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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이야기- ‘동북아시아 기독작가회의’에 참가하여

성서와문화 2010.01.19 17:56 조회 수 : 1363

 
[ 작성자 : 사이쿠사 레이죠(三枝 禮三) - 다네회(たね會)대표 ]


작가회의 자료에서 처음 본
구상의 시 “까마귀”(1)를 읽게 되면서 “제11회 동북아시아 기독작가회의”의
참가를 크게 기대하게 되었다. 그 시는 통쾌한 시였다.
생각했던 대로
개회강연의 유동식(柳東植)선생님 이야기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놀라운 일로
통쾌한 것이었다. 시(詩)라는 글자는 “언(言)을 시(寺)한다”라고 쓴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섬긴다는 것이다. 말은 로고스,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시인, 예술가이다. 그래서 브레이크는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예술가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현실의 현상세계 배후에 숨겨져 있는 영원한 세계의 의미를 통찰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시이나 린죠(椎名 麟三)의 예술론이
생각났다. 예술이 진실한 놀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을 시간적인
것으로 실현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현은 불가능한 것이어서
행위자체는 난센스이다. 하지만 그런 난센스를 약속의 표적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데에 그리스도인의 예술에 대한 적극성이 있고,
동시에 그리스도인이야 말고 예술을 정말로 기쁘게 생각할 수 있다는 통쾌한
이야기이다.
현길언(玄吉彦)의 “사제와 제물”도 나에게는 놀랄만한
소설이었다. 주도면밀히 준비 한 김승철(金承哲)교수의 평론에 눈이 떠졌다. 특히
소설의 결론에 대한 적확한 비평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예수는 가장 신성한
사제이면서 어린 희생양이지 않았는가?”라는 강철규(姜哲圭)의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제역의 선간백(鮮干白)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치기로 하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려는 마지막 장면의 독법이다. 희생으로서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읽는 비평을 비판해서 오히려 껍데기를 벗긴 내용을 더 벗겨서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읽는 것이다. 껍데기 속에 자기희생이라는 내용을 다시
벗겨보니 자기도취의 환상뿐이였다는 현길언(玄吉彦)의 투철한 비판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예수를 가리켜 외친
세례요한의 증언에서 구원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이외의 모두 희생양은
배제되고,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신학자이어야 그런 비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임의 장소인 아카데미하우스는 산속의 한적한 공원 안에 있었다.
식당 창가의 나무 위에 희고 검은 털로 치장한 새들이 집을 짓고 긴 꼬리를
흔들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시인인 미남자 고진하 목사와
둘이서 한구석에 마주앉는 기회를 얻었지만 애석하게도 한국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몸짓과 손짓으로 식탁에 놓여있는 요리 이름을 물어보았다. 물론
새의 이름도 까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가사사기(까치)가 한국에서는
길조로 잘 알려진 새인 것 같다. 강연규(康延珪)의 “토끼의 눈(ウサギの目)”
에서 조연자로 나온다. 주인공은 물론 토끼이지만.
같은 식탁에 개회강연의
강사인 유동식선생님이 앉았는데 맞은편에 “다락방”의 편집자인
정종화선생이 식탁 위에 있는 비빔밥을 가리키며 저널리스트답게 “柳선생님의 사상은
비빔밥 사상이라오”하고 가르쳐 주었다. 사전으로 찾으니 비빔밥은
“고목구메시(五目飯)”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그러면 놀라운 강연규의 “토끼의
눈(ウサギの目)”의 문체도 당장 한국에서는 잘 알려진 “비빔밥”문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이야기의 각 악장을 각 장에
어울리는 문체로 연주하면서 하나의 주제를 노래하는 곡을 편곡하려고 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 본 것인지로 모른다. 어차피 “이 사람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평가받은 나타나엘 같은 작가 본인의 웃는 얼굴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문체를 그대로 믿고 이해하는 것도 전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주제란 무엇인가? 추태화 교수는 그 동화가 가진 힘을
폭력과 정쟁에 의한 피해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더 단순하게 역시 평화가 주제라고 말하고 싶다. 다리가 짧고
