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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도와 풍류

성서와문화 2010.01.19 18:06 조회 수 : 1478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1. 풍류도와 봄바람
9세기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은 일찍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약관 20세에 그 곳에서 벼슬길에 오른 수재였다.
1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운은 이미 불교, 도교, 유교에 통달한 선비였다. 그런데 그가 놀란 것은 조국의 전통문화 속에 그가 터득한 삼교의 종지(宗旨)들이 이미 구현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다. 이에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 고운은 동방의 나라 신라를 찬양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빛이 왕성하고 충실하여 온 누리를 빛나게 하는 것으로는 아침의 해보다 고른 것이 없고, 기운이 무르익어 만물을 기르는 공으로는 봄바람보다 넓은 것이 없다. 이 큰 바람과 아침 해는 모두 동방에서 스스로 나온 것들이다.” (무염화상비명)


한국은 온누리를 빛나게 하는 새벽의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요, 화기가 무르익어 만물을 육성하는 봄바람이 불어오는 동방의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영성을 풍류도(風流道)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것을 풍류라고 한다. ...... 이는 실로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중생에 접해서는 그들을 사람답게 교화 한다.” (삼국사기)


풍류도는 풍류라는 개념이 말하듯이 예술적인 도요, 민족적인 얼이다. 이것은 초월적인 종교와 현실적인 윤리를 수렴한 민족적 영성이다. 이것이 근간이 되어 한국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유대민족과 같이 역사의 변두리에서 살아온 약소민족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유일신 신앙을 발전시킴으로서 인류문화 발전에 공헌해 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민족적 은사가 따로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예술적 창조능력을 내포한 풍류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화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역사가 아니라, 예술문화사이다. 오늘의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음악을 비롯한 예술문화 뿐이다.
우리는 풍류도의 봄바람을 타고 예술적 문화 창조를 통해 인류문화 발전에 공헌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매화나무에 걸린 풍류
16세에 모친 신사임당을 여의고 실의에 빠졌던 율곡(栗谷 李珥, 1536~1584)은 삼년상을 마치자 금강산으로 입산수도의 길을 떠났다. 그 곳에서 불도를 닦고 다시 하산하여 유교에 몸을 담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도를 배움은 곧 집착 없으매라.
인연 따라 이른 곳에서 노닐 뿐이네.
잠시 청학동을 사직하고,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내 신세는 천리 구름 위에 있고,
천지는 바다 한 모퉁이에 있네.
초당에 하루 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걸린 달, 이것이 풍류로세.”


‘도’를 배워 익힌 사람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율곡이 터득한 도는 포함삼교 하는 풍류도였다. 그러므로 인연 따라 불도를 닦기도 하고, 한 때는 노자 도덕경을 재편하면서 주석을 달기도 했다. 그가 평생을 몸담았던 유교에 대해서도 거기에 메이지 아니하고 초연한 입장을 취했다. 청학동은 도교를 상징하고, 백구주는 유교를 상징한다. 그는 종교라는 벽에 걸림이 없이 인연 따라 진리만을 탐구하며 여기저기에서 노닐었던 것이다.
율곡은 천리를 나르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존재였고, 그의 눈에는 천지가 바닷가에 놓인 한 개의 조약돌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이란 초당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나그네인데, 뜰에 있는 매화나무엔 영원한 달이 걸려 있으니 이것이 바로 풍류의 실상이다.
엄동설한은 지나갔다지만 아직 싸늘한 이른 봄에 매화는 꽃 몽우리를 터트린다. 훈훈한 봄바람을 불러드리는 초대장이다. 죽음의 겨울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 잠자던 만물은 소생의 새싹을 내민다. 부활의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우주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이다.
매화나무에 걸쳐있는 것이 진여(眞如)의 달이다. 진여란 영원한 종교적 실체이다. 종교는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바람을 안겨주는 신앙체제이다.
매화나무에 진여의 달이 걸려있으니 이것이 바로 풍류가 아니겠는가?


3. 봄물에 배 띄워
한국화를 정립한 대가로는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가 있다. 그는 앞 시대의 화풍들을 수렴함으로써 한국화의 전형을 창출해 냈다.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단원은 시, 서, 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통달한 예술인이었다. 그리하여 예술적 안목이 높았던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된 화가였다.
말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자화상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 넣었다.


“흙벽에 아름다운 창을 내고
여생을 야인으로 묻혀
시가나 읊으며 살으리라.”


‘그러나 1800년에 정조가 승하한 후, 단원은 고독과 빈곤과 신병 속에 만년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 때 그는 두보의 시에 공감하면서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를 그렸다.
그림 왼쪽 아래 끝머리에 산자락이 보이고, 바로 그 뒤에 배 한척이 떠 있다. 비스듬이 앉아 피안을 바라보는 한 노인 앞에는 주안상이 차려있고, 맞은편엔 동자가 앉아서 시중들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물 건너의 가파른 언덕 위에는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다.
이 무렵에 그는 또한 시조 한 수를 남겼다.


“봄물에 배 띄워 가는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주상관매도>와 위의 시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형상화한 한 쌍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단원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술잔을 기우리며 세월 흐르는 대로 풍류를 만끽하면서 살아왔다. 그에게는 흐르는 세월과 영원한 예술이 둘이면서 하나였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하늘 속에 물이 있었다.
종교는 이 세상에서 영원을 살게 하며, 예술은 아름다움을 영원에 잡아맨다. 그러므로 종교. 예술적 인간에게는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봄을 향한 출발이다. 배 안에 앉아 있는 단원은 피안에 피어 있는 매화꽃에서 새롭게 전개 될 봄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