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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혼자 치르는 고요한 혁명

성서와문화 2010.01.19 17:48 조회 수 : 1238

 
[ 작성자 : 김 수 우 - 시인 ]


칠월 한더위에 파미르고원을 넘었다. 파키스탄
북부에서 중국 서쪽으로 흘러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며칠 내내 이어진 긴
버스여행에 지쳐가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문명지대가 아닌, 이처럼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맨 먼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이만큼 광대한 자연과
매일 마주친다면 인간은 맨 먼저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험한 고원을
넘으면서 그 답이 나왔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파미르는 건조하고 척박했다.
금세 쏟아져 내릴 듯한 바위벼랑을 지르는 산길을 올라 중국 국경을
넘어서니 끝없이 막막한 먼지사막이다. 모랫길과 거대한 바위산, 그 뒤로 이어지는
만년설 산들.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보면서 몸은 경외심으로 차오른다.
태초의 신비가 그러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경이로운 감동은 그 곳 모슬렘들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금세 주저앉을 듯 덜컹이던 낡은 버스는 아찔하고
적막한 모퉁이에서 몇 번 멈추었다. 잠깐 무릎을 펴는 그 짧은 휴식에도
한쪽에서 거친 돌들 위에 이마를 대고 누군가 기도했다. 10분가량의 쉬는 틈에도
돌아서서 뜨거운 모래 위에 혼자 무릎을 꿇는 사람도 있었다. 모슬렘문화일
뿐이라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구약성서 속의 아브라함과
모세의 모습 그대로였다. 신인류라고 불리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난 얼마나 먼
시간여행을 갔더란 말인가.
사하라에서 이년 여 생활한 적이 있다. 소출되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모래바다. 그 곳 원주민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그들의 기도가 아니었던가. 시장 속이든, 공사판이든, 사막
한가운데든 시간만 되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꿇던 그 무릎들. 거기에 비해 문명에
찌든 나의 절망이 싸구려는 아닌지.
송구한 배움을 얻었다. 환경이
척박할수록 인간은 기도하는 법을 제일 먼저 배운다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인간은
대자연을 흡수한다. 자연이 위대할수록 인간은 신을 발견하고 또 사랑하게
된다. 삶이 가파를수록 이마를 땅에 대는 법을 익힌다. 엎드리면서 대지를
배우고 신을 배우고 삶의 근원적인 본질과 자기자신을 자각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펼쳐진 세계를 이해하고, 그와 연대하는 법을 깨달아가는 것이리라.
그건
마치 인류의 가장 순결한 속살을 본 듯한 경이였다. 거친 돌멩이 위에,
뜨거운 모래 위에 신발을 벗는 그들의 삶이 어찌 척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시대가 와도 그들은 제 속에 있던 원래의 순결한 삶을 회복해낼 수
있으리라. 흙땅에 이마를 댈 때마다, 감사와 용서를 끌어안으면서 스스로의 영혼을
상승시키는 사람들. 어찌 그 기도가 매순간 선량한 삶을 창조해내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도는 고요한 혁명이다. 혼자 치러내야 하는 아름다운 혁명이다.
그래서 스스로 생명을 일구어가고 또 세계를 열어가는 것. 그건 곧 자기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닌가. 원시인류도 그랬지만, 사이버 세계를
사는 신인류 족속일지라도 마찬가지이리라. 첨단문명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척박한 삶을 삼켜야 하는 오늘이 아닌가.
마른 덩굴로 우거진, 버려진
포도밭에서 오래 발을 멈추었다. 내적인 고요가 가득했다. 아니 그건 기도였다.
한때 포도줄기를 지탱했던 나무들이 온몸을 내어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바람도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지나는 듯 했다. 거기에 타오르는 숙연한 존재의
힘. 혼자 치르는 조용한 혁명을 눈치챈다.
덤불투성이 묵은 포도밭에
묵묵히 서있는 어깨들. 세상의 모든 침묵하는 기도를 본다. 파미르고원 그
굽이굽이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기도를 듣는다. 뜨거운 모래 위에, 따가운 돌들
위에 엎드리던 이들의 맨발바닥을 기억한다. 이 땅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순박한 기도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기도, 저 아름다운 존재의 자각이여.
기척 없이 이 땅을 채우는 무수한 기적들이여. 버려진 포도밭에서 깊이 묵상에
든, 아름다운 고요를 듣고 또 듣는다. 삶을 구원할 새로운 암시를 읽고 또
읽는다. 생명의 무게가 휘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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