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3년 성서와 문화

동북아시아 기독작가회의의 의미와 평가

성서와문화 2009.12.28 16:01 조회 수 : 1247

 
[ 작성자 : 사이쿠사 레이조(三枝禮三)· - 목사 ]
 
여름 끝에 도쿄(東京)에서 열린 격년 개최 9회째인 <동북아시아 기독작가 회의>에서 삿뽀로(札幌)로 돌아오니, 현관 옆의 목근이 활짝 펴 맞아주었다. 벌써 30년도 전에 ‘품위 있는 꽃이 피는 나무예요’ 라며 묘목상 할머니가 권하는 대로 아내가 사서 심은 새끼손가락만한 굵기의 어린나무였다. 물론 그 이름조차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울타리를 넘어 튼튼하게 뻗어 올라, 리본 같은 하얀 꽃을 풍성히 피우고 있다. 여름의 해질녘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보고 절로 맑고 서늘한 기운을 바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그 꽃이 ‘무궁화’라 불리는 한국의 나라꽃임을 아픈 역사 삽화와 함께 처음으로 네게 가르쳐 준 이것은 시인인 김원식 씨이다.
그것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찬송 가사를 남긴 중학 교장을 지낸 남궁억씨가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무궁화 묘목을 키운 일이 일제 관원에게 발각되자 투옥되어 옥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 목근이 필 때마다 거기에 순백의 치마저고리 같은 맑고 서늘한 바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그 이야기를 나 자신의 죄과의 아픔으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시인 김원식씨와 극작가 타카도 카나메(高堂要)씨의 교류로부터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 문학자의 예술적 교류를 바라며 생긴 것이 <동북아시아 기독작가 회의>라는 일종의 예술교류체라 알고 있다. 타카도 카나메는 작가 시이나 린조(推名麟三)의 동지며, 후계자로서 문학을 통하여 복음을 증언하고 싶은 뜻에서 생겨난 문학운동 <たねの會(씨알 모임)>(프로테스탄트 문학집단)의 리더였다. 그 일원이었던 나도, 서울에서 열린 문학회의에 그에게 강제되다시피 참가했었는데, 그 때 그를 따라간 곳이 또한 큐슈(九州)에서 옥사한 한국의 크리스찬 시인 윤동주의 시 <서시>가 새겨진 연세대학교 캠퍼스 안의 비석 앞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 시에 조사(照射)된 나는 온몸으로 수치감을 느끼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카도 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일본 그리스도 교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위촉을 받아 “음부에서 온 사자(使者)”라는 희곡을 썼다. 지난 2차 세계대전 중 국책에 영합하여 전쟁에 협력한 일본 그리스도 교단의 죄과를 고발한 희곡이다. 그것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실은, 패전 직전에 일본군 내에서 탈주해 온 K라는 한국인 벗으로부터 처음으로 일본인으로서의 자기 죄를 단죄 받은 덕분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는 그 후 마지막 강연이 된 도쿄(東京)의 평화집회 강연에서 말했다. 신학교 시절부터의 친구로 무슨 말이든 나눠왔던 한국인의 벗이 암으로 죽기 전에 타카도와 공통의 벗이었던 김씨에게 고백한 사실은 타카도에게는 아직 이야기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만일 그걸 듣는다면, 그는 얼마나 견딜 수 없는 비통한 심정에 시달릴지 모르니까 라는 깊은 우정이 담긴 무서운 말이었다고 한다. 친구가 꿰뚫어 본 자기 정신의 나약함을 깨우쳐 받음과 동시에 친구로 하여 대표되는 민족과 민중 속에, 자기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결코 속속들이 알 수 없고, 아무리 보상하려 해도 결코 완전히 보상할 수 없는 깊은 상처, 일본인에 의해 가해진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아직도 숨겨 있음을 타카도는 통감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식씨와 타카도 카나메씨의 소원에서 발족한 그 예술교류 운동의 일환으로서 이반 씨의 희곡 <총검과 처용무>가 타카도의 대본으로 도쿄, 서울, 속초에서 공연되었다. 그것은 3.1독립운동 때, 일본제국의 관헌과 군대에 의해, 마을 남자 전원이 교회당 안에서 학살된 제암리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우리가 거기서 엿본 것이야말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도저히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것, 아무리 보상하려 해도 완전보상이 불가능한 것의 편린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용서받아서는 안 되는 가해자와 용서해서는 안 되는 피해자 사이의 넘어뜨릴 수 없는 불가능한 벽이, 거짓 없는 냉험한 현실로서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최후의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처용의 춤이 보여주었다. 그 춤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넘어뜨릴 수 없는 벽이 여전히 그대로 있으면서도 오직 위로부터의 수직의 빛에 의해 초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러러 보게 해주는 것이었다.
