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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XⅢ - ‘아기예수를 보는 눈길’

성서와문화 2010.01.12 21:01 조회 수 : 1102

 
[ 작성자 : 김순배 - 음악 ]

 
12 월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달입니다. 인류전반에게나 저 개인에게 성탄이 주는 의미도 의미이지만 무수한 예술매체의 주제로도 소중한 예수탄생입니다. 성탄은 일찍이 중세와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다량의 미사곡과 모테트들의 소재가 됩니다. 바로크에 들어와서도 우리의 독실한 바흐선생님을 비롯한 일련의 작곡가들 덕분에 심오하고도 감동적인 교회음악들이 풍성하게 쏟아집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많은 칸타타들은 기독신앙의 실질적 출발점인 성탄에 대한 아름다운 보고서들입니다.
중세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기간은 유럽의 음악문화가 기독교의 영향권에서 자의건 타의건 벗어나기 힘들었기에 성탄음악에 관해서도 가히 양적인 전성시대였지요.
그러나 음악의 세속화 내지는 인간화가 본격화되었던 고전과 19세기 낭만시대를 거치면서 신앙을 주제로 한 음악들이 음악사의 주류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라면 음악사적으로 기독교음악의 암흑시대가 바로 20세기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자유를 제도적 신앙이 억압했다던 중세의 암흑시대, 그것의 반전된 얼굴이 바로 20세기 종교음악이지요. 20세기에 예수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음악을 쓰는 이가 있었다면 아주 쉽게 조롱당하거나 무시당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낳은 빼어난 작곡가 중 하나인 찰스 아이브스(Ives)의 음악에 출몰하는 청교도들의 찬송가 선율 정도가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낸 기독신앙의 편린 쯤 될까요? 실상 아이브스의 찬송가 선율 차용은 그 발상 자체가 철저히 작품을 위한 장치 내지는 구성요소로써 입니다. 청교도들이 일상으로 접했던 옛 찬송가 선율들 속에서 성장한 아이브스였기에 그것은 가능했지요. 그것들은 작품에 사용된 하나의 재료에 불과했겠지만 그래도 한 출중한 작곡가의 영혼 속에 뚜렷이 각인되었던 신교도들의 찬송소리가 본격음악 작품의 강렬한 모티브가 되었음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불모지와도 같은 현대음악의 광야에 홀연 신기루라 착각하리만큼 황홀한 영성(靈性)의 음향을 만들어낸 작품과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 프랑스가 낳은 불세출의 작곡가는 자신의 온 작품과 생애를 신의 영광을 위해 바칩니다. 가히 20세기에 환생한 바흐 선생이라면 맞을런지요. 그가 피아노 솔로를 위해 만든 작품 ‘Vingt regards sur l'enfant Jesus'는 연주시간만 2시간여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작품입니다. 제목은 ‘아기예수를 보는 20개의 눈길’ 또는 ‘어린예수에 관한 스무 가지의 명상’ 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요. 예수탄생의 순간을 지켜보는 각기 다른 시선들은 무수히 다채로운 음향들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스무 개의 개별적인 곡들은 성부이신 ‘아버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인 처녀 마리아의 시선, 그리고 탄생의 밤을 지켰던 하늘의 뭇 별들, 목자들, 동방박사들과 같이 쉽사리 인지할 수 있는 시선들로부터 추상적인 ‘시간’ 그리고 어떤 ‘침묵’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며 명상하는 스무 개의 시선들로 찬란하게 빛나거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예수탄생이라는 역사적이면서도 영적인 전무후무한 사건을 응시하는 삼라만상과 영계의 시선들을 망라한 발상 그 자체로 이미 작품은 우주적 하모니와 스케일을 품게 됩니다. 동시에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를 위해 부르는 자장가의 운율이 전하는 가장 내밀하고 친숙한 사람의 체취에 이르게 되면 그 스케일은 비로소 온전히 완결되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은 철저히 메시앙의 신앙심 덕분에 씌여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에 귀의했고 현대 작곡가로는 드물게 일생을 파리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던 그는 너무도 자연발생적으로 ‘아기예수.....’를 쓰게 됩니다. 평소에 끊임없이 읽었던 영성서적들, 신앙의 신비를 다룬 책들이 아마도 그의 작품구상의 모티브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신을 향한 궁극적인 영혼의 신실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신실함은 그가 추구했던 음의 세계와 필연적으로 연결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곳에서 비롯된 무한한 상상력과 은총의 체험, 그 총화가 바로 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아기예수...’에는 메시앙이 추구했던 새롭고 개성적인 음악어법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디엄이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그리고 세속과 신성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소우주라 할 수 있지요. 메시앙에게는 바그너(Wagner) 류의 지극히 인본주의적이며 신화주의적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식 사랑도 신의 사랑을 모방한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설정됩니다. 흔히 이교도적(pagan)이라 치부하기도 쉬운 인도 힌두리듬 체계 같은 것도 대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부응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그의 작품에 스며듭니다. 메시앙이 음악을 했던 이유는 ‘하느님’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이루는 요소로서 동서고금, 세속적이며 이질적인 모든 요소들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그는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갈등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소중한 한 가지 목표로 수렴됩니다. 모든 종류의 ‘세상적’ 지식과 경험들은 메시앙 같은 작곡가에게는 궁극적 표현을 위한 유용한 도구들로 사용됩니다.
20세기 음악에서 메시앙과 그의 작품들은 난해함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동시에 그는 어떤 경향이나 유파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개성의 표상으로도 유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론과 철학들을 알고 겪고 통찰 한 후 도달하는 최상의 세계 그리고 그 모든 체험들을 아울러서 빚어 낸 아무도 시비할 수 없도록 견고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작품들.
‘아기예수에 관한 스무 개의 명상’은 제게 희망을 줍니다. 홀연 세상과 신앙의 경계를 허물며 아름다운 변증법적 초월을 실행한 분명한 증거가 갖는 힘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20세기의 걸작을 음반으로 녹음하거나 실연한 연주가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입니다. 기교적으로 물론 어려운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이것은 깊은 내적 체험에 이끌리지 않고는 연주 자체가 힘들고 불가능한 그런 경우인 게지요.
그러면서도 오늘도 숱한 연주자들에게 도전욕과 영감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아기예수를 보는 스무 개의 눈길’, 조심스럽게 저의 시선을 스물한 번째로 얹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