격도 있고 해서 필자를 만난 김에 상담해 보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파악된 환자의 문제는 시시각각으로 엄습해 오는 통증과, 잠간 동안이지만 부인에 대한 과민하고 무례한 횡포였다. 면담을 마치고 부인이 복도 까지 전송 나온 사이 잠간 나눈 대화 속에서 발견하게 된 세 번째 문제는 가족 구성원(부모, 형제간, 부부간)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미움과 불신의 깊은 늪이 가로 놓여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만남 ; 환자가 피곤해 하는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첫번 만남에서 파악된 세 가지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확인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통증’ 문제는 통증이 주관적인 자신의 느낌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가짐’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통증의 경중 정도가 결정 된다는 점과 아울러 이 ‘마음가짐’은 신앙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했다. 신앙은 마음을 비우는 일, 빚 갚는 일, 참회, 용서, 화해 등이 동반되는 영적인 정화가 따라야 한다는 점을 말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의 눈에서는 총기와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만남 ; 전날 부인을 통해서 들은 바 있는 가족 간의 미움과 불신의 깊은 늪을 염두에 두고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확인을 겸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통증이란 것은 우리 안에 어떤 부분(육체이건 마음이건)이 긴장(stress)을 하면 극대화된다는 점과 그 문제는 마음가짐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것들은 신앙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B. W. Brister 박사(미국 서남침례교 신학교 목회상담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신앙이란 “삶의 스타일이며 자세이지 단순히 신앙체계가 아니다” 즉 신앙이란 교회에 다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가 어떠하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즉 마음을 긍정적으로 열어 놓으면 신은 물론이고 어떠한 사람도 수용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인데 이 마음이 주변의 미운 사람, 원수처럼 생각되던 사람, 남에게 빚을 졌거나 혹은 빚을 준 것들이 있으면 이런 것들을 모두 용납하고 풀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맑고 가벼운 영혼을 가지고 영원한 순례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통증 완화에 크게 역할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만남 ; 일주일 후 병실을 찾았다. 환자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신앙이란 것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신앙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환자는 통상적인 신앙 개념과 또 다른 신앙관에 대해 관심을 표했다.
다섯 번째 만남 ; 간호사의 요청으로 특별 방문하였다. 환자는 매우 불안 초조해 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초조하게 하는가 물었다. 별로 대답을 하질 못했다. ‘참회할 일이 없는 가’, ‘용서 받아야 할 일’, ‘미워했던 사람’ 등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생긴 것이 아닌가 했다. 고백을 받아 내려는 뜻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결행하도록 하기 위한 간접방법으로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화해하라’고, 환자 자신이 직접 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신 앞에서 마음을 열어 놓고 하도록 권유했다.
여섯 번째 만남 ; 9/24(일) 이번에는 ‘환자가 필자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주일예배 인도를 오전과 오후에 해야 하기에 저녁 7시에 가겠다고 하고 정시에 도착했다. 병실에는 그렇게 왕래가 없었다던 부모님과 6남매 중 두 분의 동생들, 그리고 호스피스 책임자가 이미 와 있었다.(가족들 간에 왕래가 전혀 없었던 관계로 형제 중에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형제도 있었다.) 환자는 필자의 붙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쇠잔한 상태이지만 사력(?)을 다해 말하는 것이다. ‘목사님, 나 하느님 뜻대로 하기로 했습니다.’(필자는 기독교 전도를 한 일이 없었다). 결국 환자는 하느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인 것이다. 환자와 함께 우리 모두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에 세례예식을 베풀었다. 밤 10시였다.
그 다음날(25일)도 환자는 필자를 하루 종일 찾았다고 한다. 저녁 7시경에 병실에 도착했다. 어제 만났던 가족들이 있었다. 필자의 손을 잡은 환자의 손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간간히 구토하는 고통도 있었다. 그 사이에 위(胃)세척도 하였다.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을 무렵, 밤 9시경, 마침 의대, 간호대, 치대 학생 성가대가 병실 복도에서 성가를 합창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문을 활짝 열고서 성가를 듣도록 했고 특별히 병실에 와서 불러주기를 요청했다. 환자는 ‘이런 좋은 마음을 오래 오래 가지고 있고 싶다’고 했다. 밤 10시까지 농담을 걸면서 웃기도 하였다. 필자는 피곤을 느껴서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었지만 환자가 놔주질 않았다. 간병을 주로 도맡아 하던 작은 아들의 도움을 얻어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병실을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마음은 개운치가 않았다.
다음날(26일) 아침 5시에 전화가 왔다. 큰아들이다. 새벽 1시에 운명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세례도 받았으니 필자에게 장례 절차 일체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서둘러 빈소를 찾았다. 아직 빈소는 정리되지 않았다.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투병 중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부인께서는 “간밤에 목사님 나가신 후 아빠가 그 동안의 부부사이에 맺혔던 모든 감정들을 풀어주고 평안한 모습으로 운명하셨다”고 했다. 운명하기 직전까지 가족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으나 추측하건데 부모 자식 간의 화해가 있지 않았나, 다른 형제들과도 그런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입관 및 장례 예배 등을 경건하게 드렸고 하관예배는 다른 목사님(최초로 환자와 대면했던)께서 집례 하도록 했다. 가족들 모두는 이 행사로 인해 매우 감사해 했고 이번 기회에 가족 간의 깊은 감정의 늪에 다리가 놓여지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장례를 치룬지 두 달 쯤 지났을까 고인의 아들과 부인께서 각각 시간 차이를 두고 전화를 걸어 왔다. 내용은 장례 후 가족들이 서로 왕래를 할 수 있게 까지 마음들을 열었고 슬픔도 잘 견디어 나가고 있다는 소식과 감사의 인사말이었다.
치유의 완성은 의료적 혹은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인 돌봄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