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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명상 - 새 하늘과 새 땅의 꿈

성서와문화 2010.01.12 20:51 조회 수 : 1133

 
[ 작성자 : 박영배 - 신학 ]


최근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 학대의 기사를 보면서 사람이 잔인하고 악하면 얼마나
더 할 수 있으며, 또 탐욕과 욕심을 부리면 얼마나 더해서 끝이 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간에 대한 밝고 희망적인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으로 현실이 어둡고
절망적이기에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새로운 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믿음과 꿈을 지니고 살아 갈 것을 강조 한다. 계시록 21:1의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환상이요 꿈이다. 이 꿈은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이어 온 꿈이며 신구약을 통틀어서 말한다면 무려 5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꿈이기도 하다. 이토록 끈질긴 희망과 꿈을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한 사도 요한이란 도대체 어떠한 인물인가?
그는 절해고도에 유배된
죄수며, 날마다 채석장에서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처지이다. 그리고 그의
연령도 힘이 용솟음치는 2,30대가 아니라 70을 전후한 늙은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장구한 역사 속에 그 어떤 힘으로도 지울 수
없는 꿈을 안겨 준 사람이다.
당시의 로마제국은 세계의 중심이며 문화의
중심이다. 그 어느 누구도 로마의 위엄과 권위를, 그리고 그 힘과 영광을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로마가 이처럼 위세가 당당하고 화려한 이면에는 그
내부로부터 온갖 부조리와 부패가, 그리고 도덕적 타락이 판을
쳤다.
기독교는 바로 이 같은 역사의 파국 속에 움트기 시작했다. 예수의 제자들이란
로마의 식민지하의 촌뜨기들이며, 어설프고 무식한 젊은이들이었다. 한때
이들은 신흥종교의 한 집단으로서 사람들에게 무언가 신기함과 희망을 주는 듯
했으나 로마제국의 탄압에 맥없이 흩어 저 갔다. 그리고 몇 사람 되지 않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도 대부분 처형되었다.
우리가 상고하려는 요한이라는 사도
또한 지중해 고도인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으니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고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신앙은 인간적인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하느님께서 친히 보여
주시는 아름답고 희망 찬 꿈을 보았다. 그는 그 희망과 꿈을 기록하여 고난과
핍박 중에 있는 아시아의 교회에 보냈다.
실로 기독교 2천년의 역사란 이
믿음과 꿈을 지니고 소망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본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 역사의 지평에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땅의 역사가 마감하는 날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할 한갓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꿈과 믿음을 지닌 사람들과 교회는 그 꿈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 그것을 믿고 희망하면서 기독교의 무서운 형극의 역사를
기적적으로 이어 왔다.
어느 시대나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는
사람이란 시련과 절망의 밑바닥에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자리에서 나타나며
보여주는 계시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실로 역사의 놀라운 사실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며 이끌어간 사람이란 믿음과
꿈을 지니고 산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같은 현실을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출애굽의 역사와 많은 예언자들의 삶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현대사 속에서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삶과 미국의 흑인민권 운동가며 목사인 마르틴 루터
킹의 삶 속에, 그리고 한국의 함석헌 선생의 삶 속에서 보게 된다.

 

침체와 무기력, 절망과 허탈감에서 헤매는 민중을 각성 시켜 사랑과 관용과
비폭력으로서 자신의 당당한 권리를 회복하며 독립을 쟁취해가는 사회, 흑인과
백인이 서로 협력하여 평등과 평화의 사회를 이룩해 가는 사회, 그리고 모든
씨알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주인이 되는 사회야 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현실 세계의 한 모형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세계가 비관적이고
참담할수록 우리의 교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꿈과 믿음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선포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