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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금단의 열매

성서와문화 2010.01.19 18:05 조회 수 : 1440

 
[ 작성자 : 김 현 옥 - 남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교수·언어학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구약 창세기 3장 5절에서)



1979년에 큰 마음먹고 산 IBM Selectic모델III 타자기는, 자동으로 오자(誤字)를 감쪽같이 지우는가 하면, 약간의 기억장치도 들어있어서, 골프공 같은 싱글 엘레멘트가 활자를 경쾌하게 탈탈거리며 쳐나가다가 오른쪽 끝에 닿으면 자동적으로 다음 줄 왼쪽 앞으로 이동해 가서, 타자수의 손길을 가다려 주는, 말하자면 타자기로서는 갈 때까지 간 최첨단 제품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카트리지의 길이가 16인치짜리라 기체가 거치장스러운데다가 무거운 것이 좀 흠이기는 했어도, 무슨 항공모함같이 육중하게 생긴 이 베이지색 타자기가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일 년이 채 못가서 영락없는 폐물이구나 하고 알아 차렸을 때는 이미 때는 늦어, 1977년에 과수원 땅이던 산호세 시골동내에서 터진 Apple 컴퓨터를 앞세운, PC혁명이 무서운 기세로 정부 관공기관을 위시해서 행정계, 사업계,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을 열풍처럼 휩쓸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Apple 컴퓨터란 것을 처음 본 것은 1980년 초에 보스톤시 교육국에 잠시 이중언어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초등학교 학생 식당에 비치되어 있는 어딘지 약간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이 기계가 해내는 재주에 혀를 찼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택스트가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키 하나로 거짓말같이 되살아나지 않나, 한 자 한 자를 지워 딴 글자로 바꿔칠 수 있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택스트 부분을 잘라 딴 곳에 옮겨 놓기, 전체 택스트를 그대로 복사하여 보관하기, 등....... 실로 귀신이 탄복할 요술을 부려대는 것이 아닌가.
몇 십 군데를 고치고, 자르고, 떼어 붙이고 하여 너덜너덜해진 논문을 밤을 새우고 다시 타자를 해서 정서를 해야 했던 시대가 홀연히 옛 전설같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요술이라고 한 것은 컴퓨터가 가진 기능 중에서도 타자기를 하루 아침에 골동품으로 만든 언어처리라는 지극히 좁은 기본분야일 따름이고, 그것이 갖는 기능은 이제는 인간이 만든 것이면서도 이미 우리의 인지를 넘어 막막한 환각의 무지개 저편에 있는 정보의 검은 흑점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가는 가공할 어처구니없이 놀라운 그런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Apple 컴퓨터의 상표가 또 묘해서, 색동저고리의 소매같은 색을 한 사과가 아는가. 그것도 오른쪽 윗부분이 한 입 잘려나가 오른쪽으로 약간 갸웃둥 기운. 꼭지가 사과 이미지의 중앙 윗자리에 없었던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을 번 한 흠이진 사과이더란 말이다.
깨물어 뜯는 것을 bite라 하고, 깨물어 뜯겨 나간 부분은 과거분사형 bit라 할 수 있으니, information의 기본요소를 여실히 상징한다 하겠고, bite와 발음이 같은 byte는 인접한 일련의 (보통은 여덟 개의) bit의 묶음이라 하니까, 이것은 한 입나간 사과 부분에 해당한다 하겠다.
그 뿐인가! 조각난 파편을 chip이라고 하니까 Apple 상표의 한 입 뜯겨나간 조각은 chip인 셈이고, 이것도 화학 처리가 된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 물질의 엷은 판 조각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니, 그 결손부를 나타내는 bit도, byte도, chip도, 모두가 정보처리 과정의 기본요소이어서 실로 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상표 Apple이 Application의 줄인 말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Application하면 얼른 우리는 응용이라고 하지만, application은 또 computation 즉, 계산이란 뜻이 따로 있으니, 전자계산기가 application의 줄인 말인 Apple이라 불리어서 어색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깔린 여러겹의 상징성을 생각할 때, 이 무지개 색깔을 한 Apple상표가 기막힌 걸작품임에 아무런 이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표를 다듬어낸 디자이너 본인이 정작 이런 뜻을 제작에 임하여 의도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은 별도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궁금한 나머지 며칠 전 Google 검색엔진으로 흥미삼아 해본 조사에 따르면, 상표의 디자이너는 이름이 Rob Janoff이고, 나이는 57세, 현재는 시카고에서 newtrix란 상업광고 디자인 회사를 차리고 IBM, Diner’s Club, Kleenex 같은 고객을 상대하고 있단다.
본인 말로는, 영감이나 얻어 볼까하고 슈퍼에서 사과를 한 광주리 사다가 토막을 내어 그 조각들을 여러 시간 들여다보고만 있었노라고 술회하고, 색갈이 있어야 된다는 Apple회사의 20대 히피사장들의 생각을 맞추다보니까, 어떻게 무지개 디자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사과가 회사 상표 주제가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도 별로 밝혀주는 바가 없어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통설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는 모양인데 그 하나는, 두 히피 청년 사장이 월래 만든 회사 상표가 사과나무 그늘에 앉은 Issac Newton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Newton이어야 했었던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렇다 할 설명이 없어 안타깝다.
둘째는, 이차대전 때 독일군의 전신 암호체계를 해독해 내고 전자계산기의 이론적 터전을 닦은 이른바 Turing machine으로 이름난 영국의 수학자 Alan Turing의 죽음에 관련된 얘기다.
19세 소년과의 동성연애 혐의로 영국법에 의해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갈 뻔했다가 여성 호르몬 주사로 거세한다는 조건으로 집행유예가 되기는 했지만, 명예도 체통도 잃은 체 급기야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임종 머리맡에는 청산가리에 담근 사과 하나가 한 입 떨어져 나간 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Turing machine으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그 고안자가 청산가리에 저린 사과를 한 입 먹고 자살했다는 슬픈 에피소드가 Apple상표에 얽혀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는 성싶다.



여하간에, 무지개색 색동 사과 상표가 붙은 Apple 컴퓨터......, 그 속 모를 기능을 지니면도 장난꾸러기같이 무구해 보이기만 하는 Apple 컴퓨터를 보았을 때, 나는 이브가 열매를 들고 아담을 쳐다보고 있는 듀러의 그림을 생각했다. 동산을 영원히 등진, 그리고 핵을 깨트리는 비밀을 알아낸 그 녀의 후예들을 또한 나는 생각했다. 어딘지 노리개감 같은 Apple 컴퓨터가 자꾸 하나님의 권역, 지식의 권역을 상징하는 두 번째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만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