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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송창근 목사의 친일

성서와문화 2010.01.19 17:43 조회 수 : 1834

 
[ 작성자 : 이 상 범 - 신학 ]

 
고 김삼수목사는
"그믐밤에 더듬어도 목사요, 한 낮에 살펴보아도 목사"란 평을 들은 분이었다.
멀쩡하게 잘 목회하던 교회를 신진에게 물려주고는 시골로 내려가 꿀벌을
치며 농촌 목회에 모든 것을 바치는 분이었다. 가까이에서 모신 적이 있었던 한
목사가 말했다. “내가 만나 본 성직자들 중에서 가장 목사다웠던 분 한
분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김삼수 목사라고 말하지.”했다. 그런데,
김상수목사는 만우 송창근 목사에게서 받은 감동을 잊지 을 수 없노라 했다.


송창근목사가 김천 황금정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은 일제 말인
1940년이었다. 그는 경상북도청의 촉탁직을 맡고 있었다. 물론 일제에 협력하는
직책이었다. 청년 김삼수는 당시 시골 교회의 임시전도사 일을 보고 있었는데, 일본
관헌들의 간섭이 가혹해지자 교회를 떠나 조용히 숨어 지내겠다고 낙동강
가에 조그마한 과수원을 경영하며 소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평소에 존경하던 송목사가 오신다는 말을 듣고 수 십리 길을 자전거를
저어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송목사는 박박 머리에 국방색
전투모를 얹은 군민복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리에는 각반을 둘러서
영락없는 일본군 차림이었다. 우국 청년 김삼수는 송목사 앞에서 대성통곡
했다.
농막에서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망이 되시오? 하긴 나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렇게 조용한 곳에 묻혀서 수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오.”
김삼수가 말을 받았다. “들어앉으실 만한 거처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주선해볼 양으로 운을 뗀 것이다. 그러나 송목사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오, 찾아보면 있겠지요. 하지만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내 한
몸 깨끗한 지조 지키겠다고 은둔생활을 할 수야 없지 않겠소. 일본은 얼마
납지 않았소. 곧 패전할 것이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일이오. 교인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데 지도자가 다 숨어 버리면
교회와 교인들은 어떻게 한다지요? 울며 겨자 먹는다는 말 있잖소. 수모를
받으면서도 양떼들을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참다 보면
하나님께서 좋은 세월을 마련 하셨다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오.”
청년이
물었다. “정말 일본 놈들이 물러가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까?” “오지요. 오고 말구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기 에는 세
가지 유형의 지도자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일본 사람에 항거해서
옥에 갇히거나 순교하는 유형, 또 한 가지는 세상사 참견 않고 뒤에 물러
앉아 혼자 기도나 하는 사람, 또 다른 유형은 현실 여건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있지요. 세 가지 유형 모두가 훌륭하지만,
현실교회를 지키는 일도 의미 있는 일 중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오.
하나님께서 선히 해결해주시는 그날을......” 젊은이는 또 다시 통곡했다.
이번에는 감동의 통곡이었다.
6.25 때, 송목사가 납북되지 않았다면, 한국
장로교의 분열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을 주도했던 이들을 폄하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잣대 보다 더 소중한 어떤 것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1989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만우(晩雨) 송창근은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김관식 채필근 목사의 영향을 받아온 그는 철이
들면서 간도로 건너가 이동휘 문하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무래도 광복이
하루 이틀에 될 것 같지 않으니 돌아가 목사공부를 하라는 선생의 권면을 따라,
열여덟이 되던 해 서울 피어선 성경학교에 입학한다. 김재준 목사의
회고담에 의하면, 그는 서울 남대문교회 조사(전도사)로 시무할 때,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5개월간의 징역을 치르고 출감했다고 한다. 강우규 사건에
연계되어 경시청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청산학원 신학부를 거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에 가입했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일제 말엽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부산에서
성빈학사를 운영할 때, 고등계 형사들에게 압송되어 서울로 와서 경찰서에
수감된 것이 1937년이었고, 4년형을 선고받아 가석방으로 풀려 난 것이
1939년이었다.
해방이 되자 만우의 친일을 두고 입방아를 찧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직접 그를 접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높은 식견과 유머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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