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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명상 -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성서와문화 2010.01.12 21:03 조회 수 : 1071

 
[ 작성자 : 박영배 - 신학 ]

 
신약성서의 첫 페이지는 예수의 족보를 수록한 것으로서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이 그대로 스쳐지나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주의 깊게 살피면 거기에는 깊은 메시지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신약성서는 그 벽두부터 깊은 감동과 은혜로 육박해 온다.
과연 마태 1장 첫 페이지에 숨어 있는 말씀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족보 속에 있는 네 사람의 여인의 이름이다. 즉 마태 1장 3절의 다말과 5절의 라합과 룻, 그리고 6절에 나타나는 우리아의 아내이다. 원래 족보란 남성들을 중심한 계보로써 그 등장인물도 거의가 남성들이다. 즉 남성을 중심으로 한 계보 속에 여성의 이름을 예외적으로 기록하였다면 그것은 특별한 의도와 숨은 뜻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그 여인들이 무언가 특별한 선행과 모범을 보였기에 그들을 족보에 올리지 않았나 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여인은 그 반대이다.
우리는 이 여인들의 신분과 행적을 구약성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다말은 창세기 38장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기 남편의 아버지와의 불륜의 관계에서 아들을 낳은 여인이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죄와 치욕에 싸일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그리고 라합은 여호수와 6장 22절 이하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의 신분은 가련한 매춘부였음이 밝혀져 있다. 이 또한 사람들의 지탄과 경멸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룻 또한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유대인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이야기는 사무엘하 11장에 나타나는 것으로써 다윗이 왕으로서 자기 부하의 아내를 탐한 나머지 충성스런 부하를 싸움터에 보내어 전사하게 한 후 그 아내와의 관계에서 불의한 아들을 낳은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이다. 이 또한 죄와 수치에 싸일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유대인들의 관습으로는 물론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이나 도덕관으로도 우리의 선조 가운데 이상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그 이름을 족보에서 지워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숨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족보는 문제의 이 여인들의 이름을 의식적으로 기록함으로 성서기자의 신앙과 신학적 통찰력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계보가 갖는 특별한 의도와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읽어야 한다. 예수의 이 계보는 죄와 수치에 싸인 인간 역사 속에 연대화해 오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결의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실로 신약성서는 그 첫머리에서부터 복음의 근본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인간들과 같은 계보에 들어가는 행위, 즉 동일한 족보 속에 편입된다는 것은 구체적인 인간역사 속에 현실적으로 연대화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음의 소리는 없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기자는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계셨고 만물은 그 말씀에 의하여 되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요한의 이와 같은 사상은 당시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사상이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준 그 로고스(말씀)가 현실적인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이 땅에 계셨다는 것이다. 즉“말씀이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요한의 증언은 분명히 전통적 율법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이나 형이상학적 로고스 사상에 젖어 있는 헬라인들로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증언이다. 그러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의 수육론(受肉論)은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사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사상이며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패역한 역사 속에, 죄와 치욕에 싸인 역사 속에 하느님 자신이 예수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동참해 오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구원을 선포한 날이다.
복되고 기쁜 성탄 맞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