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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문화의 사이

성서와문화 2010.01.19 18:01 조회 수 : 1001

 
[ 작성자 : 조 재 국 - 연세대 교수 / 신학 ]


새 학기를 맞이한 대학캠퍼스에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청송대 비탈을 올라서 숲속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파란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새
동장군이 물러가고 자연에는 봄의 기운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새 봄의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생명의 환희를 느끼는 자신을 생각하며 문득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이 주는 교훈은 인간에게 어떤 철학보다도
강렬하고 분명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는 우리에게 자연의
진실을 말하고 자연의 선함을 알려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
선인들은 그런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스를
수 없는 순리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자연 속에서
우연히 짧기도 하고 우연히 길기도 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온갖
것들로부터 배우고 자신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임을 깨닫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그런 자연의 모습을 집안에서 재현한 분재문화는 자연에 대한 일본인들의
간절한 그리움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자연과 문화의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억지스러운 것 같기도 한 분재는 모두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바램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강단을 장식하는 꽃꽂이는 자연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인간의 신앙을 형상화하고 있다. 꽃꽂이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이다. 작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성하고
신비로운 신앙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의미의
세계로 전이되어 하나의 문화를 창조한다. 그렇게 보면 문화는 결코 인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판화가 와다나베 사다오는 예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과 함께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연과 친하지
않고는 문화를 지어낼 수 없다. 많은 과학들이 자연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되었듯이 인간 문화는 자연을 따르고 모방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문화의
본질이라 일컬어지는 종교는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곳에 깊은 신앙의
깨달음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에서 천태종을 창시한 사이죠(最澄)는
“산가학생식(山家學生式)”을 제정하여 자연 속에서 수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천태종의 수행자들은 “계를 얻으려면 산에 들어가 12년을 나가지 말고 있어야
할지니라.” 라고 하여 12년간 산에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구원하는 사람을 국보라 이르고, 국보와 같은
인재는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한다. 세례요한도 일찍이 복잡한 마을을 떠나
광야에서 살면서 하늘의 뜻을 구했다. 바람 휘몰아치는 광야의 생활은 자연
속에서의 학습이고 깨달음을 위한 고행이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아본 것은 하늘의 뜻을 읽어내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응답하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자연은 종교 신앙의 보금자리로서 깨달음을 주고 그에
따라 사는 능력을 제공한다. 깨달음과 삶은 그대로 사상과 문화로 나타난다.
그래서 진정한 사상과 문화는 자연과 다름이 아니고, 인간 내면의 자연스러운
나타냄에 다름이 아니다. 서예에서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쓰여진 글을
걸작이라고 한다. 반듯하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 제멋대로 붓 가는대로 쓰여진
글이 자연에 가깝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만들어진 아름다움이
아니라 주어진 아름다움이 더욱 예술적이다. 새 봄에는 바람처럼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고, 자연과 문화가 하나 된 세계에서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