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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XⅥ 베토벤의 초상

성서와문화 2010.01.19 17:55 조회 수 : 1292

 
[ 작성자 : 김 순 배 - 음악 ]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음악은 서로 상반되는 경향들의 밀고 당기는 작용을 통해 그 역사를
만들어 온 예술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음악에 묻혀 지내던 세속음악의 등장이
그렇고, 질서를 떠나려는 원심력과 그것으로 회귀하려는 구심력이 팽팽한
대치상태를 이룬 바로크의 음악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또한 나라나 지역의
구분 없이 비슷한 작곡기법을 쓰는 ‘공통관습(common practice)’의 시대를
구가하다가 곧 자기만의 빛깔을 찾아가려는 ‘민족주의’의 경향도 음악사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충의 역사 속에서도 가장
극명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형식과 내용, 이성과 감성으로 대표되는 이중성의
대립입니다. 어느 시대에도 예술가들은 당대가 규정한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동시에 어느 시대에나 그 틀과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포기한 때도 없었습니다.
실상 상반되는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야말로 창조력의 원천입니다. 비록 예술가, 음악가들은 그 틈새에서 피
흘리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변화와 진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지요.


18세기의 소위 ‘고전양식’이 그 기본구도를 확립하고 내부의 어법들을
다져서 음악을 재단해 나가던 시기에도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욕구가
잠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서와 형식미의 필요성과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있던 고전의 정신 속에서도 일탈을 향한 자의식은 언제나 살아 있었던 거지요.
사실 18세기 중, 후반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통해 정리 정돈된 고전작품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귀족들의 요청에 의해 공급되던 ‘실용음악’이었습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천재이자 불세출의 작곡가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시대의 봉사자들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달랐지요. 잘 알려진 교향곡
‘운명’은 더 이상 공급용 음악이 아닌 깊은 내면의 고뇌, 그
표출이었습니다. ‘운명’의 기조는 타율이 개입하지 않은 인간존재의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생생한 목소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또한 교향곡 9번 ‘합창’은 서로
다른 악기들과 사람의 목소리가 최초로 대등한 관계로 결합된 위대한
인간정신의 표현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이든이 오라토리오를 통해 자연적인
것을 훌륭히 묘사하고 모차르트가 오페라를 통해 인간적인 것을 또렷하게 그려
내었다면 베토벤은 그 두 가지를 합일하는 과업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고전주의가 형성시킨 강건하고 명료한 외형적 이상에 자연적이며 유기적 내용의
긴장으로 가득 찬 내적체험을 접목시킨 것이 바로 베토벤의 모습입니다. 그의
출현을 분기점으로 음악은 실용적 가치를 초월해 향후 세대를 뜨겁게 달굴
‘절대예술로써의 음악’의 면모를 지향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감화된 최초의 자유주의적 낭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동시대의 문인 쉴러가 자신의 희곡 ‘군도(群盜)’에서 드러낸 바 있는 혁명에 대한
낭패감을 그도 동일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토벤이 희망을 걸었던
이상적 존재를 음으로 형상화한 교향곡 ‘영웅’은 이제 현실에서는 실패한
모형으로 변하고 말았기에 베토벤은 더욱 더 안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현실 속의 인간군상이 베토벤에게 안긴 환멸을 극복하기 위해 그에게는
초월이 필요했습니다. 당대의 음악적 규범은 그를 채워줄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은 어떤 면에서는 독일 문학이 열망했던 ‘영웅으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a hero)’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독립적
자아와 자유를 추구하되 끝없는 시련에 몸부림치며 이성과의 사랑에는 번번이
실패하는 전형적인 ‘c minor(다단조)的’ 분위기의 인간이 그입니다. (실제로
그의 많은 작품들이 이 ‘다단조’로 되어있습니다.)


베토벤은 그의 삶
자체에서도 고전과 낭만의 극한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일상적으로는
지극히 단조롭고 평이한 것이었지만 내면에 늘 들끓고 있던
파토스(pathos)는 용암의 분출처럼 언제 범람할지 예측 불허였지요. 베토벤은 자의식 과잉의
이상주의자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그와 교류가 있었다고 알려진 근본적인
고전주의자, 괴테와는 많이 달랐지요. 그 두 사람이 함께 가다가 귀족의
행렬을 만나게 되었을 때 길 한 옆에 비켜서서 깊숙한 경의를 표했다던 괴테와
아랑곳하지 않고 갈 길을 갔다는 베토벤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두
사람 행동 양식 차이는 그들 세계관의 편차입니다. 실제로 괴테의 음악적
이상도 베토벤이 아닌 절제와 균형미가 승(勝)한 모차르트였다고 하지요.


베토벤이 보여준 강인한 형식 속 낭만적 감정의 고양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면
모든 이원적인 것들이란 언제나 대립의 상태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에게 있어서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 그리고 낙관과 비관 등의
모든 대칭적 관념들은 서로 부딪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보완하며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내는 성공적 결합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베토벤으로부터 낭만주의가 시작 되었다고 보는 보편화된 음악사적 시각은 아주 정확한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낭만주의란 고전에 대한 반작용이
아닌 하나의 정신적 태도이거나 동전의 한 면처럼 온전한 통일체를 형성하기
위한 필요 구성 부분이라는 인식이 보다 설득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형식으로 나타나는 인공적인 것과 감정으로 나타나는 자연적인 것의 위대한 통합이
결국 최상의 상태를 낳기 때문에 고전과 낭만은 서로 대립관계 라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인간정신으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시인
노발리스는 ‘세계의 낭만화’란 결국 ‘총체적이고 온전한 자아’를 찾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낮은 자아가 높은 차원으로 오르는 것 즉 저속한 것에 숭고한
의미를, 일상적인 것에는 비밀스러운 외양을, 잘 아는 것에 미지의 품위를,
유한한 것에 무한한 모습을 부여함으로 ‘낭만화’는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지 19세기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예술이 몸부림치며
추구해온 것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요. 세계와 인간의 ‘낭만화’와
‘수학화’의 반복은 인류역사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언제나 합일의 상태를
지향할 것입니다. 헤겔은 그것을 장대한 체계의 철학으로 정리했고 많은 고통을
통해야 했지만 베토벤은 음악으로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정(正)과 반(反) 그리고 합(合)으로 이루어지는 변증법을 주창한 헤겔과 현실 속에
상존하는 낭만에의 의지를 뜨겁게 확인시켜준 베토벤이 같은 해(1770)에
태어났다는 것은 우연이겠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세계와 인간의 역사를 정, 반
이후의 합의 과정으로 보는 헤겔의 역사관과 전 존재로 그 과정을 육화한
베토벤은 정신사와 음악사에 결정적인 전향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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