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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마음

성서와문화 2010.01.19 18:07 조회 수 : 1365

 
[ 작성자 : 임 인 진 - 시인 ]


소 명 (召命)


씨 뿌려 김매고 거두는 일로
감사의 윤리를 지니게 하시는 이여!


무상(無償)으로 일군
마음 밭에


씨 뿌려
김매고
땀 흘리면


어느 차가운 별밤에
오소소
꽃으로 눈 뜨는 소명(召命)


보이지 않는 손길
조용조용히 온기 지펴 주실 때


여물대로 여문 이삭과
익을 대로 익은 실과로
그윽한 성숙(成熟)을 이루오리다. (시·임인진)


눈부신 가을 아침에 오솔길을 걷다보면 수풀 속 작디작은 꽃송이마저도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뜹니다.
깊은 밤,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과 마주하면 살며시 가슴에 파문이 일고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찬란한 가을빛이 함성처럼 메아리칠 때면 이대로 끝낼 수 없는 다시 깨어나고 싶은 충동에 가슴이 저려오고 그 열망이 달아올라 설레기도 합니다.
남은 생(生)도 저 성숙(成熟)된 빛과 소리에 맞물려 아름다워지고 싶습니다.
때때로 제가 살아온 날의 발자취를 객관적 시선으로 되돌아보며 아쉬워합니다.


삶의 철학이 있어 잔잔한 행복의 실마리라도 잡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립고 아쉽고 서러운 것이 너무 많아 목말라 헐떡였을 뿐 남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고독과 허무와 절망의 틈바귀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스스로 기진해 재가 되듯 타버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멀어져 외따로 떨어져나간 외톨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추하고 악한 것에 대한 질시와 환멸로 가슴엔 멍투성이입니다.


문학은 단숨에 도달할 수 없는 필생의 작업이라고들 합니다. 꼴인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면서도 뿌연 안개 속을 헤집고 가듯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답니다.
자신의 성찰(省察)로 눈과 귀를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해맑은 눈과 귀로 모든 사물과의 교감(交感)을 틔우며 사유(思惟)의 우물을 안으로 파들어 가야 합니다. 날마다 안으로 한 뼘씩 우물을 파는 일이 창조적 질서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신앙의 함량이 부족함에도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십니다. 그런고로 이름 하여 기도 시(祈禱 詩)라 했지만 흔히 접할 수 있는 신앙 시(信仰 詩)의 매너리즘에 빠지기 싫어 안간힘을 써보았습니다. 자신을 추스르는 다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유상대부(有償貸付)가 아닌 무상(無償)으로 빌린 땅에서 감사할 줄 알며 씨 뿌려 김매고 땀 흘려 가꾸는 일과, 감사하며 거두는 일이야말로 참된 윤리적 실존(倫理的 實存)의 삶일 것입니다.


소명(召命)은 곧 절대자의 명령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역동적인 것만으로 그 가치를 가늠하려는 자신의 속성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절대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창조적 질서를 지키는 일이며 어둡던 눈과 귀를 밝히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부적절한 욕구를 눌러 순화(純化)된 기구(祈求)를 싹 틔우고 여물대로 여물어 고개 숙인 곡식 되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