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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음악들 - 음악 片紙 XI

성서와문화 2010.01.12 20:49 조회 수 : 856

 
[ 작성자 : 김순배 - 음악 ]

 
중세 남부 프랑스에서는 이상한(?) 음악이 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오선이 아닌 심장(heart) 모양의 오선 위에 음표들이
그려진 노래(ballade)들 말입니다. 곡에 붙여진 가사는 사랑의 열정과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이었고 정열을 뜻하는 단어 위의 음표는 ‘붉은 색’으로
표기 되었습니다. 한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음악인 캐논(canon)의
악보는 시작도 끝도 없는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시대에 걸맞지 않게 리듬과
화성은 복잡다단하였고 20세기 가까워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쓰이는
반음계들도 예사로 쓰였습니다. 틀에 박힌 미사(Mass)곡들과 종교적인
모테트(Motet)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14세기 프랑스의 시골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런 음악을
썼던 것일까요?
‘르네상스의 베토벤’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조스껭 데
프레(Josquin des Prez)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마르틴 루터가 높이 추앙해마지
않았던 음악사의 거인들 중 한 사람입니다. 미사와 모테트라는 주어진
장르에서도 그의 개성과 창의력은 종횡무진 발휘됩니다. 이미 존재했던 세속적
선율을 미사곡을 관류하는 ‘주제’로 삼는 소위 ‘패러디(parody)’ 기법은
성(聖)과 속(俗)이 음악적으로 화친하는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지요. 바야흐로 르네상스 성숙기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답답했던 시대적
관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솟구쳐 나오는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마침내 가사의
의미, 그 굴절을 따라 생생한 그림을 그리는 ‘Musica Reservata(예약된
음악)’라는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 냅니다. 숱한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들 중 다윗의 불온한 아들 압살롬 죽음의 광경 또한 어떤
드라마 못지않게 극적입니다. 패륜의 아들이었으나 주검을 앞에 놓고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앉는 아비 다윗의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조스껭의 모테트
‘압살롬, 내 아들(Absalom fille mi),’ 은 르네상스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묘사의 극대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 그 무한
가능성 추구를 선언하는 르네상스 성숙기(High Renaissance)인 16세기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친화력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마드리갈(madrigal)의 역사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한 음악의 주제인 사랑노래들이 자유로운
성악 형식인 마드리갈에 실려 근 100년에 걸치는 일대 붐(boom)을 누립니다.
처음에는 잔잔한 묘사로 시작했던 마드리갈의 스타일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자극적인 표현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예를 들면 실연의 아픔이 죽음의
문턱까지 갈 때 선율과 화성은 끝없이 추락하는 형태를 보이고 환희나 기쁨의
순간엔 반대로 가없는 도약과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그림보다 생생하고
글보다도 즉각적인 실감이지요. 소위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이분법이
아직 성립되지 않았던 시대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장르가 바로
마드리갈입니다. 때로는 거의 병적인 상태로까지 묘사의 비약을 이끌고 가는 마드리갈의
역사는 굳이 우리가 숨쉬는 21세기만이 인간성의 여러 극단들을 보여준다 라는
명제를 무색하게 만들기에 족합니다.
생생함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음악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예술임이
분명합니다. 다른 장르들이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자연을 예술로 형상화하는 것에
비해 자연 속에는 ‘그대로’ 음악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의 많은 소리들에서 ‘음악적인’ 것들을 우리의 귀는 자주 발견합니다.
물론 악음(樂音) 아닌 소음(騷音)이 더 많은 환경에서 숨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모든 악기들은 자연속의 소리들을 모방하거나 동경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악음악이 대세를 이루었던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면
악기를 매체로 한 음악이 활발히 만들어지는 바로크에 이르게 됩니다.
하프시코드(harpsichord)는 바로 피아노의 전신(前身)이며 17세기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상(Clavecin)이라는 이름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악기였습니다.
쿠프랭(Couperin)이나 라모(Rameau) 같은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새소리, 물소리를
비롯한 숱한 자연의 소리를 섬세하고 우아한 클라브상으로 표현하기를
즐겼습니다. 한편 J.S.Bach의 아들인 C.P.E.Bach같은 이는 인간심정의 깊은 탄식과
우여곡절을 음악 속에 나타내는 ‘Emfindsamer Stile(감성적 양식)’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J.S.Bach와 동 시대인이면서 일찍이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스칼랏티(Scarlatti)의 음악은 그 시대로서는 흔하지 않은 낯선
느낌들로 가득합니다. 서양음악의 세계에서 남쪽과 북쪽의 구분은 대체로
뚜렷합니다. 독일, 벨기에 등지의 북쪽나라 작곡가들이 착잡한 대위법이나
복합적이고 조직적인 리듬체계를 선호했다면 이태리나 스페인 등지 남쪽의
음악들은 경쾌하고 밝은 화성으로 이루어지며 감정표현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스칼라티가 남긴 수백개의 하프시코드 작품에는 싱싱한 물고기의 비늘이
물위로 튀어 오르며 햇빛에 반짝이듯 눈부신 기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틀 아닌 자신만의 개성이 빚어내는 온갖 생생한 소리들의 집합이
바로 스칼랏티의 음악입니다.
병약한 몸 때문에 묵묵히 사제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날에도 매력적인 음악을 남긴 안토니오 비발디(Vivaldi)도
경이롭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계(Four Seasons)’는 그 계절마다의 풍경 속으로 바로
우리를 끌고 들어갑니다. 어떤 음악보다도 ‘회화적(繪畵的)’인 음악이 바로
‘사계’가 아닌가요? 낭만주의란 19세기가 되어야 비로소 찾아오는 하나의
사조에 불과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자연과의 친화, 형식보다는 내용,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 손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이 낭만주의의
특질이라면 비발디는 바로크의 낭만주의자였지요. 성당의 정해진 일과(日課)
속에 자신을 파묻고 살았지만 온갖 살아 숨쉬는 사물과 감정들은 비발디의
내면에서 끊임없는 영감으로 화해 아름다운 피륙을 짜듯 한 편 한 편의
음악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병약한 몸이라면 19세기의 프레데릭 쇼팽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요르카 섬의 회색빛 안개 속에서 각혈하며 토해 낸
프렐류드(Prelude)들에서는 창백한 아름다움, 바로 그 속에 들어있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음악들은 당대의 틀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모든
창의적인 음악인들에게 그 때 그 때 주어진 장르란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드러내는 한갓 장치에 불과합니다. 고대 동굴의 벽화나 중세 회화 속 인물의
표정 속에서 흠칫 놀랄 만큼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 때가 있는 것처럼 옛
음악, 시효가 지난 듯 착각되는 오래된 음악 속에서 문득 대면하게 되는 그들의
생생한 체취를 통해 지금 이 순간 숨쉬며 살아있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