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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 영적 돌봄에 대한 단상(斷想)

성서와문화 2010.01.19 18:05 조회 수 : 1608

 
[ 작성자 : 김 성 환 - 세브란스 호스피스 팀 ]

 
필자는 세브란스 호스피스에서 봉사활동, 약 7년 동안에 431명의 환자를 만났다. 물론 영적 돌봄의 측면에서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 동안 만난 환자들 중 301건의 환자 면접 차트를 들추어 보면서 필자의 느낌을 적어 보려고 한다.
우선 호스피스 현장에 임하면서 ‘영적 돌봄’에 대한 필자의 이해와 입장을 서술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영적 돌봄이라 함은 특정 종교의 교인화(敎人化)의 차원이 아니고 환자의 삶의 자세(Life style)와 그것의 변화 과정을 돌보는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활동했다.
이런 방향으로 설정한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호스피스가 목표로 하는 바는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 죽음은 환자 자신의 마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마음의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서 긍정적인 죽음 즉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자세 결정은 다른 사람의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敎理)라 할지라도 설득이라는 방법은 기력이 쇠잔한 임종환자에게 감동을 주질 못한다. 그것 보다는 마음의 자세(life style)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주려는 접근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좋고 유익한 일도 있고 그 반대 되는 일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던지 간에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어차피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것들이라면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수용된 것은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간에 자기의 삶이라고 마음을 정리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 갈’ 방도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열린 마음, 긍정적인 마음 자세라고 한다. 이런 마음 자세가 되면 앞으로 닥아 올 어떠한 문제도 책임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죽음의 두려움과 통증의 문제도 자기 삶의 일부라고 받아 드려 책임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곧 바로 호스피스의 목표로 연결되어 질 수 있다는 신념이서 취한 입장이다.
둘째는 삶의 자세가 긍정적인 마음 즉 열린 마음으로 바뀌게 되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폭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넓어진 시야로 인생의 더 깊은 차원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살다보면 현실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들이 닥치는 죽음의 문제도 우리의 시야에는 들어오질 않는다. 가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객관화해 버린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절박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죽음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못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러한 문제를 일깨워 주는 분야가 바로 ‘종교’이다. 종교는 우리의 시야를 폭 넓게 해 준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마음의 자세 형성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호스피스 기관에 의뢰되는 환자는 임종이 임박한 경우가 많았었다. 따라서 환자와의 만남의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에 죽음 준비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인가? 결론은 우선 호스피스 의뢰자(환자 가족이나 담당 의사)가 임종 임박해서 보다는 호스피스 대상 기준 약6개월(호스피스 대상자로 공식 인정되는 환자) 정도의 기간을 두고 의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호스피스 기관에서 죽음 준비에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그것 보다 더 바람직한 죽음 준비교육은 건강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는 죽을 것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먹고 사는 문제에만 관심하고 있을 때이다. 사실은 이때가 바로 죽음 준비 교육을 해야 하는 시기여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 준비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죽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삶인가?’를 묻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즉 ‘참 삶의 모습을 만들기 위하여 다듬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죽음 준비교육의 핵심이다. 즉 욕심을 버리는 것, 즉 자기 비움 교육이다. 영적 생명의 길에 죽음준비는 우리 몸에 불필요하게 붙어 있는 체지방을 거둬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 이 일은 종교만이 할 수 있는 분야인데 이 ‘비움의 도리’를 가르쳐야 할 오늘의 종교 현실은 어떤가? 오히려 기복 신앙을 부추겨 ‘채움의 욕망’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임종 환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통증이라고 한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이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사는 동안에 가지고 살았던 것들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을 괴롭히게도 하고 또 두려움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이 미련들은 죽음의 언덕을 넘을 때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 무개가 장애가 되는 것이다. 임종환자는 참 삶에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가벼운 몸을 만들어 그 언덕을 넘어 가야 한다. 죽음의 언덕을 부담 없이 가볍게 넘어 갈 때 두려움도 없어지게 되고 또 통증이라는 것도 열린 마음으로 내가 짊어지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라는 마음 자세가 되면 그것이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의 대상으로서 당당하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돌봄에 있어서 긍정적인 마음 자세 형성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거기에 적절한 반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우리 인간에게 존재의 변혁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지금까지의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위기 상황이다. 도로데아 죌레는 위기의 발전 과정을 3단계로 설명하는데 충격, 고통, 그리고 치유 등의 단계라고 한다. 암 혹은 죽음 선고는 충격이다. 이 단계에서는 이성(理性)의 작동이 완전히 멈추어 버리고 감정만이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있는 환자들에게 이성으로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교리 설명이나 일방적인 설교 같은 것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때 돌보는 자(care giver)는 환자들의 감정에 함께 해 주어야 한다.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함께 아파하고 공감해 주어서 환자가 혼자라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안정적인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밝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영적 돌봄의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면서 환자의 마음이 안정되고 밝아졌다고 보이게 될 때 간헐적으로 환자의 느낌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세상 살아오는 동안 대인관계에서 마음의 부채와 미워했던 마음들을 모두 털어 버리게 하며 환자의 삶 가운데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서 칭찬과 격려를 해 주어서 환자의 일생이 결코 헛된 인생이 아니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박수를 처 줄 수 있으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소꿉놀이를 하다가 석양이 되어 엄마가 부르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인생의 때가 차면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죽음, 하늘나라를 그려보게 한다면 어떨까.
이것이 긍정적 삶으로 연결되게 한다. 따라서 이런 개념의 영적 돌봄은 성직자만이 하기 보다는 모든 호스피스 참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각기 자기의 전문분야의 일을 진행하면서 환자에게 긍정적인 삶으로 바뀌게 하는 돌봄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