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6년 성서와 문화

청자의 마음

성서와문화 2010.01.19 18:03 조회 수 : 1060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 온 한국의 예술적 걸작으로는 신라의 불상들과 함께 고려의 청자가 있다. 청자는 유약 속에 있는 철분이 고온의 환원염에 의해 청록색으로 변한 비색의 도자기이다. 이것은 본시 송나라에서 발전된 것이었으나 그것을 신비로운 비색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은 고려인들이었다. 비색이란 비취색이라는 뜻도 되고 감추어진 신비로운 색이라는 뜻도 된다.
송나라의 학자 태평노인은 고려의 비색을 천하의 제일이라 했다. 송나라의 청자가 도달할 수 없었던 경지의 비색이었던 것이다.
비색이란 심오한 신비로운 청색이다. 하늘의 색이요, 바다의 색이기도 하다. 환원염의 연기를 먹은 검푸른 청록색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깊고 고요한 색이다. 비색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의 깊은 세계로 이끌어 간다.
엘 그레코의 성화들은 청색을 띄고 있다. 현실을 넘어선 거룩한 세계의 표현이다. 피카소는 한 때 푸른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색상이 찬란한 현실의 허위를 깨고 존재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세잔느는 풍경화에 종선을 삽입하고 선과 선 사이를 푸른색으로 메웠다. 자연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청색을 종교적인 비색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 고려 사람들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비색을 낳게 한 것은 우리들의 영성인 풍류도였다. 풍류도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종교적 영성이기 때문이다.
풍류도는 청자의 색상에서 뿐만 아니라 문양으로도 나타났다. 푸른 하늘을 나는 구름과 학, 늘어진 수양버들과 그 밑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오리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문양의 그림법이다. 일찍이 어느 나라에서도 도자기에 시도된 바 없는 상감(象嵌)기법을 개발한 것이다. 곧 자기의 태토 위에 음각 무늬를 새기고 그 자리에 백토나 자토를 메워 놓은 다음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방법이다. 그러면 희고 검은색으로 은은하게 무늬가 나타난다. 드러내야 할 문양을 흙 속에 감추어서 은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어진황후는 패물을 겉으로 드러나게 차지 아니하고 치마 밑에 간직함으로써 없는듯이 지닌다고 한다(黃裳元吉). 여기에 깊은 멋이 있다.
풍류도란 종교. 예술적 멋의 영성이다. 멋을 형상화한다면 그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으로 알려진 작품은 고려청자 중에서도 띄어난 걸작이다. 이 매병이 지닌 곡선은 황후의 몸매를 연상케 한다. 아가리는 좁고 어깨는 넓으나 그것이 잘룩한 허리로 흘러 내려와서는 다시 안정감을 찾아 늘씬한 다리의 선이 조금 벌어진다. 풍류의 여성적인 곡선이다. 태극도의 음양이 만나는 S형의 곡선이다. 음양과 천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걸작들을 만들어 낸 작가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이름난 소수의 이른바 예술가라기보다는 평범한 도공들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상감청자의 제작이 한창이던 12, 13세기에 걸쳐 산 고승은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다. 자신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부처님의 밝은 지혜로써 일체
중생을 널리 비취어 본다면,
중생상이 곧 여래상이요. 중생심이 곧 여래심이다.
또한 생산업을 처리하는 것이
공작예능이 모두 여래보광명지의 운용과 작용함이니 거기에는 전혀 다름이 없다.
(圓頓成佛論)


모든 사람 속에는 하늘이 주신 ‘한마음’(一心)이 들어 있다. 불교에서 보면 불심이요, 우리 민족으로 보면 풍류도이다. 이것을 깨닫고 보면 여래와 중생 사이에 하등의 차별이 없고, 예술가와 도공사이에 차별이 없다. 일심에 사로잡혀 사심을 버린 도공들의 작업은 자신의 기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 들어 있는 풍류도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는 인위적인 기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위자연의 멋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미의 특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 분청사기이다. 이것은 고려 말에 시작되어 조선조 세종 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한 한국적 청자이다.
이것은 또한 임진왜란 때에 일본으로 잡혀간 도공들에 의해 일본인이 즐기는 삼도수(三島手) 자기의 전통을 만들었다.
고려청자를 사용한 것은 소수의 귀족 지배층이었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지배층이 사대부로 바뀌게 되자, 차츰 청자의 사용도 대중화되어 갔다. 이에 따라 청자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마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재료가 조잡해지고 작품 역시 거칠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감싸기 위해 겉에 백토를 발라 분장한 뒤 구워낸 것이 분청사기이다. 색은 누르께한(황색) 갈색과 쑥색이 조화를 이루게 되며, 문양은 거친 필치로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자유분방한 필치이다.
이러한 대중용 분청 속에 실은 민족적 미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다. 한국미의 특성을 가리켜 기교를 넘어선 무위자연의 미라고 한다. 한국의 도자기들은 “만들었다고 하기 보다는 도리어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찍이 “조선의 도자기의 미는 미(美)와 추(醜) 이전의 미”이며, 그것은 사람이 만든 미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미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영성인 풍류도의 미적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