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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 속의 예수

성서와문화 2010.01.12 20:52 조회 수 : 1152

 
[ 작성자 : 조재국 - 연세대,교수,종교학 ]

 
내가 가르치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루스채플 로비에는 한국화가 김학수
화백이 그린 예수의 일생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어머니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나서
루스채플에 왔다가 그림을 보고나서 “예수님을 한국 사람으로 참 잘그렸더라”
고 말씀하셨다. 내가 제자들은 한국 옷을 입었지만 예수님은 서양 옷과
얼굴을 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더니 그러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세히
보지 않고 옛날에 시골교회에서 한복을 입고 설교하시던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모두 한국 사람으로 그렸으니까 예수님의 모습도 그렇게
그렸겠구나 하셨던 것 같다. 나는 본적이 없어서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옛날
어른들은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목사님의 모습을 성직자의 원형적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통하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스탈지어를
되찾고 즐거워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루스채플
로비에는 언제나 학생들로 붐비고 여러 모양의 모임을 갖는데 그들에게 한국화 속의
예수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 궁금하다. 그들이 처음 본 목사님의 모습이
양복차림이고 처음 본 예수님의 그림이 서양인의 모습이었다면 그것이 또한
그들에게 원초적 경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일본에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가끔 한국에 들리면 작고하신 서양화가 신영헌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는데 그것은 선생님이 새로 나온 요시가와 에이치의
[신헤이케(新平家)이야기]를 배달하기 위함이었다. 선생님은 말년에 혜화동 집에
칩거하시면서 일본의 고전을 즐겨 읽으셨는데 그중에서도 헤이케이야기를
좋아하셨다.
한번은 나에게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토착화신학에
대한 책을 주로 읽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다고 하셨다.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벽에 걸린 새 작품을 보여주셨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외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모래와 바람뿐인 광야에서 예수님이 앞을 향하여 손을
내저으시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외치는 소리가 어찌나 크고
강한지 바람이 일어나 광풍이 부는 듯하고 예수님은 반사적으로 공중으로
올라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그림을 보면서 아무리해도 예수님의 모습을 한국인의 얼굴로
그릴 수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하고 어울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 하시면서도 끝내 붓을 들지 못하고 고민하고 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뇌리에 박히고 말았다.
나는 나름대로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토착화에 대한 신학적 이론을 선생님에게 소개해 드렸지만 선생님은 이미
한국인들이 신앙적 표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말씀이셨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얼굴을 한 예수님의 그림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장면 속의 예수님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김학수 선생님이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연작을 그리시면서 예수님의
얼굴만은 서양사람의 얼굴로 그리신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월남하신 후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사시면서 오로지 작품제작과
교회봉사에 전념하신 김학수 선생님에게 예수님은 정말로 특별한 분이셨을 것이다.
필경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리운 부인과 아들을 만나셨을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 강남구청 근처에 사시는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휘호를 써서 받은 적이
있다. 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옛 거리를 그리시느라 바쁜 가운데
예서체로 휘호를 써 주셨는데 아름다운 글씨를 통하여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쯤 후에 오사카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는데 북에 살아있는 부인과 아들 소식을 들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미국에 사시는 이승만 목사님이 북한에 가서 선생님의 아들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화가가 된 아들이 애기 때 헤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눈시울을 닦으시면서
지난 4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또 한번 저미어 오는
온기를 느꼈다. 남에서의 끝나지 않는 피난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선생님에게
유일한 의지이고 가족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에서 못내 그리운
아내와 자식의 모습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이 예수님의 얼굴을
한국인으로 그릴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첫 경험이 서양적인 풍경
속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동안 소중하게 담아온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따듯하고
정다운 선생님의 인품으로 보아 그림을 보는 이들의 소박한 신앙을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예수님의 모습을 함께
있는 한국인들과 같은 모습을 한 예수님으로 생각하게 되고만다. 어쩌면
선생님의 절묘한 구도와 색감이 우리로 하여금 서양에서 받은 기독교 신앙을
한국문화 속에서 고백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때때로 나는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신앙의 한국적 이해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
놀라움의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김기창 화백의 경우와 같이 과감하게 예수의
얼굴을 한국인으로 그려서 오랜 신학적인 과제를 훌쩍 뛰어 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은 내용을 설교나 논문으로 표현하면 논란이 많으면서도 예술로
표현하면 훨씬 더 임팩트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소리가 없는 것이다.
민요조로 된 찬송이나 판소리로 표현한 성서이야기 등이 말 많은 한국교회에
특별한 시비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 기독교의 토착화는 예술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오늘날 뿌리도 없고 정신도 없는
문화예술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때에 기독교가 전통적인 한국문화에 바탕을
둔 예술을 통하여 신앙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일은 일거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신이 결여된, 정말 정신없는 감각의 문화에
대응하여 우리의 얼을 지키고, 얼빠진 세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독교
신앙의 예술적 고백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자는 기독교 신앙에 전통문화의
옷을 입히면 전통문화를 통하여 전해진 이교적 내용이 혼합되지 않겠느냐고 말
한다. 그러나 전통문화와 예술은 원래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유산을
즐기고 전수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담지하고 전수하는데도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 틀림없다.
내가 오래
동안 살고 목회한 재일동포교회는 이미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3세 4세가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1세들은 4%정도만 남아 있다.
교회에서 민요조 찬송가를 부르거나 장구, 꽹과리를 치면 1세들은 옛날 그 시절
굿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은혜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무런 선입견이나 선체험이 없기 때문에 민요를 단순히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로만 생각한다. 더구나 전통음악이 한국인들의
성질과 체질에 맞기 때문에 더 신나고 즐겁고, 더 슬프고 애절하다고 말한다.

 

때는 바야흐로 논쟁의 신학이 거(去)하고 예술의 신학이 내(來)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 얼굴을 한 예수의 모습과 한국의 음률로 들려지는 말씀이
그리운 어머니와 고향에 더 가깝고, 인간의 돌아갈 자연에 더 닮았고, 땀을
시켜줄 바람과 목마름을 채워줄 물에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