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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XⅡ- ‘왼손을 위하여’

성서와문화 2010.01.12 20:54 조회 수 : 1198

 
[ 작성자 : 김순배 - 음악 ]

 
‘멀리 멀리
흘러갔던
보랏빛 구름들과 바다 거품으로부터
그만 나의 연륜(年輪)들을
불러들이자

 

나로 하여금 돌아오는 길목에 서게 하여 다오!

 

나의 시는

수요일의 기도보다 가벼웠고,
너무도 오래인 동안
나는 나의 체온(體溫)을 비워
두었었다.
…………………………(下略)
( 김현승 ‘가을의 立像’ 중)

 

다시
가을인가요? 이맘때가 되면 부쩍 사위어들긴 했지만 아직은 따가움이 남은
9월의 햇살을 흔드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 같은 선율에 가슴을 적시어 봅니다.
바로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피아노 협주곡 G 장조’의
2악장입니다. 불타오르던 여름의 뒷모습이 쓸쓸함으로 변하는 시간 차마 완전히 접을
수 없는 마음의 한 끝자락처럼 들려오는 음악입니다. 라벨을 듣는 날의
햇살과 바람은 으레 것 투명하기만 합니다. 느릿느릿 가을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의 발걸음처럼 호젓하고도 체념으로 가득 찬 2악장은 가을 내내 가슴
속의 젖은 짚단을 태우며 마침내 계절의 끝까지 함께 가곤 합니다.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어머니는 스페인 혈통 바스크(Basque)족이었던 라벨의
음악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프랑스적 분위기에 고전을 동경하는 품격이
더해져 독특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거기에 어머니 나라의 이국적인 정열과
센티멘탈리즘이 섞여들어 마치 훌륭한 솜씨로 혼합된 명품 칵테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협주곡 2악장에서는 칵테일이라기보다는
잘 빚어진 포도주의 빛과 향을 맛보게 됩니다. 햇빛에 비추었을 때
영롱하고도 투명한 붉은 색을 띠는 그런 와인 말이지요. 때로는 음악이 향기나 빛깔과
같은 감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습니다.
라벨은 이
G 장조 협주곡 이외에도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요.
이 곡에는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켄슈타인(Paul Wittgenstein)이라는 이가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오른팔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유명한 언어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켄슈타인의 친형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피아노에 대한 애정과 집념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에게 왼손만을 위한 작품들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에 입수된 작품들 대부분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협주곡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왼손만을 사용해야하는 제한된 상황을
보완하고 덮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사운드가 필요했음이라고 사료됩니다만. 그
중에서도 오늘까지 살아남고 사랑받는 작품이 바로 라벨의 협주곡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이 곡을 듣게 되면 전혀 이 곡이 왼손만을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위아래로 종횡무진 질주하는 패시지들이나
곡의 수직적 짜임새인 텍스처의 예사롭지 않은 두터움 등은 도저히 왼손 혼자
연주하는 곡이라 믿기 힘든 것이지요. 라벨의 승리라고나 해야 할까요?
아니면 왼손의 승리인가요?
저는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왼손
피아니스트 비트켄슈타인의 공도 큽니다. 그의 의뢰가 아니었더라면 적잖은 수의
작곡가들이 왼손에 관심을 가지고 그 손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 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양 손을 쓰는 악기들 가운데에서도 두 손으로 공히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피아노입니다. 피아노 음악의 세계에는 언제나
소우주(microcosmos)가 들어있지요. 한편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를 이 악기에서처럼
골똘하고도 분명하게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세상에 팽만한 일련의
단순한 이원론에서처럼 왼손이란 부차적이거나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아주 쉽지요. 실제로 많은 경우 왼손은 오른손에 묻히거나 압도된
채 지내왔습니다. 같은 소리라 해도 귀는 오른 손 쪽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익숙해집니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왼손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당한
채 그늘에 가려있거나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기 십상입니다. 왼손에 대한
관심은 그러니까 음악적 통찰력과 지성이 진화할수록 증대된다는 사실을 경험은
얘기해 줍니다. 또한 적어도 양손이 동등한 균형을 이루려면 지금까지
쏟아왔던 관심의 향배를 역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왼손이 강화되고 배려를 받아야 오른손이 더 잘 된다는
사실입니다! 왼손의 역할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튼튼하게 증강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한 열배 정도는 너끈히 더 잘 치는
것처럼 들릴 겁니다. 이쯤 되면 피아노는 삶의 재현이며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얘기도 강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아닌지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기는
여러 분야에 있어서의 패러다임 전환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그야말로
‘Para 21세기’입니다. 우려되는 바 없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성에
대비되는 ‘몸’을 향한 열화 같은 관심, 오랫동안 제2의 性 이었던 ‘여성성’이
받는 각광 그리고 소외되었던 왼손에 대한 새로운 조명. 사고의 기준과
틀이 방향을 바꾸고 몸을 트는 일은 총체적인 균형과 온전함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한 움직임이라 믿고 싶습니다. 과거에 소홀했거나 몰랐던 것들의
새로운 의미에 각성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다시 가을입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시들을 읽다가 저는 마음이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窓이 되어
고요히 닫힌
그러한 눈.

 

보석보다
별을 아끼는 손
그러한 손
- 왼 손.
…………………………(下略)
(김현승 ‘사랑하는 女人에게’
중)

 

왼손은 그러한 손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