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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술 어디로 가는가

성서와문화 2010.01.12 20:48 조회 수 : 767

 
[ 작성자 : 최종태 - 조각가 ]

 
지난해 여름
이태리 현대교회건축을 돌아보는 긴 여행을 한 일이 있습니다. 미술가들
40여명이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미술관은 들어가지 않고 새 성당만 골라서 보고
다녔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미술관들은 대개 본 사람들이 돼서 그랬던지도 모릅니다. 지나는 길에 베니스에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마침 그 곳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특별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나절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국제미술 행사장엘 갔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시장이 건립되여 있고 각 나라
미술의 경기장과도 같은 성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을 놓고 어떻게
나라별로 또 작가별로 일등이다 이등이다 하고 상을 만들 수 있느냐 하고
말썽도 많았지만 그래도 격년제로 꾸준히 행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몇 시간의 관람시간만 정해주고 각자 자유행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보고 나와서 아무 말도 없는 것입니다. 좋다든지 별 볼일 없다든지
아무도 그 소견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그 후로도 또 한국에
돌아와서도 별말이 없는 것인데 나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아무도 논평을 하지 않는 것일까.
캔버스그림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대부분 입체의 성격을 하고 있었지만 지난날의 이른바 조각이라 이름 하던
입체는 한점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림이다 조각이다 하는 개념은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장차는 예술이란 것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착잡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이 세상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모습하고 있어야하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형태들은 무언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20세기 미술이 끝에 가서 미니멀이즘이라 해서 안 그리고
안 만드는 형태로 되었습니다. 내가 기획만 하고 다른 사람 시켜서 해도 되는
일입니다. 형태는 그냥 있을 뿐이고 말을 철저히 지웠습니다. 상징마져도
지웠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발이 요즘과 같은 형태를 유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내게 비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습니다. 그럴려면 글로
표현했으면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굳이 내가 못 알아듣는 어려운 말로 또
내가 못 알아듣는 몸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인가. 글로 하면 안 되는
무슨 절박한 이유래도 있는 것인가.
나는 여러 사람들한테 내 솔직한 심정을
말했습니다. 어떻게든지 빨리 그 궁금증이 풀리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 속 시원한 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어떤 날 저명한
미술평론가를 만났습니다. 또 그것을 물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기
위한 과도적 현상인가. 아름답기는커녕 난장판 같은데 내가 모르는 저런 현상을
좋다고 알아듣는 사람들이 소수라도 있을 것이 아닌가. 나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평론가 말이 이러했습니다. 자기는 첫날
오픈행사 때 갔었다하는 말하며 그때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의 한 페이지짜리
글이 무더기로 길에 뿌려져있어서 주어 보았다하면서 그 내용인 즉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 되였더라 하는 것입니다. 아주 명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
그대로 여기 옮길 수는 없으나 뜻으로 보면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여기
들어가시는 이들이여, 예술이라든지, 아름다움이라든지 하는 것을 보고자 그런
기대는 여기서 아예 깨끗이 버리시오.” 그러면서 모른다는 것이 하나도
부끄러울게 없다 하는 말과 함께 흥미 있는 예를 들어 나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벽시계에는 「추」라는 것이 달려있어서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 추가 지금 왼쪽으로 가고 있는데 끝까지
가면 오른쪽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아직 조금 더 왼쪽으로 갈 여지가
남아있는 형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그 반동의 징후가 시작되고
있다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일본의 어떤 큰 미술관에서 특별한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진.선.미.행복 등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작품들을 모았다하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 반동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계추는 갈 데까지 가야지 그러고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나는 모처럼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예로부터 그림이란 것은 우리들 인간의 삶과 그
이상(理想)이 형태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종교 따로, 예술 따로,
사는 것 따로 이렇게 분리 되여 있습니다. 진선미 일체를 절대가치로 보는 것은
옛이야기입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잣대가 부서진 듯싶습니다. 감격이라든지
심금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난날의 위대한
예술은 모두 잘못 되였다는 말인가. 듀상이 변기를 거꾸로 놓고 「분수」라고
명명한 이래 20세기 미술은 되도록 안 그리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술의 효용가치에 대해서도 전면으로 부정되었습니다. 변화자체가 예술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남의 형태와 다르다는 데에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명 본연의 모습이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문명은
발달한다는데 세상은 왜 어지럽게만 되어가고 있는가. 문명과 평화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인가.
중앙박물관에 있는 청동미륵반가상을 보면 왜 그렇게도
좋은지. 천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저럴 수가 있는가하고 볼 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네덜란드의 예술가 베르메르의 소녀상, 그 옆얼굴 그림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맑아지는 듯싶습니다. 이태리의 현대화가 모란디의 정물그림을
볼 때면 선방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저 심원한 곳으로 나의 마음을 끌고 가는 것일까요.
지금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예술도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성에는 안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분모(分母) 위에 변하는 분자(分子)가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영원입니다. 요즘 세상이 영원을 잃어버리고
생하고 멸하는 찰나(刹那)에 매여 있는 것이나 아닌지. 아름다움은 영원과 한
몸인 것을 나는 믿고 싶습니다. 영원이란 다른 말로하면 사랑입니다.
그림이란 것이 사랑을 분모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변함없는 진리라고 나는
믿고 싶습니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흘러나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이 흘러나옵니다. 나는 일손을 놓고 곡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듣습니다. 아름다움에 취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