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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다이어트

성서와문화 2010.01.12 20:50 조회 수 : 1239

[ 작성자 : 마상조 - 전망사 사장 ]


몇 해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순절 금식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미사 강론의 몇 마디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 강론에서, 금식은 정신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은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표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주기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금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다이어트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기적인 생각과 악마의 지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라”고 권고했다.
우리는
교황의 이 강론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시사를 얻게 된다. 우리는 먼저 금식의
정신이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의 표현임을 생각하면서 저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빈곤은 인류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이다. 현대의 모든 사회악은 빈곤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무지도 빈곤에서 오는 것이요, 또 빈곤은 무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빈곤 퇴치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책임을 수임받았다. 빈곤과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밝은 삶을 살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도록 힘쓰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다음으로 교황이 언급한
‘다이어트’란 말을 주목해 본다. 다이어트란 체중 조절을 위한 식이요법을
뜻한다. 세계 도처에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몸이 비대해져서 군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한다.
하지만 육체적인 체중 조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다이어트임을 그리스도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탐욕과 허식의 군더더기 살로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를 하는 선수들이
가장 고심하는 문제는 체중 조절이다. 권투선수가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하고
절제 있는 섭생으로 체중 조절을 적절히 하면서 한계 체중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기에서 실패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인 탐욕과
헛된 명예와 출세의 야욕이라는 불필요한 군살과 기름기로 체중이 오르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체중 감량에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앙적인 한계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대형화·물량화’, ‘기복신앙’이라는 치명적인 중병에 걸려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는 자본주의의 실천장으로 변질되어 기업화되고,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를 맹종한 결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비만증에 걸려 있다. 이런
병리적 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구스타프 야호다가
일컬은 ‘편리한 환상(convenient illusion)’이라는 미신을 많은 신자들이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신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미신을 ‘편리한 환상’이라고 풀이한
야호다의 정의만큼 우리나라 종교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도 없을 듯싶다.
‘편리하기 짝이 없는 뜬구름 같은 환상’에 빠져버릴 때 거기에 축복과 위안, 반
지성적이고 맹목적인 헌신만이 남게 되고 그 결과 물량화와 기복신앙으로
치닫게 될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편리한 환상’은 자기를 노예화하고
마비시킨다. ‘금세 안심·내세 복락’의 쉽고 편리한 환상 속에 진지한 진리
탐구나 치열한 구도적 열정이 발 들여놓을 자리는 없다. 환상이 억누르고
있는 인간적인 속박, 곧 ‘환상의 사슬’을 끊어버려야만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신앙이 가능할 것이다. 편리한 환상’의 미신에서 벗어나 비대해진 체중을
줄이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종교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한국 교회의
미래는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