배만 나오고 체인스모커인 “올챙이의 아저씨”는 손톱까지 노랗고 이빨도
더러웠다라는 묘사, 전화선으로 만든 빨래 줄을 나누어 가지고, 스스로 튼튼한
새 덫을 머리 써서 만드는 과정의 묘사 등에서 보여지는 리얼이즘, 담배와
덫을 교환할 때의 아저씨와 인규의 흥정이나 전화선을 나누어 줄 때의
아줌마와 주고받는 말의 리드미컬한 흐름은 훌륭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인규의 꿈속이라고 하면서도 덫에 걸려서 중상을 입은 피해자 쪽의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미니드라마를 삽입한 것은 브레히트의 소위 이화효과를 운운할
것도 없이 인규와 독자 가운데 시한폭탄 같은 충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것은 더욱 전쟁이야기나 새로운 덫 만드는 이야기, 사냥의
이야기의 흥분에 의하여 묻혀버리지만 결국 꿈속에서 뛰어나온 토끼의 눈에
의하여 다시 폭발한다. 적어도 인규에게는 모든 덫을 철수하게 하는 회심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인규의 손에 남아있는 피 묻은 철사와 작은 백골은 폭력에
대한 후회와 평화에 대한 희구일 것이다.
평화에 대한 희구라고 말하면
가을호 “성서와 문화”지 표지화의 “새와 여인”이라는 훌륭한 조각이 있었다.
작가회의에서도 참가했던 김효숙선생의 작품이다. 겨우 도래한 비둘기를
환영하면서 맞이하려는 여인이, 나긋나긋한 전신을 비둘기의 목처럼 앞으로
기울이며 손을 내밀고 있지만 비둘기는 그 양손 사이를 빠져나가 또 다시 머리
위로 날아올라 당장 날라가 버리려고 한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활을
쏘는 듯 몸을 뒤로 기울이면서, 더욱 뒤로 올린 손을 길게 뻣친 여인의
손가락에 간신히 비둘기 꼬리의 끝이 닿아있다. 실로 그런 약동적이며 더욱 긴장이
느껴지는 훌륭한 브론즈상이다. 나는 제멋대로 부제를 붙여 보았다.
“평화여, 아아! 평화여.” 찬송가에서는 물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주신
평화여.”라고 이어지지만.
지각이 둔해지고 걷기도 힘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 자상하게 마음을 쓴 젊은 연구자들을 비롯하여 회의의 준비로부터
접수와 운영까지 모든 책임을 맡아 준 한국 쪽의 주최자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마지막 날 밤에 작은 연회를 준비했다. 나는 이반(李盤)선생 옆에
앉았다. 앞에는 흥을 도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상보(李相)선생이 통역도
겸해서 앉아 있다. 그 이상 황송한 자리는 없다.
희귀하게 이반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 말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을 나에게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말해 주셨다. 물론 그 한마디 한마디는 통역도 있기 때문에 확실한
이야기이다.
“아꾸다가와(芥川)도 읽었다. 미시마(三島)도 읽었다. 오에(大江)도
읽었다. 하지만 시이나(椎名)가 제일이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 “영원한
프롤로그”(永遠なる序章)을 읽었을 때 이것이 진짜다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지의 나라에서 갑자기 지기를 만난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지옥에서 만나는 부처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무의식중에 선생님과 어깨를 잡고 그 말을 서로
확인했다.
실은 시이나 린조(椎名 麟三)선생님은 전에 나에게 자기소설의 수명에
대해서 “50년도 견디면 좋겠지”라고 문득 말한 일이 있었다. 홍수와도 같이
유행에 흘러가는 세상에서는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50년이 되어도 60년이 되어도 나라를 달리해도 상황이 변하여도 아직도
이것이야말로 진짜다라고 계속해서 읽어주는 지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동지가
있었다. 이 만큼 통쾌한 이야기가 어디 또 있을까. 나는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보고하고 싶었다.
시이나 린조의 문학은 옥중에서 직면한 죽음과 사랑의
불가능이라고 하는 벽에 부딪친 허무의 심연으로부터 “살려 주세요”라는
소리로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은 일관하여 허무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를 만남으로 해서 드디어 허무는 돌파되고 극복되었다.
지금은 그의 문학이 유모어와 함께 그것을 증언하는 문학이 된
것이다.
이튿날 주일예배에서 나는 토스토에프스키의 『악령』가운데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를 인용 했다. 무신론자의 장교들이 마시면서 하나님을 비방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골똘히 앉아있었던 바닥부터 올라가 특진한 대위가 갑자기
방 가운데 서서 큰 목소리로 “만일 하나님이 없으면 나는 이미 대위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거야” 라고 말하면서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재국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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