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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XⅤ 도취와 각성의 변증법

성서와문화 2010.01.19 17:49 조회 수 : 1313

 
[ 작성자 : 김 순 배 - 음악 ]


다시 가을, 존재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절입니다. 자연은 해마다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일깨워 주지만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해결 못할 이분법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일상과 일탈, 이성과 감성,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이율배반의 고통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엄존하니까요.
음악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
필연적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서양의 정신사도 이렇듯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 이분법의 갈등은 19세기 말 드디어 일종의
비등점 내지는 폭발점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니체와 쇼펜하우어 같은 문제의
철학자들 때문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신을 죽이고’ 기존의 기독교적
구원관으로부터 힘과 가치를 모두 빼앗은 니체에게 한 줄기 남은 희망은
음악이었고, 염세적인 세계관으로 당대의 지성을 물들여버린 쇼펜하우어도 음악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영혼의 갈증을 해소 못해 줄곧 헤매던 니체에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돌파구이자 오아시스였습니다. 세상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으며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지배할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이론에 니체는 단숨에
매료됩니다. 나아가서 다른 어떤 예술과 달리 음악만이 이념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닌 세계와 생명의 본질인 ‘의지’ 그 자체의 직접적인 표출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절대적 사고도 그에게 그대로 전수됩니다. 음악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근원적 형태이며 문화의 출발이자 전범(典範)인 그리스의 비극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라는 신념을 굳히게 되는 거지요. 젊은 니체 앞에
나타난 쇼펜하우어는 그의 사상형성에 강렬한 기폭제가 됩니다.


니체가
예술의 원형(archytype)으로 제시하는 ‘디오니소스적비극’의 현장이란 곧
음악이 중심 되어 행해지는 제전이었습니다. 그에 대응하는 ‘아폴로的’
예술은 명징함과 균형 그리고 절제를 앞세운 조형의 세계이고 일상의 틀과 한계를
부수며 도취와 황홀경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런 니체에게 홀연 절대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 존재가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입니다. 쇼펜하우어와 더불어 바그너는 니체에게 구태의연한
형식이나 질서를 훌쩍 뛰어넘게 만드는 유일한 가능성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니체가 느낀 당대의 독일 낭만음악은 주술적 영력이 거세된 채 퇴폐적
시민사회에서나 소비되는 무기력한 물건일 따름이었습니다. 니체의 주장대로
그리스 비극(tragedy)에는 디오니소스적 요소와 아폴론적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극을 통해 허무에의 의지를 극복하고 무미건조한 대사에 음악을
집어넣어 형이상학적 구조를 탄탄히 함과 동시에 황홀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바그너의 오페라들이야말로 그것의 생생한
구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니체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청년의 우울을
극복하고 견딜 수 없는 삶의 압박감으로부터 잠시나마 도피할 수 있게 만드는
‘환각작용’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바그너는 위대한 작곡자임과 동시에
열세 살 때 이미 희곡을 써내기도 했던 문학 신동출신입니다. 그 역시
쇼펜하우어의 저술을 읽고 깊이 감동하여 음악을 현세를 통치하는 하나의
수단으로까지 여기는 지경에 이릅니다. 바그너는 오페라들 속에 낭만주의, 계몽주의,
고전주의의 모든 요소를 집어넣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깊이 사로잡았던 것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와 전설 그 속에 내재한 무한대의 자부심과 영원한
열정의 세계였지요. 아시다시피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은 ‘제국주의적 관점’과
‘反 유태인성향’이라는 위험한 경로로 흘러들긴 했지만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 바그너는 그의 작품 속에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세계관과 의지부정의 경향을 뚜렷이 표방합니다. 나아가서 ‘파르지팔’ 에서는
쇼펜하우어적 고뇌와 구원에 관한 철학을 그대로 음악화 하게 되지요.
그런데 니체는 바로 그 순간 바그너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파르지팔’이
내세우는 주제에 기독교적 구원의 모티브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한편
바그너가 심취했던 쇼펜하우어도 결정적인 경우에 바그너와 헤어집니다. 바그너가
음악보다도 언어 및 다른 연극적 요소들을 오페라에 있어서 더 중시했다면
쇼펜하우어는 그가 의탁하고 싶었던 ‘유일하게 순수한 의지’인 음악이 그저
절대적인 형태와 형식 속에 머무른 채 있기를 더 바랬으니까요.


투항과
배신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그의 교향곡 3번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니체와 작별합니다. 삶과 죽음은 어차피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일진대
니체는 파멸로 내달을지언정 이 둘을 다 껴안고 가려는 자세를 보인 반면, 말러는
인간의 고통 그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천착해 들어갔지만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신의 사랑’을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 이윽고 그 방향타를 틀고
있습니다.
말러와는 달리 좀 더 외향적이고 체재순응적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니체에의 깊은 경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가 열렬히 숭배했던 바그너의 영웅주의적 음악관이
20세기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어떻게 파행적으로 이용되는지를 말년의 그는
쓸쓸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신의 존재 의식하기와 과감한 인간의 홀로서기
사이에 인류의, 특히 서양인들의 딜레마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반항과 버팀의
역사는 19세기 말 데카당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치열하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지요. 말러는 신을 부정하는 니체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 니체는
바그너가 오페라 ‘파르지팔’을 통해 기독교적 구원의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이유로
그와 결별을 고합니다. 오래도록 서양정신을 지탱해 주고 있던 헤겔식의
변증법적 태도에 정면 대응하는 니체의 ‘변증법, 그 자체와의 대립’은
바그너를 거부한 이후 극도로 혼돈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니체의
고행이 시작된 겁니다. 그가 닻을 내릴 수 있거나 최소한 위로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영혼의 항구는 이제 없어졌습니다. 마침내 실성한 채 세상을
버려야 했던 니체가 가열하게 비판했던 바그너는 그에겐 떨쳐버릴 수 없는
과거의 행복을 추억케 하는 운명이자 ‘아물지 않은 상처’ 였음이
분명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가들, 그것도 음악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던
그들과 당대의 기린아 바그너와의 정신적 이합집산(離合集散),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애증관계, 도취와 배신, 경탄과 혐오의 역정은 온갖 종류의 열정과
투쟁이 그 혼란의 극을 향해 달리는 세기말 진한 데카당스의 풍경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더군요. 동시에 ‘열광과 환멸’, 그 낯설지 않은 과정을 다시금
씁쓸히 되씹게 하기에도 모자람이 없구요. 자고로 ‘해 아래 새로운 건 없다’
라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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