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5년 성서와 문화

우리의 긍지와 사명

성서와문화 2010.01.19 17:47 조회 수 : 1136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나는 일제 치하의 식민지 백성으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
탓인지 한국인 된 긍지나 민족적 사명에 불타본 일이 없이 거의 일생을
살아왔다. 일제의 교육은 우리에게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가르치지 아니했다.
그리하여 우리를 문화도 역사도 없는 열등민족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방후의 새롭게 접하게 된 서구문명은 또 다시 우리를 후진 국민으로
자인하게 했다.
국내의 우리 사정은 이것을 입증하는듯 했다. 자주독립을
했다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는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서로 증오하며
살아와야만했고,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존재들이다.
종교적으로도 그러하다. 한국교회가 그간 급성장하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선교 대상국이었고, 선진 기독교국의 선교비에 의존하여 교회를
확장하고, 그들의 신학을 공부해야만 했다.
우리는 과연 낙후된 열등한
민족으로 태어난 것일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공평무사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로서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나는 바울의 글에서 그 이해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그는 각자마다, 각 민족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는 여럿이다. 각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
지체마다 하늘로부터 받은 은사가
다르다. 그리고 각기 그 은사대로 기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미가
분명해진다. 손은 손의 역할을 하고, 발은 발의 역할을 한다. 눈은 눈의 기능을
하고, 입은 입의 기능을 한다. 그 중 하나라도 자신의 기능을 저버리게 될 때 몸
전체가 장애인으로 변한다.
따라서 각 지체들은 다 같이 중요한 존재들이다.
거기에는 가치의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각 지체들은 자기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을 감당해 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민족 단위로 볼 때에도 그러하다.
인류공동체는 하나의 몸이요, 각
민족은 그 지체들이다. 그리고 지체인 각 민족들은 제각기 다른 은사를 받고
있다.
가령 유대민족의 경우를 본다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언제나 역사의
변두리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야웨 하나님을 신봉하는 유일신
신앙의 종교적 은사가 주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유일신 신앙의 초석을 놓음으로써 인류 문화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서구의 백인들은 합리적 사고능력의 은사를 받은
민족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독교와 함께 헬레니즘을 근간으로 근대문명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 역시 그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한민족이 받은 은사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유대민족과 같이
역사의 변두리에서 살아온 약소민족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민족적 은사가 따로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예술적 창조능력을 내포한
풍류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화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역사가 아니라 예술문화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류도에 입각해서 예술적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우리
민족이 갖는 긍지와 사명이 있다.
이 사실을 일찍이 통찰한 이는 9세기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이었다. 그는 장기간의 당나라 유학을 통해 유교 불교
도교에 통달한 선비이다. 17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가 놀란 것은 조국의
전통문화 속에 그가 터득한 삼교의 종지들이 이미 구현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다. 이에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 고운은 동방의 나라 신라를
찬양하여 이렇게 말했다.


“빛이 왕성하고 충실하여 온 누리를 빛나게 하는
것으로는 새벽 해보다 고른 것이 없고, 기운이 무르녹아 만물을 기르는
공으로는 봄바람보다 넓은 것이 없다. 이 큰 바람과 아침 해는 모두
동방(신라)에서 스스로 나온 것이다.” (무염화상비명)


한국은 온 누리를 밝게
빛나게 하는 새벽의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요, 화기가 무르익어 만물을 육성하는
봄바람이 불어오는 동방의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영성을 풍류도(風流道)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고 한다. .....
이는 실로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중생과
접하여서는 그들을 인간화한다.” <삼국사기>


풍류도는 풍류라는 개념이
말하듯이 예술적인 영성이다. 이것이 근간이 되어 한국의 예술문화를 만들어
왔다.


현대에 와서 한국의 예술문화에 눈뜬 선각자의 한 사람은 일본의
지성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이다. 그는 신라의 고도 경주를 방문했을 때,
8세기에 조성된 석굴암과 불상들을 보고 감격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한국 민족 전체의 마음을 표현한 예술작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 민족의 작품이 아니라 동양의 종교와 예술이 도달한 귀결점이라고
했다.


“예술의 생명은 영원한 종교를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 “나는 이
불상에서 조선이 이해해 온 불교가 얼마나 깊고 컷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종교와 예술은 하나가 되어 있다.”
( <조선과 그의
예술> 1922 )


그 후 그는 한국의 도자기와 생활용품에 나타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동양의 황금시대를
만든 것은 고대 중국의 당나라 문화와 한국의 신라시대의 종교와 예술이었다.
예술은 민족의 내면적 정신과 역사적 경험의 표현이다. 예술은 민족을
영원하게 한다. 그 예술이 있는 한 그 민족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3.1독립운동과 일본의 탄압을 바라보던 야나기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짧고, 예술은 길다.” 미래의 사랑은 승리를 자랑하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예술에 모여질 것이다. 승리하는 것은 예술이요, 칼이 아니다.”
“힘 있는
자는 자신에 의존하고, 즐기는 자는 자연에 산다. 그러나 슬퍼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산다.”


하나님 안에서는 슬픔이 예술적 미를 창조하게 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약소민족의 슬픔 속에 있다 할지라도,
“조선에는 유구한
예술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우리
민족에 대한 기대와 충고였다.
예술과 종교는 제한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며 살아가게 한다.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
사명은 우리로 하여금 한국인 된 긍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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