타카도는 십자가 위에 그 수직의 빛을 우러러 보았으리라. 십자가 위에서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 관철된 심판과 속죄와 용서와 화해의 빛을 우러러 봄으로써 그는 오직 그것을 믿고 증거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업을 모사(模寫)하고 모방해 보이는 어릿광대로서 불가능한 속죄와 화해의 직무에 나선 것이리라. 그 일에 공감을 가지고 호응하여 격려해준 것이 김원식씨였다. 그러나 이것은 두 사람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대로 <동북아시아 기독작가 회의>라는 예술교류체가 성립할 수 있었던 근거이며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문학의 교류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 문학이라는 말일게다. 그러므로 문학의 교류는 결코 다쳐진 좁은 일부 문학애호가의 취미적 교제 따위가 아니라, 전 인간, 전 세계의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전인적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교회의 지도자였던 데르트리아누스도 쓰고 있다. “이 세상의 일에 좀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라. 지상(地上)의 것을 맡겨지지 않은 자에게 어떻게 하느님의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라고. 이야말로 문학이 요청받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그 요청에 잘 응할 수 있느냐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 세상의 일, 인간의 일이라고 하지만, 깊이 감추어진 그것을 밑바닥까지 비추어내기란 인간의 손에 든 등불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랄만한 말이 요한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라.”(2:25) 바로 여기의 인간의 일, 세계의 일을 밑바닥까지 비춰내 주는 광원(光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문학은 그 빛을 우러르며, 그 빛 아래서 모든 인간의 일, 모든 세상의 일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문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윗이 그것을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편 36:9)고 노래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이미 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예술교류체는 한일 양국이 크리스찬 문학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소설, 시 희곡을 놓고 함께 공부해 왔는지 모른다. 그 동안 윤동주 시집 외에 김원식 편집의 한국 시인 39인 시집 <명동의 그리스도>가 모리다 스스무(森田 進) 역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또 나아가서 이반의 희곡 <샛바람>과 타카도가나메의 희곡 <돈마>의 서울.도쿄 공동공연, 그리고 3.1 독립운동을 기념한 <총검과 처용무>의 도쿄와 서울 공연, 타카도 작 <주정뱅이 말메라도프>의 모스크바.서울.도쿄 공연, 또 다른 3.1절 기념의 이반 작 <그날, 그날에>의 도쿄 공연 등, 언듯 기억해 내도 참으로 열매가 풍성하다. 그러나 더한 열매는 인간 상호간의 만남과 교류체험이었다.
카토 슈이찌(加藤 周一)는 <일본문학사 서설>에서 일본의 문화, 문학은 고래로 초월적 절대자를 내포하지 않는, <지금 여기 뿐> 이라는 현세적 공리주의의 전통적 가치관 아래 닫혀진 마을 사회에서 다만 미적(美的) 세련만을 다해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나츠메 소세끼의 말대로, 그것의 변화는 내발적(內發的)이 아닌 외발적(外發的)으로만 일어나며, 표피에만 일어난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예술교류체를 통하여 연대해 주는 한국 크리스찬 문학인에 의한 부단한 이의제기(二儀提起)와 엄한 질의(質疑)가 앞으로도 필요불가결한 소이이다. [정종화 옮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 성구명상 -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성서와문화 2009.12.28 1609
31 피카소와 히틀러 성서와문화 2009.12.28 1333
30 로댕과 조각 성서와문화 2009.12.28 1417
29 음악 片紙 IX - ‘풍요로운 음악을 위하여’ 성서와문화 2009.12.28 1211
28 크리스마스 성서연구 -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 성서와문화 2009.12.28 1379
27 물 과 물 - 엔도 슈사꾸의 『깊은 강』에 대하여 성서와문화 2009.12.28 1363
» 동북아시아 기독작가회의의 의미와 평가 성서와문화 2009.12.28 1247
25 게티 센터에서 성서와문화 2009.12.28 1222
24 기독교에서 본 삶과 죽음 성서와문화 2009.12.28 1214
23 빈민이 벼랑 끝으로 밀리고 있다 성서와문화 2009.12.28 1261
22 신앙 없는 천재와 재능 없는 신자 성서와문화 2009.12.28 1299
21 ‘모차르트 처럼....’ - 음악 片紙 VIII 성서와문화 2009.12.28 1287
20 크리스타 파울에 대한 추억 성서와문화 2009.12.28 1228
19 현진건과 이상화 성서와문화 2009.12.28 1350
18 50년만의 시 한 구절 성서와문화 2009.12.28 1285
17 컴퓨터와 시인 성서와문화 2009.12.28 1203
16 권력 지향적 교회 성서와문화 2009.12.28 1212
15 무언(無言)의 실천자, 그 험난한 예술가의 길 성서와문화 2009.12.28 1270
14 음악 片紙 VII - 혼돈 속의 비젼 성서와문화 2009.12.28 1237
13 “명예의 문화”와 성서의 여성 성서와문화 2009.12.28 1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