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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예술:그 의미의 있음과 없음에 관하여 (상)

성서와문화 2010.01.19 18:03 조회 수 : 1029

 
[ 작성자 : 최 종 태 - 조각가 ]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무슨 책을 읽던 중에 특별히 눈을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을 그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첩 맨 뒷장에다 적어 놓았습니다. 잊어버려서는 않되겠다 해서 말입니다.


의미가 예술을 지배할 때
예술은 쇠퇴하고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
예술은 공허해진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말은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이 말이 뜻하는 바를 따져서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읽던 책을 찾는데 어떤 책인지 그만 잊어버린 것입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그랬는지 흔치 않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책 찾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입력된 그 한 구절이 자꾸만 더 또렷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생각나고 일하다가도 생각나고 그러면서 예술의 역사와 예술의 의미를 새기는데 항상 얽히게 되었습니다. 조형예술에 대한 명상의 시간에 반려자가 되어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의미가 예술을 지배할 때 예술은 쇠퇴하고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 예술은 공허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나의 예술탐구의 역정과 그 이상(理想)을 집약한 마치 내가 만들어 놓은 말처럼 착각현상이라 할지 지금은 내가 한말처럼 되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누가 한 말인지 요행히도 어떤 날 기적처럼 알아낼 수 있는 날이 생길는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그런 순간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해쯤 세 해쯤 전의 일입니다. 그림 그리는 한 젊은이가 유럽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면서 책을 한권 선물이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이였습니다. 미켈란젤로였습니다. 흑백으로 된 화집이었는데 그 내용인 즉 석 점의 피에타를 주제로 놓고 세세한 부분들을 예민하게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책 선물 같이 좋은 게 없습니다. 책상머리에 놓고 흐믓하게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책이 옆에 쌓이니까 대개 몇 달이면 위층 서가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미켈란젤로는 마냥 옆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책이 예뻐서 이었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책 속의 석 점의 피에타는 로마 베드로성당에 있는 스물세네살 때의 것하고, 70세에 만든 피렌체 우피치박물관에 있는 것하고, 90세까지 만들다가 미완성인 채로 남긴 밀라노 어떤 박물관에 있는 것하고, 그렇게 미켈란젤로의 일생에 걸친 명작 중에도 명작에 속하는 작품들인 것입니다. 일년이 지나도록 그 책은 내 책상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미켈란젤로 화집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판사가 스키라 라는 것과 그 사진이 우선 고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진작가가 유럽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하고 조각의 부분 부분을 보여주려는 의도의 사진인데 그러자면 칼라사진보다도 흑백 이여야 좋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해설을 듣고 보니 그 책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 미켈란젤로는 근래까지 내 옆에 있어서 내 집에 오는 사람한테 늘 자랑을 했습니다.
젊은 날의 피에타는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손톱 발톱 머리카락과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70에 만든 것은 자기 무덤에 놓으려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터치가 많이 거칠고 또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손을 놓은 것 같습니다. 무언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그야말로 미완성입니다. 근육의 움직임이 표면으로 들어나지 않고, 얼굴들도 깎다 말았는데 그게 오히려 마치 불상과도 같은 더없이 고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부터 그 마지막의 피에타를 좋아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20대의 것은 더 할 수 없이 완벽합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작품 그 미완성의 피에타가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도록 그래왔고 그래서 저게 무슨 소리인가하고 늘 마음에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성당과 미술관들을 탐방하는 여행단이 있어서 따라갔습니다. 일행이 밀라노에 들리게 되고 문제의 박물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박물관은 특별나지도 않고 그저 덤덤했습니다. 워낙 명품들을 갖고 있는 박물관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내를 다 돌고서 마지막 방 끝머리가 이니었을까 싶습니다. 작은 별실 같은 공간을 만났는데 거기에서 생각지도 않게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작품을 만나다니 참으로 나는 감격했습니다. 사진에서 안 보이는 여러 가지 이상한 점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옆에 정복입고 모자까지 쓴 지킴이 남자가 있었습니다. 유독 그 작품 앞에만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조는 듯이 앉아있었습니다. 마침 통역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지킴이한테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 이의 눈이 빛나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몇 날이고 또 하루 몇 시간을 앉았다 섰다 했을 터인데 아무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참에 내가 그의 마음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가 흥분하고 신이 나서 아는 것을 죄다 털어놓은 것입니다. 그로서는 그야말로 임자 만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작품을 87세에 시작한 것인데 어느 시기에인가 완성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 마음에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하는 말이 얼마만큼 윗부분을 잘라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모의 얼굴이 그 잘라낸 부분에 해당합니다. 그러고서 새로 만들다가 아직 못다 하고 미완성인체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한자도 훨씬 넘는 부분이 제거된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하체부분은 완성된 채로 있습니다. 잘라내기 전의 오른쪽 팔은 아까워서 떼어 내지 못했는지 그냥 붙어있습니다.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 만든 것을 한구석 깨낸다는 것은 그 나이에 어려운 일입니다. 그 지킴이 아저씨가 모처럼 임자 만나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 모험에 도전을 했는지 그의 갈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모슬포 안쪽에 추사가 유배되어 있던 곳을 새로 꾸며놓고 기념관에 복사판 그림과 글씨들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갈 때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번 나 혼자 그 방을 서성이다 나오곤 했습니다. 한번은 기척을 듣고 당직실 같은 방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내가 세한도 앞에 서 있을 때이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그림 옆에 있는 한문을 읽을 줄 몰라서 늘 궁금하다고 말을 걸은 것입니다. 그이가 도로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 번역본을 들고 나왔는데 한국어 일어 영어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신이 나서 묻지도 않는 설명을 하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세한도 가운데 허리 부러진 노송(老松)은 추사선생 자신이고 그 옆에 서있는 젊은 나무는 이 편지를 받는 역관 이상적이고 또 왼쪽 끝에 서있는 두 나무를 설명하는데 하나는 초의(艸衣)스님이고 하나는 제자 소치(小癡)선생이다 하는 것입니다. 처음 듣는 말이고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적을 통해서 세한도가 중국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 의미의 있음과 없음의 절묘함에 경탄을 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세한도란 겨울 풍경이라는 말인데 모든 것을 박탈당한 쓸쓸하고 고적한 신세를 뜻합니다. 완당의 세한도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 그 미완성의 피에타가 어쩐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와 나이는 서로 달랐으나 예술이 종국에 가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길고 긴 여운을 갖는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같은 모양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이 의미를 배제하면 공허해진다는 것과 의미가 예술을 지배하면 예술이 쇠퇴한다는 말이 세한도와 론다니니의 피에타와 거기에 직결되는 무엇이 있다는 믿음이 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세한도를 그릴 때 완당의 마음과 마지막 피에타를 끝맺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을 미켈란젤로의 마음. 그들이 어느 경지를 살고 있었을까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사람이라는 점에서도 서로가 닮아있습니다. 예술이 예술을 넘는 곳과 함께한 이들이라는 점에서도 닮아있는 것입니다.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또 있는데 예술이라는 것이 인생의 최종의 목표일 수 있는가. 예술은 방편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종교란 것이 목표는 될 수 없다 하는 생각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어딘가를 지향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계를 넘는 곳에 어떤 진정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