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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그 영원의 심볼

성서와문화 2010.01.19 17:54 조회 수 : 1577

 
[ 작성자 : 최 종 태 - 조각가 ]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형태를 뽑아내라 한다면 삼국시대의 불상조각을
들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석굴암 조각과 <금동미륵반가상>입니다. 이 두개의
조상(彫像)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으뜸일 뿐 아니라 인류 문화의 일만 년
역사 속에서도 최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최상의 예술은 이집트나 그리스,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탄생했는데 그것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각기 성질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금동미륵반가상>을
좋아합니다. 나의 형태를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매우 고심하던 시절에
실로 번갯불처럼 내 머리를 치고 들어와서 나에게 희망을 안겨준 그런 고마운
형태입니다. 그야말로 운명을 바꿔놓다시피 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도 수십 년간 지금도 생생하게 내 가슴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가 연전에 부여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백제의 솜씨일 거라 해서 본래의 고향으로 가져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 그 <금동미륵반가상>과 똑같이 생긴
<목조미륵반가상>이 있습니다. 여러 징후로 보아서 백제 사람들이 만들어서 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국보 일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고류사(廣隆寺) 에
있습니다. 그 곳은 지명조차도 우리말 ‘나라’입니다. 나는 하도 궁금해서
그 곳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 이웃에 호류사(法隆寺)가 있는데 거기에는
또 유명한 <목조백제관음상>이 있습니다. <백제관음상>과 <목조반가상>은
일본 미술사에서 으뜸가는 형태일 뿐만 아니라 세계 조형예술의 역사에서
찬란한 경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불상이 모두 우리 조상들의
솜씨일거라고 생각할 때 나는 더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서양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일본을 둘러보고 고류사의 <목조반가사유상>에 대해서 남겨 놓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 부여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금동미륵반가상>에 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의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표징으로서
여러 모델을 접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제신(諸神)들의 조상(彫像)도 보았고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훌륭한 조상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그
어느 것에서도 아직 완전히 초극되지 않은 지상적 인간적인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지와 미의 이상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제신들의 조상에도
지상적인 오점과 인간적인 감정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로마 시대의 종교적인 조상에도 인간존재가 정화된 기쁨이 완전히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것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아직 지상적인 감정의 때가 남아 있는 인간의 표현이며 진실한 인간 실존의
깊은 곳에까지 도달한 자의 모습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류지의
<미륵상>에서는 참으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있어서도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을 넘어서 도달한
인간 실존의 가장 청정(淸淨)하고 원만한 그리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심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에까지 수십 년간 철학자로서 살아오는 가운데 나는
이것만큼 인간 실존의 참된 평화의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이 불상(佛像)은 우리 인간이 갖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징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가 정화된 사랑과
기쁨의 완전한 표현, 청정하고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심볼. 참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징하고 있는 형태.... 이 말들은 아마도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최상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도 예술에 대해서
꾀나 많은 책들을 읽어 왔지만, 한 형태를 놓고서 이보다 높은 경의를
헌정한 글을 아직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찬사가 아니라 경배라고 말해야
옳겠습니다. 나는 야스퍼스를 생각할 때마다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금동미륵반가상>을 보아야 했는데 하고 아쉬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의 찬사가
<금동미륵반가상>에 보다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움
형상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조차도 넘어서 있는 경지가 아닐까 생각되는
것입니다. 야스퍼스의 그 더없이 경건한 헌사는 경주의 석굴암 조각에 바쳐도 꼭
어울리는 말입니다.
나는 조각가로서 인물만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소녀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은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품성에 도달한 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하는데 참 아름다움은 성스러움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될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큰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예술의 흐름을 볼 때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민은 그
물결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판단이 안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잘못
간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백 년간 그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역사는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양(多樣)의 시대라고 관대하게 보려고 합니다.


세상만상 모두가 신비롭습니다. 세상만상 모두가 성스럽습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그것은 영원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예술은 삶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금동미륵반가상>이 표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걸작도 많지만 야스퍼스의 말처럼 그런 표징으로 최상의 경지를 구현한 형태가
<미륵반가상>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손에서 구현될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 세계의 불교권은 방대합니다.
이천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금동미륵반가상>은 오늘도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에게 영원토록 끝없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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