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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의 천사(天使)

성서와문화 2010.01.12 21:02 조회 수 : 1072

 
[ 작성자 : 김윤옥 -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장 ]


나는 20세기말 10여년을 “페미니스트 관점의 평화”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깊이 관여하면서, 아시아지역의 <폭력의 기억>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실 아시아나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 표면에 부상하는 한편, 남경 학살문제, 일본 관동지진 시 조선인 학살문제, 나아가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알제리아 독립전쟁 시의 프랑스군에 의한 고문이나 학살,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의 선주민에 대한 박해의 기억의 문제 등등이 사회의 표면에 부상되어 재조명되었다. 또한 남미 각지에서도 칠레의 피노체트정권의 폭력으로 살해되고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의 기억, 아르젠틴의 군사독재정권의 박해의 기억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1997년 과테말라에서는 역사적 기억의 회복 프로젝트 편집으로 <과테말라-학살의 기억>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것은 30년 내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의 기억에 대한 보고서였다. 이 책은 1998년 주로 카톨릭의 헤랄디 주교의 암살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상세하게 모와서 다양한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사회의 화해와 재건을 위해 가해자 측과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언도 하는, 그러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는 ‘다니엘 에르난데스 사라살’ 이라는 사진작가의 <모든 자에게 고하라>라는 제목의 다니엘 천사의 사진으로 장정되어 있다. 이 작품을 필자도 일본 도쿄의 전시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방 2미터의 큰 작품이다. 검은 머리에 맑은 눈과 인골로 된 하얀 날개(그 뼈는 학살당한 여자의 어깨뼈이다)를 가진 이 천사는 두 손을 입에 모아 굽은 양팔을 수평으로 뻗히며 나팔을 불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알리라”고.
이 작품은 과테말라의 정보부나 국방부, 정부청사 같은 건물에 나타났다가는 찢기고 뜯기고..., 그러면서 그 일부 흔적이 벽에 남고 또 다른 건물에 나타나곤 하던 작품이었다.


도쿄 전시회에서 이러한 다니엘의 <폭력의 기억과 천사>라는 이미지의 결합은 월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 이미지를 생각나게 한다는 다까하시 데츠야 도쿄대학 교수의 말은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말이 되었다.
폴 끄레에의 ‘새 천사’ 라는 그림에서 촉발된 벤야민은 그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의 제9 테제에서 <역사의 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새 천사>라는 제목의 ‘클레’의 그림이 있다. 그것은 한 천사가 그려져 있는데 천사는 그가 응시하고 있는 무엇으로부터 지금 멀어져 갈려는 것 같다. 그의 눈은 크게 열려있고 입도 벌리고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이런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는 얼굴을 과거에로 향하고 있다. 우리라면 사건의 연쇄를 볼 텐데 그는 오직 재앙만을 본다. 그 재앙은 쉴새없이 폐허 위에 폐허를 쌓아서 그것을 천사의 코앞에 들이대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거기에 머물면서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된 것을 모아 다시 세우고 싶겠지만, 그러나 낙원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그의 날개에 안기면서 그 세력이 너무도 격렬해서 더 이상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강풍은 천사를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에로 불가항력으로 끌어간다. 그 한편에서는 그의 눈앞의 폐허의 산이 하늘에 닿듯이 높아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강풍’인 것이다”
천사에게는 역사에서 폭력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무참히 빼앗기는 재앙이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 인간사회라는 것은 항상 진보를 지향하고 미래를 향해 가기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진보의 강풍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천사는 죽은 자들을 보면서도 죽은 자들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단절하지 못한 채 뒷걸음을 친다. 이것이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의 이미지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역사의 천사> 혹은 역사가나 역사철학자가 단편을 모아서 만드는 이미지가 역사의 어느 순간에 섬광처럼 인간사회에 작용하여 과거의 죽은 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다니엘의 “모든 자에게 고하라” 라는 작품의 천사도 이러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와 그 예술적 방법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는 역사에서 폭력의 기억의 파편들을 주어서 이미지화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역사가나 역사철학자나, 지금이라면 평화 운동가들이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다니엘도 단편들을 짜깁기하는 것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있다. <모든 이들에게 고하라>는 천사의 사진은 갖가지 건물들에 붙었다가 사라지는데 그 과정에서 남은 것들의 단편들을 모아 이미지화하고 그것은 다시 파괴되고 단편화하는 부단한 반복의 과정 전체가 다니엘의 예술이 되어있다.
“폭력의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서 새 이미지화 하여 구원을 향하는 이미지가 빛처럼 느껴지는 천사의 인상은 우리에게 우리 주변에서 말소되려는 폭력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 사명을 일깨워준다.
<역사의 천사>는 기억을 없애버리는 새로운 폭력의 극한 상황을 향해서 저항한다. 폭력의 기억은 지운다고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잊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상기하고 받아드리고, 사회 안에 위치 짓고, 편입해 나아가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것을 프로이드는 ‘상(喪)의 작업’이라고 하는데)을 하지 않는 한, 지울 수 없는 어떤 형태로 그 사회에 영원히 남게 된다.
1990년대 “위안부의 폭력의 기억”이 사회 표면에 떠올랐을 때, 한국의 여성운동은 그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 모든 이들에게 고하며 “2000년 국제여성법정”이라는 시민법정을 열어 <상(喪)의 작업>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베트남의 폭력의 기억”, “한국전쟁 시의 폭력의 기억”, 그리고 “이라크의 폭력의 기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벤야민은 역사철학 테제에서 “역사를 거꾸로 쓰다듬는다”는 말도 남겼는데, 이것은 역사가 승자와 지배자에 의해서 말끔하게 표면화되어 있는 것을, 생선비늘을 거꾸로 세우듯이 쓰다듬어서 그 속에 숨겨진 패자와 사자(死者)들의 흔적을 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몰되어 있던 파편의 흔적을 모아 조립해서 과거의 패자나 사자들의 구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표현을 한 말이다.


천사의 작품을 표지로 한 이 책에서 다니엘은 “과테말라 사회를 생각하면 어쩌면 몇 세대에 걸친 정상적인 사회를 위한 치료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올바른 ‘역사적 기억’을 마주하고 그것을 계승하고, 정치적으로 필요한 정리를 하는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정상적인 사회, 건전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다니엘의 ‘천사’가 일본 도쿄에 전시된 것을 보며 나는 이러한 개별적 역사에서 탄생한 예술적 작품들이 온 세계를 돌며 전시되어 사람들의 역사적 기억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점에서 독특한 보편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역사의 천사>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폭력의 기억”을 상기하라고 촉구하고 있을 것이다. 망각하지 말고 대지 아래 묻힌 뼈들을 파내고 역사의 매끈한 표면을 거꾸로 쓰다듬어서 드러나는 진실규명을 하라고 촉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거기에는 구원의 어스름한 빛이 비쳐질 것이며 우리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어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