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5년 성서와 문화

두 사람의 눈

성서와문화 2010.01.19 17:42 조회 수 : 1276

 
[ 작성자 : 시바사키 사토시(柴崎 聰) - 시인 ]


1
직장을 쉬는 날은 이른 아침에 성서를 읽도록 하고 있다. 구약성서 세
장과 신약성서 한 장씩을 읽는 것이다. 다년간 이렇게 해 온 것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분량을 고려해서이다. 이것이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해줄 때가
있다. 구약과 신약이 ‘나’라는 살아있는 몸인 인간 안에서 만나, 내
안에서 새로운 지평(地平)을 보이는 것이다.
어느 때 나는 창세기 3장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아래의 기사이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인간 타죄(墮罪)의 기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디에서 닮은 표현을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엠마오의 부활 장면이었다.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 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2
첫째 인용은 구약성서 창세기 3장
6~7절에서이


다. 원래는 히브리어로 씌어 있다. 에덴동산에 살게 된 인간이,
하나님이 명하신 「선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서는 아니된다」는
계명을 어겼으므로, 에덴에서 추방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둘째 인용은
신약성서 누가복음서 24장 30~31절에서이다. 원래는 그리스어로 씌어 있다.
스승(랍비)으로 우러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여 비탄에 빠진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한 30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동행하게 된다. 두 제자의 권유로 그 사람, 즉 예수가 마을에 묵게
된다.
그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기사이다. 「최후의
만찬」이 상기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두 기사는 씌여진 연대도 장소도 다르므로,
언뜻 보기에 전연 관계가 없는 듯이 생각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서의 기사는
시대적으로는 당시의 성서,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약성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역의 하나에 70인역성서(七十人譯聖書)가 있다. 번역은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도가 했다고 여겨져 있다. 이방인 전도를
시작한 초기의 기독교회는 많이 이 번역을 사용했었다. 누가복음서의 기자가
이 번역을 몰랐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성서의 본문 중에는 70인 역을
사용했다고 짐작되는 구약성서의 인용이 여기저기 보이기 때문이다.
두 기사에는
공통된 그리스어 단어가 몇 개 사용되어 있다. 단어뿐이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장면설정도 같다.
내 안에서는, 창세기의 두 사람과
누가복음서의 두 사람이 오버랩 됨과 동시에, 네 사람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식사하고 있는 장면이 또렷이 눈앞에 떠올라 온 것이다. 그것이 3의
묵상과 4의 시(詩)로서 결실한 것이다.


3
네 사람은 무엇을 본 것인가.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한 것인가. 네 사람은 음식을
먹은 것이다. 두 사람은 나무 열매를 먹고, 둘은 빵을 먹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선악(善惡)을 알기 위하여 먹은 것이다. 선악을 아는 것은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알몸인 것을 육안(肉眼)으로 보는 일이다. 육안으로 보는 것은
자신들을 상실한 일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서는 일이다.


남자와 남자는 절망을 알기 위하여 먹은 것이다. 절망을 아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일이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경악(驚愕)을 안다는 일이다. 경악을
안다는 것은 빵을 떼는 동작을 육안으로 보는 일이다. 육안으로 보는 것은
자기들을 상실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고향을 자기들의 밖으로 확대해
가는 일이다.


4
한 사람의 눈이 아닌 두 사람의 눈
그 눈앞에 언제나 생명의
양식이 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음성이 있다.
등 뒤에서 바싹 다가드는
음성이 있다.


무지개빛으로 물드는 낙원을 쫓겨나
어둠 빛으로 꾸며진 식탁이
다가온다.


나무 열매를 먹은 머나먼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빵을 뜯는다.

 

과일이 나무에서 해방되는 소리
빵이 어둠에서 뜯기는 소리


지혜와
절망의 소리들이 새김질되어
몸을 피처럼 돌며 출렁거린다.


철이 지났는데
다시 핀 꽃들은 없지만
새 가죽부대의 저 멀리서
물처럼 향기롭게 오는 것이
있다.


5
성서는 불가사의한 책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일상생활에 때로 날카로운 쐐기를 박는다. 그 찰나 일상은 신선한 채색으로 변한다.
앞으로도 글자에만 얽매이지 않고 얼마간 심정에 진폭(振幅)을 느끼면서도
일상생활의 한가운데서 성서를 읽어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종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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