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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름 바 다

성서와문화 2010.01.19 17:51 조회 수 : 1242

 
[ 작성자 : 허 영 수 - 소설가 ]

 
우리
동네 상가 간판에 ‘구름으로 만든 솜사탕’이라고 크게 붙어 있어, 무슨
가게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의외로 유·아동 미술 교육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름은 우리나라 산에 걸려 있는 구름이다. 한국의 산은
아름답다. 숲도 계곡도 아름답다. 살아 숨쉬는 구름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구름이 비가 된다. 비는 산을 살찌게 하고 수목을 무성하게 할 뿐 아니라, 맑고
찬 개울이 노래를 부르게 한다. 때로는 폭풍우에 피해를 보지만, 그
보상으로 산천의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의 난폭함이 없는 대신, 죽음 같은 고요함만
있다면 행복할까.
나는 산에 자주 간다. 갈 때마다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산의 풍경은 끝없이 변하며 움직이고 있다. 여러 가지 구름과도 만나게
된다. 구름이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고 변색하는 모습은, 어떤 사생도 촬영도
따라올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쾌청한 날보다, 구름이나 안개가 천변만화의 미묘함을
연출해 줄 때다. 맑은 산은 곧 싫증이 나지만, 구름은 산을 웅대하게 때로는
신비하고 우아하게 만든다. 기대했던 산이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나타났을
때의 놀라움, 한국의 하늘은 끝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구름 이름이
우리처럼 풍부한 나라도 없다. 양떼구름, 모자구름, 새털구름, 나비구름,
비늘구름, 뭉게구름, 정어리구름, 조개구름, 털쌘구름, 두루마리구름, 헬 수 없이
많다. 함경 남·북도에는 ‘구름 국화’라는 예쁜 이름의 구름도
있다.


산이 여름 단장을 할 때 쯤 늦은 봄비가 내린다. 이 우중충한 계절을 한탄하는
것은 시멘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산에 가서
정취 깊은 경치에 접해 보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
내리는 산에 오르면 신록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가득 차고, 비구름이 끊어진
사이로 산이 나타났다가 숨어버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봄비가 끝나고 여름이 오면, 호쾌한 구름 봉우리가 창공에 피어오른다. 그
모습은 한 번도 같을 때가 없다. 성각(城閣)이 되었다가, 승천하는 용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도망치는 구름, 잘게 찢어지는
구름, 구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구름, 구름들의 운동회를 보는
듯하다.
해발 1000M 넘는 산 위에서 벌어지는 구름의 초호화판 향연은 운해(雲海)다.
지상에서는 구름을 우러러보지만, 여기서는 내려다본다. 눈 아래 깔린 구름은
바다다. 그 물결 사이로 높은 산만이 섬처럼 검은 머리를 내밀고 있다.
파도는 섬의 벼랑을 씻고, 내해(內海)로 스며들고, 드디어는 파도 아래로 덮여
버리는 것도 있다.
어느 여름의 끝 무렵, 친구와 둘이서, 한계령 지붕 위를
걷다 저녁 때 쯤 되어서 긴 정상을 걸어 피곤을 느꼈을 때였다.
그 때 바라본
구름을 잊을 수가 없다. 여느 때처럼 온화한 구름바다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나 미쳐버린, 싸우는 구름의 파도였다. 바라보이는 끝까지 눈 아래 세상은
희디흰 파도에 묻혀 있어, 힘찬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처럼
무럭무럭 하늘로 말려 올라가는 놈, 솜사탕 같이 둥실둥실 솟아나는 구름,
그것들이 서로 밀치락달치락, 부풀어 올랐다가, 무너졌다가 생명이 있는 것들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것이 기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실체적인
충실감이었다.
그것은 장관인 동시에 깊은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해 질 무렵
미친 듯이 날뛰는 구름의 물결은 엷은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우리들은 피로도 시간도 잊고,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도 잊고, 그냥
묵묵히 바라보았다. 광막한 구름, 조물주의 영묘한 걸작에 고개 숙일 뿐이다.
잡념을 씻어 털어 버리고, 선의만 간직하고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걷기 시작했을 때, 구름바다는 벌써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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