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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 통신 2> 詩‘비에도 지지 않고’의 단순과 깊이

성서와문화 2010.01.19 18:08 조회 수 : 1603

 
[ 작성자 : 정 종 화 - 시인 ]


P형, 장마와 폭우에 이어 찜통더위가 밀려오는데 마음을 달래주는 시(詩) 한편이 새삼 그립다 하시는구려. 요즘처럼 언어가 폭력과 증오를 부추기며, 오염된 때가 없다는 탄식 또한 동감입니다. 나는 일본의 시인이며, 동화 작가인 미야자와 켄지(宮澤賢治, 1896-1933)의 <비에도 지지 않고>가 떠올라 주저 없이 팩스로 졸역을 곁들여 전송합니다. 37세에 요절한 이 시인은 생전에는 무명에 가까웠으나, 죽은 후에 많은 작품이 발표되어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농민을 지도하면서 불교(日蓮宗) 포교에도 힘썼더군요.


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雪)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실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노여워하지 아니하고
늘 조용히 웃고 있는 …


모든 일에
내 몫을 챙기지 아니하고
눈여겨보고 듣고 깨닫고
그리고 잊지 아니하고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 짊어지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일러주고


모두에게 얼뜨기라 불리고
칭찬받지도 못하고
남의 걱정거리도 되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나와 이 시와의 ‘만남’은 20여 년 전, 요즘 같은 삼복더위 때였습니다. 동시(童詩)를 연상시키는 이 소박한 시는 놀라운 충격을 안겨 주었으며, 첫 대면의 그 날 곧장 우리말로 옮겨 외워 버렸습니다.
이 시는 흔히 상식으로 말하는 명시는 결코 아닙니다.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로 씌어 있어, 한자(漢字) 몇 개를 빼면, 그 단순 소박함이 더욱 동시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없고 화내지 아니하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다는 첫 대목에서 그 단순 소박성은 뭔가 거대한 무게로 다가옵니다.
병든 자를 돌보고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는 대목에서는 ‘동반자 예수님’, ‘부처님의 자비’와 이미지가 포개어집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대목에서는 죽음을 극복한 자에게서만 가능한 위안과 위엄마저 느낍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남의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 얼뜬 바보가 되고 싶다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나에게도 함께 바보가 되어 보자는 뜨거운 권유로 들립니다. 단순 소박함에서 거대함에 이르고, 섬김과 바보스러움에서 거룩함에 이르자는 호소로 들립니다. 이 시에는 한 마다도 종교적 어휘가 사용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와 불교가 공유한 종교성이 깊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향기가 이 시를 명시로 만든 것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