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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의 열정과 비극

성서와문화 2010.01.12 20:54 조회 수 : 1435

 
[ 작성자 : 이병남 -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미술사 ]

 
미술 관련 일을 담당하다 보면 흔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그림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또
“전람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지요?”라는 등의 다양한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나 법칙,
조건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림을 보는 일부터 시작이
되며, 또 그 그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바로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그림을 보는 일, 또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작품을 접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또 그
느낌을 나름대로 서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다. 본래 예술은 법칙이 없는
세계이며 反법칙적인 곳에 미술에 대한 미로(迷路)의 탐색은 시작이
된다.
르네상스 이래 모든 양식의 회화가 탄생이 되고 또 모든 표현영역이 탐구되어
왔지만, 그러나 이러한 회화가 오로지 작품으로서 취급되어지는 것은 결국은
대상과 의식과의 관계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상이라든가 의식이라는 말이
철학적이라면 사물과 눈이라고 바꾸어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시각(視覺)기관이며 회화는 그 시각기관의 움직임에 의해서 창조되어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각예술(視覺藝術)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일 것이다. 예술계가 아무리 불황이라 해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만은 오늘날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림들이다.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전을 개최하면 매번 전람회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그에 따라 주최 측의 부수입도 꽤
짭짤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설에는 전시회로 돈을 벌려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전을 개최하면 된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인상파 회화의
성격을 보면, 인상을 의미하는 것은 없다. 인상주의 회화적 특질이 어디까지나
빛에 의한 색채감의 표출에 있고 또 외광(外光)속에서 생생한 자연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이라고 한다면 청색,
나뭇잎하면 녹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데 이것을 우리는 흔히 고유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상파는 이러한 고유색을 부정했던 것이다. 하늘은
파랗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자주색이나 붉은 색 또는 노란색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색은 빛에 의해서 변하며 또 살아 숨쉬는 것처럼
자연의 표정도 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인상파 화가들은 새로운 수법을 고안하였는데 이것이 색조의
구분이다. 종래의 기법처럼 평면적으로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색조를 각각
구분해서 대비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적어도 자연과학적인 방법에서 본다면
빛의 문제나 색채의 문제가 연구되어진 것은 독일의 헤른 홀츠나 프랑스의
슈베르의 색채대비론의 제창이다. 우연히도 인상파 화가들은 예술적인 감각을
통해서 이 색채의 대비에 주목을 하였고 여기에 새로운 수법으로 「색조의
병렬」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빨강색조와 녹색색조와의 병렬을
통해서 한층 색의 선명도를 높이고 그림물감의 사용 수법도 꽤 강도 있게
시도하였다. 어쨌든 시각을 촉진하여 자극에 의한 빛의 눈부신 느낌 그대로
반영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색의 선도를 높이게 되었고 미묘한 색과 색의
연결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빛의 효과를 추구하여 가장 순수한 인상파적
기법을 전개하였던 화가로는 모네를 들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상파 화가들의 회화가 근대회화에 있어서 색채를 해방하고 또 강조하여
최고의 감각적인 회화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상주의는 19세기
전반 서양회화에 넓게 나타난 자연주의적 경향에 기인한 것으로 특히 19세기
사실주의의 거장 쿠스타브 꾸르베(1819-1877)에 의해 열려진 사실주의 미술에
의해 세심한 관찰의 눈을 기르게 되었고 또 새로운 자연과 사회에 대한
관찰이 태동을 하게 됨에 따라 드디어 자연에 대한 새로운 회화를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상주의 미술하면 이 자연미의 발견에
메리트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사실에 기인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하나의 자연의 실체를 기존의 회화의 개념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신들의 의식
활동을 통해서 비로소 대상의 시각적 현실성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대로부터의 전통적 미학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19세기 후반 유럽의 봉건적 사회에서는 로댕의 조각이나 모네, 세잔느 등의
인상파 회화는 당시에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근대사회로
접어든 19세기 후반의 유럽사회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회의 혼란과 다양성 그리고 복합성을 띤 격변기로 시민사회가 성립되면서 부와
권력, 그리고 권리의 분배가 요구된 시기였다. 게다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이 프랑스와 벨기에 및 유럽 각국과 미국 등으로
파급되면서 그로 인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물질생활의 향상과 생활환경 그리고
가치기준,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이러한 급속한 변화는
오히려 일종의 정신적 불안감을 가져다주게 되었고 또 도시의 팽창은 빈민가나
노동현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의 낙오자와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은 회화, 조각, 건축 등
조형예술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새로운 미술이
탄생된 시대이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뿌리도 이
19세기 말의 서구예술의 변모 속에서 기인되었고 또 현대미술을 낳은 것도 바로
다름 아닌 19세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세기의 서구문명을 결정짓는
하나의 커다란 특징은 문화의 진보에 의한 학문이나 기술문명에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고 또 인류 문화의 「진보」를 현실적으로 입증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상파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발전한
회화의 한 유파로 「인상」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물질적으로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하는 회화 상의 하나의 방식을 말한다. 게다가 또 인상파
예술가들이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관례 등을 문제로 삼지 않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상에 의해 대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화가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쨌든 인상파 화가들은 일종의 반항적 성격과 아방가르드 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카페나 기차역, 파리의
번화가인 오스망(Boulevard Haussmann)가를 거니는 파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햇빛이 내리쬐는 공원이나 강변 등 교외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림이란 일상생활의 주변을 자연스럽게 그린다는 점을 환기시켜
주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 인상파 시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급격한
근대화의 진보와 나폴레옹 3세의 치세 하에 시민사회가 정착을 하게 됨에 따라,
시민사회의 새롭고 풍요로운 근대 도시민들의 생활을 그렸고 그들은 그러한
풍경에 몰두하여 정치나 사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당시의 사회적 상황, 다시 말해서 철도를 그린다거나 경마장의 말 등
속도를 그린다거나 노는 풍경을 그린다거나 도시민이 농촌에 피크닉을 가서 보는
그런 농촌 풍경을 주제로 하여 그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근대사회의
성립의 배경 하에 당시 프랑스의 부르조아인들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런 그림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당시의
분위기는 구세대의 가치관에 기인한 것으로 예술가의 순수한 눈과 시민사회의 눈,
다시 말해서 전통을 존중하는 시민들과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생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팔리지 않아 결국 그들은
고독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파 화가들은 겸허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정열로 훌륭한 근대회화를 남기게 되었지만, 그들이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활동했던 당시의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후세에 있어서 라는 점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