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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해방절

성서와문화 2010.01.12 20:52 조회 수 : 1199

 
[ 작성자 : 유동식 - 신학 ]


제2의 해방절

 

1. 역사적 원점과 구원의 원체험
유대민족의 최대의 명절은
유월절이다. 애급의 노예였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해방해주신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출애급의 사건이 없었다면 그들은 한낱 애급의
노예들이었을 뿐 유대민족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출애급은 유대민족의
역사를 있게 한 원점이다.
한국의 오늘의 최대의 명절은 8.15해방절이어야
한다. 8.15해방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일본의 한 식민지 백성으로 남아
있은 뿐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 치하의 식민지 백성이란,
한글은 물론이고, 말도 문화도 역사도 말살당한 채 성씨마저 빼앗긴 인격
없는 노예였다.
8.15해방은 실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우리 역사의
원점이다.
원점이란 우리를 있게 한 기점인 동시에 위기에 처해서는 우리가
돌아가서 새로 출발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방 후에도
많은 고난의 역사를 겪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절망하지 아니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8.15 해방의 역사적 원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 중에
있었던 우리를 해방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우리는 해방의 구원을 체험했다. 해방과 구원이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는 모두 몸으로써 체험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간증을 하려고
한다. 동경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나는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망해가던 일본 군대와 함께 죽음에 동참하도록 강요당했던 것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가 무엇인가를 체험하고 있었다.
죽음이라지만, 내 민족과 내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거기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치도 않은 일본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개죽음에 불과했다. 우리는 절망 속에
나날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곧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해방의 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해방은 곧 구원이었다.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난 감격”을 체험했다. 그 때의 감격, 이것은 “구원의
원체험”이었다. 죽은 몸이었는데 다시 살게 된 것이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덤으로 사는 것뿐이다.
원체험은 우리가 고난에
처했을 때 되돌아가서 힘을 얻게 하는 원천이다. 인생의 고난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는 8.15해방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2. 하나님의 은사와
우리의 과제
출애급도 8.15해방도 이것은 전적으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두 민족에게 베푸시는 은사였다. 유대인의 경우에는 모세를 통해
역사하셨고, 우리의 경우에는 연합군을 통해 역사하셨다. 연합군은 페르샤의
골레스왕에 해당된다.
바벨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골레스로 하여금 바벨론을 치게 하셨듯이 연합군으로 하여금 일본을 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해방하신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해방과 구원이란 인격적
사건이다. 물건을 주듯 그저 주고받음으로써 성취되는 대상이 아니다. 자유와
해방은 받은 자가 이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지키고 만들어 나가야 할 과제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는 출애급의 해방과 함께
그들의 삶의 지침인 율법을 주시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자유가 실현
될 수 있었다.
이미 인륜 도덕에 밝았던 우리들에게는 해방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주셨다. 우리가 해방과 자유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권을 존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윤리적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으며, 한국인은 자유, 평등, 평화를 실현해야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데 실패를 거듭해 왔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민족적 해방과 구원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었다. 이것이 예레미아를 통해 선언하신 새로운
언약이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르다.
..............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그들의 마음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아 31:
31-34)
이 새 언약이 구체적인 역사로 성취 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복음이다.

 

3. 제2의 해방절
민족적 해방과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틀을 바꾸어 놓으셨다. 그러나 그 민족의 구성원인 개체적 인격들이 다
해방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출애급 이후의 유대인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해방 후의 한국과 한국인들은 여전히 고난의 역사를 걸어오고 있다.
남북분단, 6.25동란, 4.19혁명, 5.16쿠데타, 유신독재, 5.18사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족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지만 각 인격들은 여전히
이기적인 야욕과 그로 인한 죄의 종이 되어 있다. 여기에 고난의 역사의 뿌리가
있다.
8.15해방은 여전히 역사의 원점일 뿐이고 실현된 해방의 역사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제2의 유월절, 제2의 해방절이 요청된다. 그것은
인격적이며 영적인 출애급이요, 영적인 8.15해방이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위해 오신 것이다.
“유월절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오신 이가 그리스도였다. (눅22:16)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
(눅17:20-21) 출애급과 8.15해방의 성취는 영적이며 인격적인 우리들의 내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출애급을 기념하는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떡을 떼어주며,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나의 몸이라 하고, 또한
포도주의 잔을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이라 했다. 곧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이요, 영적인
제2의 해방을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모든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을 것이요,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요 6: 54-57)
여기에 우리들이 대망하는 8.15해방의
완전한 성취가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