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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생일

성서와문화 2010.01.12 20:59 조회 수 : 1099

 
[ 작성자 : 유동식 - 신학 ]


1. 세 개의 생일
작년 3월, 투병 중에 생일을 맞이한 내 안 사람은 “생일”이란 시 한 편을 적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나의 생일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스런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산천과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난 나의 생일입니다.
거듭남으로 모든 속박과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으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가 닥아 올 또 하나의 생일을 바라보게 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는 날 또 하나의 영광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나라를 약속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드디어 지난 10월 8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3의 생일을 맞이했다.
제3의 생일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노라.” (고후 5:1)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없다.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요 11:2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죽음을 없이 하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열어주셨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일이다. 죽음을 향한 옛 존재에 대해서는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된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롬 6:5)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2. 시계와 비둘기
숨을 거두는 집 사람을 가슴에 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마디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랑해 여보”, “하나님은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실 거야.”
숨가뻐 하던 얼굴이 사라지고, 미소를 띤 평안한 얼굴로 변해 갔다. 그의 체온도 그대로였다.
은평교회의 담임목사와 장로 두 분이 달려와서 고별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내게는 그가 죽었다는 감각이 오질 않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힐끈 처다 본 벽걸이 시계는 5시 40분을 가리킨 채 서있었다. 그가 숨을 거둔지 한 시간 만에 멈추어버린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시간의 세계를 떠나 영원의 세계로 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1층에 있는 예배실에서 영결예배를 드렸다. 영원한 결별을 뜻하는 듯한 “영결”이라는 말이 신경에 걸렸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가족과 친척 20여명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우리끼리 다시 예배를 드리고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대문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신기한 현상을 보았다. 아름다운 산비둘기 한 마리가 마당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람마다 왠일이냐고 하면서 그 옆을 지나왔지만 그 비둘기는 눈만 깜박일 뿐 떠나려 하지를 않았다.
인원이 많았고 날씨가 화창한 터이라 우리는 현관문과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이층에서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둘기가 현관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와서는 방을 한바퀴 돌고 창문으로 유유히 날아나갔다.
예배가 끝나자 우리는 모두 그 비둘기 이야기를 나누며 수군거렸다.
나는 그 비둘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비둘기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윤정은은 죽어서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간 것이 아니다. 그는 자유와 평화의 영체로 부활하여 하나님 안에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 있다는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 후 나는 한 신문에 소개된 시 한편이 너무나도 내 가슴에 와 닿았기에 적어본다.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이리저리 부는 바람이며,
무르익은 곡식 위를 비추는 햇볕이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고요한 아침에 깨어날 때면,
나는 푸르르 날아오르는 새이며,
밤이면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까요.”
(아메리칸 인디안의 기도)


3. 고향의 노래
우리는 모두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들이다. 고향이란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으며 우리가 안주할 수 있는 이상경이다.
80고개에 올라섰을 때 나는 내가 넘어야 할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고향의 노래”를 불렀다.


“고향을 그리며 바람 따라 흐르다가,
아버지를 만났으니 여기가 고향이라.
하늘 저편 가더라도 거기 또한 여기거늘,
새 봄을 노래하며 사랑 안에 살으리라.”


내가 안주할 고향, 이상적인 꿈동산을 그리면서 이리저리 흘러 온지 어느덧 80여년이 지나갔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을 받은 일이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고향이요, 하나님을 모신 곳이 하늘나라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된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스럽기만 하다.
이제 나는 이 육지를 떠나 저 수평선 너머로 가야할 포구에 서서 하늘 저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하늘 저편의 세계를 또한 다스리신다는 사실이다. 여기가 아버지를 모신 고향이라면 거기가 또한 아버지가 계신 우리들의 고향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불완전한 이 세상과는 달리 그 곳은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는 점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거기가 여기이다. 하늘 저편과 이 세상 사이의 담이 없어진다. 나의 반쪽인 사랑하는 아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곳에 가 있다. 거기가 또한 여기인지라, 그는 거기에 있으면서 여기를 출입할 것이고,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거기를 출입한다. 그와 나는 과거에서처럼 지금도 또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 갈 것이다.
하늘 저편으로 건너간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었듯이 그를 보내고 난 나에게도 또한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그와 나는 함께 새 봄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