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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그 삶의 여유

성서와문화 2010.01.19 17:48 조회 수 : 1267

 
[ 작성자 : 임 인 진 - 시인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 보아야만 보인다.”
이는 생떽쥐베리가 그의 동화 「어린 왕자」를 통해 한 말이다. 보아 뱀이
커다란 코끼리를 생으로 삼킨 것을 상상하며 그린 어린이의 그림이 어른의
눈에는 모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어른의 속성을 빗대놓고
하는 이야기이며 참 사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인간성 회복의 문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말이기도 하다.
첨단과학이 이끌어가는 인간의 기계화 현상에
말려들어 숨 돌릴 겨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성 회복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에서 우러나는
정서표출과 창조적 삶의 가치를 드높이며 면면이 이어온 문화예술의 전승과
그것들을 위한 재창조의 노력조차도 수없이 벽에 부딪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범람하는 외래문물의 틈바귀에서 우리의 전통문화, 특히 전통 문인화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전통사회의 특권층과 지식계층인 사대부와 선비들의
음풍농월(吟風弄月) 수준의 낡고 쓸모없는 유물로 거들떠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드러나는 일이다.
드물게나마 기성화가나 신인들 중에 문인화의 맥을
이으려는 이들이 있고 가끔 전시회도 열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사군자(四君子)를 비롯해 문자의 기본해독과 실기를 익히지 못한 가운데 현대적
조형감각의 의도만 지나치게 노출되어 문인화의 정통성이나 보편성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세태가 혼탁할수록 청렴과
학덕과 지조를 으뜸 덕목으로 삼던 선비정신이 자못 아쉽게 느껴진다.
그들의 정신과 그들이 남긴 유품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정신이 아직
우리들 안에 숨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시, 서, 화 삼절은 문인화의 근간이며
선비정신의 매개체다. 사물의 사실적 형태보다는 구도의 단순성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시의(詩意)의 여유로움에서 수기(修己)의 뜻을 간직한 선비의
정신세계를 드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풀들, 쓰러져가는 나무,
강심에 띄운 쪽배 하나, 먼 산자락들, 한결같이 보잘것없고 무심해 보이는
것들이다. 먹의 농담(濃淡)뿐으로 어찌 그토록 맑고 아름다운 여운(餘韻)을
가슴에 안겨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의 심성을 다스리며
삶의 여유와 멋을 토착성 짙게 창조한 우리 전통 문인화는 높은 기상과
따뜻한 인간애, 풍자와 해학, 독창성과 고유성도 있어 진정한 보편성과도
통한다.
예컨대, 우리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서구의 미술관들을 돌아볼 때,
그토록 많은 초대형 회화들을 보면서 예술적 심미감에 사로잡히기에 앞서
무겁게 다가오는 인물들과 사건위주로의 내용에 짓눌려 그야말로 식상할 지경이
아니던가. 천편일률적인 종교화가 아니면 왕실들에서 일어난 숱한
이야깃거리며 무시무시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인물중심의 그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흔히 눈부시다고 말한다. 언뜻 듣기에
환하고 밝은 색감을 이르는 듯하지만, 진정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진실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
더욱 아름답다는 뜻이다. 문자의 조율이나 구도상의 변화를 통한 기교와
꾸밈이 아닌, 생명과 자연에 대하여 눈부시도록 깊은 성찰을 거친 뒤 새로운
조형감각의 접목(接木)으로 거듭나는 문인화 시대를 기대해 본다.


전통적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필치의 사의(寫意)를 나타낸 20세기말의
문인화가로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 1922-1993) 선생을 들 수 있다.
고고학자이며 미술사학자인 그의 여기적(餘技的) 취향이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것은
즉흥적이면서 솔직담백하고 자유로운 필치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물을 통해 폭넓은 화자(畵者)의 문기(文氣)를 그대로 드러냈으며 기교나
꾸밈없이 수묵의 농담만으로 그린 산수화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그대로이며
탈속(脫俗)의 경지로 안내한다.
그윽한 산천이 꿈속처럼 고즈넉한데 나무 두 그루
휘어져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버텨 섰고 강심엔 한 어부가 고기를 낚고
있다. 무색으로 처리된 강물엔 못 다한 사설(辭說) 한 자락 깔아놓은 듯
여운(餘韻)이 감돌고 쓰러져가는 고목은 노학자의 상심(傷心)과 고뇌(苦惱)를
안고 있는 것처럼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화자는 곁들인 글에서 의연히
마음을 열어놓고 깨달음의 여유를 보여준다.


“하늘과 땅은 영원히 베풀고
생육하나니
사람의 삶이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으랴.
잠자코
따르리라.”


외롭고 고달픈 기색이 역력한데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늘 뜻을 따르겠노라고
다짐하며 스스로 마음을 갈아 앉힌다. 청빈한 학자의 양심과 탈속한 생활철학이
창조적인 희열을 이끌어내고 있다. 헛된 욕망과 갈등, 치열한 일상을 깨끗이
씻어낸 가슴에는 오직 감사하는 마음과 정결한 소망만이 가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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