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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델과 베토벤

성서와문화 2010.01.12 21:01 조회 수 : 1285

 
[ 작성자 : 김효숙 - 조각 ]

 
앙트완 부르델 (Antoine Bourdelle 1861-1929)은 로댕 (A. Rodin)의 제자이고 조수였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근대조각의 거보(巨步)를 내딛은 사람은 로댕(1840-1917)이였다. 그러나 근대조각은 로댕을 정점으로 하여 부르델과 마이욜 (1861-1944)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 바쳐졌다. 이 커다란 세 원동력에 의해 조각은 아카데미즘의 긴 잠에서 깨어났고 근대조각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부르델의 대표작은 누가 무어라 해도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1909)>일 것이다. 그가 이 작품을 국립미술협회전에 출품하였을 때 평론계는 열광적으로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공중에 놀라운 균형을 유지하며 바위에다 발을 버티고 있는 이 사수(射手)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범한 동작과, 인체의 각 부분마다 뿜어내는 힘의 충만함, 큰 활과 활을 당긴 팔, 버틴 다리 사이에서 그리는 밖으로 확장된 공간의 힘은 부르델 예술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생각할 때 가장 인상 깊고 나를 감명시키는 것은 그가 만든 베토벤 상들이다.
1980년 유럽 여행 중 파리에서 부르델 미술관을 들렸을 때, 처음으로 그가 그렇게 많은 베토벤 상을 만들었다는데 놀랐다. 두 방 가득히 크고 작은 베토벤의 얼굴과 입상 등이 가득 전시 되어 있었다. 아마 베토벤 특별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얼굴상이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 외에 흉상, 전신상 등 다양했다.
조각의 조형적 표현들은 인물의 성격 표현과 함께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 후 학교 강의 때, 두상의 예를 들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그 때 찍어 온 부르델의 베토벤 상을 예제로 보여주곤 했다.


그의 베토벤 상은 1888년 그의 27세 때부터 죽기 까지 근 40년 동안 거의 전 생애에 걸쳐 만들어진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깊은 감동은 이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열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45점에 이르는 크고 작은 조각상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데생과 파스텔화를 남겼다.
사실적인 모델링에서 시작된 애초의 표현은 베토벤의 천재적 음악성에 접근하면 할수록 음악가의 보다 내면적인 세계,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표현하는데 열중하였다. 1901년 만들어진 <비극적 마스크>에서는 얼굴의 기복이 심하고 고도로 긴장된 깊은 면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미 얼굴이라기보다는 내적인 생명으로부터 솟아나온 분방한 형태 그 자체로 보여진다.


부르델 작품은 로댕에게서와 달리 힘차고 내실화된 정력에 넘치는 건강미이다. 마치 건축물을 보는듯한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활력에 넘치는 구축, 그리고 서사시적(敍事詩的)인 고양(高揚)등은 부르델 고유의 것이다.
마치 베토벤 음악에서 우리가 대할 수 있는 균형과 절도, 조화와 종합의 정신을 그는 그의 작품 속에 실현시켜 나아갔다. 구조의 본질을 탐구하고 보편적인 리듬을 추구하며, 형태의 종합적인 통일을 지향하였다. 그리하여 필경에는 자신을 베토벤과 일체화시키기에 이른다. “조각과 음악은 같은 것이다. 조각가는 매스(mass)와 볼륨(volume)으로 건축하고, 음악가는 음(音)으로 건축한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부르델은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그의 조각세계를 확장해 나갔고, 베토벤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고뇌와 이상을 표현하였다.
부르델의 베토벤 상 중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베토벤. 비창(悲愴) 1929>이라는 작품이다. 바람에 무거운 코트 깃을 날리며 십자가를 등지고 서있는 그는 참으로 슬프고 고독해 보인다. 움추린 목으로 퀭하니 앞을 주시하고 결단과 사색에 잠겨 있는 베토벤의 손에는 운명처럼 큰 오선지가 들려져 있다. 왼 손으로 오선지 뭉치를 잡고 오른 손으로 그 오선지를 펼치고 십자가 앞에서 그는 바람을 이기며 버티고 서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자유자재로 작곡해 낸 베토벤이지만 음악 뒤에 숨겨져 있는 그의 삶은 십자가의 고통처럼 견디기 힘든 고뇌와 시련이었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혹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의지하고 삶의 질곡들을 이겨내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그리고 이 작품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 극복된 승리와 환희만이 진정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베토벤의 어려웠던 인생 여정과 인간 정신의 승리를 이 작품은 가장 극적이고 적절한 이미지로 형상화 해내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죽던 해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생 말년에 부르델이 바라 본 자신의 삶 또한 베토벤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부르델은 이 작품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희열과 기쁨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단순히 그 기쁨과 환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 종교적인 차원에 까지 이르는 신에 대한 찬양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라이나 M 릴케가 로댕에게서 사고를 형상화 하는 것을 익혔듯, 부르델은 베토벤에서 조각을 구축해 쌓아가는 기념비적인 대규모의 건축적 조형양식을 익혔다. 그리하여 다양한 부분들을 통일된 전체 속에 통합시키는 구축법을 실현시킴으로서 근대적인 “건축하는 조각”의 첫발을 내딛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누구를 만나느냐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여정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부르델은 즐겨 어린시절 자신을 키워준 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생계를 위해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통해 그는 건축 감각을 습득했고, 석공이었던 숙부로부터는 바위의 소리를 듣고 돌의 충고에 순응하며 정확하게 구성하는 것을, 직조공이었던 외숙모에게서는 짜임새 있게 짜고 또 올 속에서 색채를 살리는 법을, 또한 염소를 모는 할아버지의 피리소리에서 음악의 일깨움을 받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의 예술세계는 이 같이 어려서부터 몸에 담긴 예술 혼과 베토벤이라는 높은 정신세계를 만남으로서 완성되었다. 부르델에게 있어 자신의 삶에 강한 영향을 준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적인 추구는 베토벤의 영웅적 삶과 예술만큼 위대하고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