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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警戒)를 넘고, 경계(境界)를 넘어

성서와문화 2010.01.19 17:54 조회 수 : 1249

 
[ 작성자 : 김 수 우 - 시인 ]


낙엽이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쓸고 가던 늦은 오후, 한 뭉치의 원고를 받았다. 각 지역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글 뭉치였다. 벌써 여러 번 해온 심사이다.
어긋난 마음의 뼈를 위한 교정치료 중의 하나이리라. 독후감, 소감문, 결의문,
편지글, 시 등 다양한 형식의 그 글들은 한 마디로 세련된 글쓰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심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절실한 글쓰기가 있을까.
아픔과 통탄으로 너울대고, 후회와 고독으로 출렁이는 문장들. 그러나 꼭
덧붙여지는 건 희망이다. 눈물자국 투성이인 그들의 희망이 마치 잊고 있었던
옛 우물에 당도한 듯 습습한 물기로 나를 적시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오히려 내 자신을 읽게 된다. 내가 만든 경계 속에 그들이 갇혀있음을 깨닫는다.
내 삶과 사유의 경계, 세상의 깊고 아픈 경계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짧게는 몇
년에서부터 20년 이상을 복역하고 있는 장기수와 무기수들. 자신을 경계 짓는
무수한 경계 속에서 그들은 마음의 높은 담을 허물어내는 중이었다. 그곳이 어디
선택하고 싶었던 세계였던가.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경계에 갇힌 그들.
하지만 영어의 몸으로 쓴 글의 끝자락마다 희망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가, 지루한 통회의 시간을 건너가는 또 하나의
경계(經界)였다.
境界, 警戒, 經界. 이 동음이의어는 사실 서로에게 은유가 되는 동의어,
아님 순환 고리로 연결된 동의어가 아닐까.


삶은 크고 작은 경계들로
가득하다. 종, 속, 과, 목을 따지는 현실 구조는 얼마나 많은 경계를 낳고
있는가. 警戒는 境界를 만들고, 境界는 다시 警戒를 만든다. 境界는 조건을
만들고, 조건은 상황을 만들고, 상황은 警戒를, 다시 經界를 만들고 만다. 사실
警戒도, 境界도 햇살에 따라 바뀌는 그림자 길일뿐이다. 삶의 태양은 매일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햇살의 각도에 따라 무수한 그림자들이 생겼다
사라진다. 한순간도 고정된 경계는 없는 것이다.
잘 놓인 빛과 그림자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찾아 다시 달려가면 불과 10분인데도 이미 그 아우라는 흔적이 없다.
그런 경험이 참 많았다. 우리가 警戒하는 境界들도 같은 것이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부와 가난, 사랑과 증오, 선과 악, 죄와 무죄, 차안과 피안,
성과 속, 주체와 객체 등 생각을 구성하는 무수한 경계들이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警戒하고, 境界한, 저 經界들.


조선시대 사람 허후가 지은 「시비의 노래는 오래 전에 내 책상에 붙여놓은
시다.


是非眞是是還非,(시비진시시환비)
진짜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은 것도
그르게 되니
不必隨波强是非,(불필수파강시비)
반드시 물결 따라 억지로
시비할 필요가 없지
却忘是非高着眼,(각망시비고착안)
도리어 시비를 잊고
높이 눈을 둔다면
方能是是又非非,(방능시시우비비)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 할 수 있으리


비운 마음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던가. 지상의 모든
눈동자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더란 말인가. 시비(是非)에 대한 경계가 결국
진정한 옳음을 그르치고 말 때가 너무 많다. 교도소 안의 글쓰기가 아픈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오래 상처받은 절망과 분노로 한순간 실족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거의가 그랬다. 그들에게서 그냥 나 자신을 본다. 그리움과
아픔과 후회와 고독과, 꼭 덧붙여지는 희망까지도 다를 바 없다. 나의 죄와
업보와 한계도 그들과 한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경계라니. 좋아하는
「시비의 노래」가 민망해진다.


예수님은 警戒를 버리고 境界를 벗어난 삶을
행동하고 전파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간음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돌을 던지려는 군중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허물어뜨린 모든 경계를 보여준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밀이삭을 자른
예수님. 경건한 바리새인을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화를 내고,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은 삶의 크고 작은 경계를 지우고 있다.


우리 속에 있는 경계라는 게 얼마나 모순이 많은가. 일상의 경계가 가진
관습과 고정관념을 허물어버림으로서 참된 경건과 참된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인 것이다. 진정한 온유와
겸손은 잘못된 경계를 버림에 있음을, 어린아이를 좋아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본다. 그건 바로 영혼의 혁명인 것을.
붓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금강경의
경구들이 하나 같이 빛나는 지혜지만 늘 나를 새롭게 하는 말이 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아무데도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낸다는 말이다. 모양이나
소리나 냄새, 맛, 감촉, 법 따위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어떤 것을 판단하지 말며 자신을
보라는 말이다. 답답하거나 외롭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되새기는 경구이다.
그건 곧 警戒를 지우고 境界를 지우고 다시 經界를 지우는 일이
아닐까.


우리 현실이 너무 좁고 복잡하다. 경계가 너무 많아서이다. 삶을 죽음인 듯
넘고 죽음을 삶인 듯 넘을 수 있는 자기만의 사유가 절실한 시대이다.
단순하고 큰 하늘을 갖기 위해서는 경계를 하나하나 지워내는 수밖에 없다. 경계를
넘는다는 건 이해하는 일이고, 사랑하는 일이고, 용서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데워지는 건 자신의 체온이고, 결국 찾을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생명이며, 또 희망일 것이다. 교도소내의 글쓰기, 모든 글의 말미에 꼭 덧붙여지던
희망의 말이다.
오늘은 돌집에 가고 내일은 상갓집에 가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아침엔 누군가의 결혼소식을, 저녁엔 누군가의 이혼소식을 듣는다.
그러니 조금만 지혜로워도 햇살 속의 그늘을 생각하고, 그늘 속에 있는 햇살이
보이리라. 글을 통해 용서를 비는 그들은 사실 이제 세상을 용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눅눅한 언어 속에서 내가 만든 경계 속에 갇힌 그들이 오히려
나를 풀어주고 있는 느낌이 이렇듯 절실한 건 왜일까.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오래된 난간에 놓인 맑은 차 한 잔이 깊다. 내가 가진 경계와 내가
넘지 못한 경계들을 본다. 또 교도소 담장 속에서 생활하는 손과 발들이
넘고 있을 마음의 경계를 본다. 내가 열심히 넘어야할 마음의 경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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