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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평화문화에 대하여

성서와문화 2010.01.19 17:42 조회 수 : 1353

 
[ 작성자 : 김 윤 옥 - 여성신학 ]


‘평화’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시대의 특징인 문화적
내용으로도 ‘평화’가 사용되면서 오늘날의 소위 ‘평화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 같다.
‘평화’라는 말은 인간이 희망하는 최상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서 민족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인사말을 교환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십니까? 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How do you do?도, 독일어의 Wie gehts? 도 일본어의
‘곤니찌와’도 모두가 ‘평화하신가요?’ ‘평화하세요’라는 축복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란 인간이 원하는 최상의 삶의 조건을 의미하며,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은 그러한 평화의 삶을 공동체적으로 조성해 가려는
생활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시대 같은
상황에서도, 평화를 말하는 입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데 있다. 말하자면
지배자의 평화(pax romana)는 민중의 평화(pax popularia)와 상치된다. 성차별적
사회구조에서 남성의 평화는 여성의 평화와 상치된다. 이렇게 ‘평화’라는
말은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개념의 원어 즉 인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노력과
희망의 목표들을 성격지우며 인간들 사이의 고통스러운 반평화의 경험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해서 인간경험의 깊은 차원에 도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은 사회적 공동생활과 정치적 행동을
위한 정향성을 가진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즉 개인이나 국민전체가 폭력,
부자유, 곤궁의 희생자들이 되는 상황에 대해 비판의 척도로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화란 인간의 사회성의 관계를 위한 기본언어이므로, 정치이론도
평화를 지향하고 있고, 인간의 사상사도 전체적으로는 평화 모델의 순차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평화에 대한 개념은 대체로 그리스적 평화개념,
로마적 평화개념, 유대-기독교적 평화개념으로 기본을 이루며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여기의 기본언어인 에이레네(eirene), 팍스(pax),
샬롬(shalom)과 결합된 평화인식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고급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면서 정립이 된 도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스어로 평화
eirene라는 말은 원래 관계개념이나 행태개념이 아니다. 에이레네는 지속적으로
경험되던 전쟁들 사이에서의 공동체의 내적 평화상태를 의미했다. 즉 전쟁
중의 예외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 희랍의 신화군들은 당시의 혼란과
카오스에서 평화적 생활에로의 희원을 신화화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평화의
인격화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700년경에 저술된 헤시오드의 “신의
계보학“에서 에이레네는 여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후기 도시국가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언어는 조화(harmonia)와 융화(homonia)가 되었다. 많은 종족으로
하여 분쟁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평화라는 말 ‘허핑(和平)’도 이와 유사한
의미이다.


그리스시대의 평화가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듯이 로마제국의
평화도 역시 전쟁의 반대개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속성을 요구하는 지배질서의 이념적 정치적 프로그램도 의미했다. 오늘날에도
라틴어 pax에 형용사를 붙여서 정치적 구조를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래서이다(예. pax Americana, pax Economica 등등).
나아가서 pax라는 말은
보상하다, 속박하다(pangere)와 계약을 맺다(pacisci)에서 나온 말로
처음부터 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평화는 군사적
충족행위의 기능개념이었다. 그러므로 “그대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로마의 유명한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오늘날의 평화사상가들은 “전쟁을 준비하면 전쟁이 오고, 평화를
준비하면 평화가 온다.”는 말로 반박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로마의
평화사상은 로마의 신들과의 관계의 계약법적 개념이 되었다. 종교적 의무를
달성하면 신들은 은총과 호의를 약속했다. 로마의 신들에게 드려지는
평화제사(pax-kult)는 로마 정치종교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중심으로부터
시작된, 지배질서의 동부 주변이었던 팔레스틴 지방에서의 로마의 평화는
유대인들의 평화실천, 나사렛 예수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평화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은 전체인간, 그 신체,
영혼, 공동체, 집단, 자연세계, 모든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관계들을
포괄하는 구원과 안녕을 의미한다. 즉 모든 인간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삶의 형식,
삶의 문화로서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문화에서 인사란
형식적인 예의가 아니라 현실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삶,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곤궁을 해결하는 지원, 생동적인 공동체의 경험에 참여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객관적 질서도 아니며 굴복당한 자에게 평화를 보장하는
정치적 지배의 질서도 아니고 영혼과 공동체가 소통하는 조화의
원형으로서의 우주의 질서도 아니었다. 평화 샬롬이란 이스라엘인의 역사적 전체적 삶의
경험으로 인지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권리상실로부터의 해방이 이 말에는 강하게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350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25가지가 넘는다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인간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 전쟁, 기아,
억압, 착취, 차별, 분열, 시기, 적대감, 공격성 등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도서 3:8에서는 샬롬은 전쟁의 반대말이고, 창세기 43:27
이하에서는 건강 안녕의 의미이고, 레위기 26:3-6에서는 샬롬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데 농경생활의 문맥에서 말해진다. 샬롬이 의미하는 구체적인 생활문화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정의롭고 평등하며 따뜻한 배려로 이루어짐을
의미하고 있다. 오늘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구조적 폭력’을 축소해 가는
생활문화를 말한다고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룬 후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과
여기에 대한 반성으로 전쟁의 원인과 평화조건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히로시마의 원폭경험, 아우슈비츠의 비인도적 제노사이드,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제도적 ‘군 위안부’제도의 희생자 등등은 전쟁이 매개가 되어
현재화하는 인간의 악마성을 증명했다. 50년대 미소냉전과 핵무기 개발은 더욱
더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고 55년에는 ‘럿셀 아인슈타인 선언’이
나온다.
그리고 60년대 북유럽에서 시작된 평화연구에서 평화의 반대개념은
전쟁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규정되었다. 그 동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전쟁의 유일한 목적은 평화이다.”라는 통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데서 평화연구가인 요한 갈퉁의 <사회우주론과 평화의 개념>이라는
책과 이반 이리이치의 <폭력으로서의 개발>이라는 책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특히 평화의 반대개념인 ‘폭력’에는 잠정적 폭력, 물리적 폭력
그리고 구조적 폭력이 있다고 분석하여 인간생활 전반의 평화실천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언어로 제시되었을 뿐이지 사실은 이러한
평화연구의 내용은 성서의 평화문화를 의미하는 ‘샬롬’이라는 말 속에, 그리고
산상설교에서 예수가 가르친 생활문화 속에 이미 충분히 표현되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복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라는 산상설교를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존하는 사회의 모든
잠정적, 물리적, 구조적 폭력의 축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정의평화 창조질서의 보존’(JPIC) 프로그램이나 2000년부터
2010년을 ‘폭력을 없애는 10년’으로 선포한 것도 이러한 노력을 의미한다.
나아가서는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방법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가
필수이지만, 남과 북 모든 사람과 자연이 정의롭게 구원을 받게 되는 현실생활의
성취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 성서적 평화문화 확산이 강렬하게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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