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3년 성서와 문화

게티 센터에서

성서와문화 2009.12.28 16:01 조회 수 : 1219

 
[ 작성자 : 유동식 - 신학 ]

1. 미술의 전당 게티 센터
얼마 전 나성 LA에 머무는 동안 유지식 교수 내외와 함께 집사람하고 게티 센터를 방문했다. LA 서북부에 위치한 싼타 모니카의 한 산등에 자리 잡은 하얀 건축물로 된 박물관이다.
미술작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이라지만 그 건물 자체가 기념비적인 현대건축의 한 작품이다. 산은 받침대이고 그 위에 놓여 있는 작품이 바로 게티 센터로 불리는 박물관이다.
미국의 한 부호 폴. 게티(Paul Getty)의 유언에 따라 그 재단이 근자에 세운 것이며, 이 건물은 현대건축미술사에 기여한 작품이 되었다. 이것은 가장 고전적인 자료를 써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을 한 작품이다. 여기에 사용된 만육천 톤의 돌들은 로마의 콜로세움과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을 지을 때 사용된 돌들과 같은 질의 것을 이태리로부터 운반해 온 것이다.
동서남북으로 자리 잡은 네 동의 미술관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정원과 부대 건물들이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산재해 있다.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한 사설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문짝만도 삼천여개라 하니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2층으로 된 각 미술관에는 각 방마다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 아래층에는 고대 조각품, 도자기, 장식미술 등 고전적인 것들이 진열되어 있고, 위층에는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LA의 침침한 회갈색 빌딩 숲을 벗어나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게티 센터, 그리고 방마다 세계적인 걸작들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들을 보면서 나는 성서를 연상했다. 무수히 많은 도서의 숲 속을 벗어나 산상에 우뚝 자리 잡고 있는 성서를 연상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로부터 묵시록에 이르는 66권의 책은 마치 박물관의 방들과 같이 보물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역사, 율법, 시가, 예언, 복음, 서신 등 보물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박물관이 성서이다.

 

2. 고전주의와 인상파
네동의 미술관들을 하루에 감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우선 80세 전후의 우리 일행에게는 체력적으로 불가능했다. 오전에 한 시간 그리고 오후에 두 시간 정도를 도는데도 피곤을 느꼈다. 감상했다지만 수박 겉핧기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아래층은 스쳐가는 통로로 삼았고, 2층에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나는 아래층에서 구약성서를 연상했고, 위층을 돌면서는 신약성서를 연상했다. 여기에는 내가 공부해 온 경력이 반영된 듯하다. 원래는 구약을 토대로 신약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구약을 그저 스쳐갔을 뿐이고, 곧장 신약에만 매달린 채 평생을 지내 왔다.
2층에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작품들이 많았다. 빈틈없는 구도와 치밀한 사실주의적 묘사들은 흡사 사진을 보는 듯했다.
대체로 50호 이상의 거작들이 많았다. 신화적인 주제와 인체의 묘사, 그리고 초상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술사적인 가치는 높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정감이 가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내가 친근감을 느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곳은 서관 2층에 있는 프랑스 인상파의 작품들을 전시한 방이었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모네, 세잔느, 르노아르, 반 고호, 피사로, 시스레이 등의 작품이 한두 점씩 골고루 전시되어 있었다. 수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적인 감상이 가능하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인물보다 대자연에 심취했다. 밝은 색채로 조화를 이룬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모네의 수양버들이 늘어진 물의 정원, 고호의 전원풍경, 피사로의 잔설이 있는 마을길 등이 인상에 남는다.
그들은 사물의 고정된 불변의 고유색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태양빛의 반사로 변화무상한 색채들을 발산할 뿐이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이것을 포착하고 화폭에 옮긴다. 따라서 인상파의 그림은 극히 피상적이고 경박하다는 평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피조물들이 갖는 무상성(無常性) 곧 덧없음을 깨닫고 있는 화가들이다. 그리고 그 무상한 것들이 하늘의 빛을 받을 때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것이며, 이것을 포착해서 화폭에 담으려는 것이 인상파 화가들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종교적인 예지를 지닌 예술가들이다. 그러기에 세잔은 색채 속에 사물의 깊이를 표현하려고 했고, 고호는 색채를 통해 자신과 사물의 내면적 생명의 역동성을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의 그림에서 피부에 와 닿는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신약성서를 공부한다고 하지만 내가 평생 매달려온 책은 요한복음서이다. 요한복음을 통해 성서 전체를 보아온 것이며, 세계와 인생을 또한 보아왔다.
나는 요한복음에서 따스한 정감을 느낀다. 어쩌면 인상파의 그림에서 느끼는 그 정감과 같은 것일는지 모른다.

 

3. 게티 센터에서 본 LA
동관과 북관 두 건물 사이는 나지막한 돌담으로 이어져 있고, 지붕 가까이에는 대들보 같은 것이 건너질러 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네모난 거대한 액자와 같다. 그리고 그 액자 가득이 보이는 것이 LA 시가의 풍경이다. 그 앞을 지나던 나는 순간 거대한 벽화를 보는 듯했다. 그 날은 마침 소나기가 지나간 뒤라 무지개까지 찬란히 하늘을 수놓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LA 시가는 틀림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LA는 서울만한 인구를 가진 대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맥시칸과 흑인과 아시아인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인종적 다원사회이다.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다운타운과 비버리힐 등 발달된 시가지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구질구질한 인상을 주는 상업도시였다. 그 속에 이민 간 한인들의 중심지인 코리안 타운이 끼어 있다.
나는 LA가 그리 아름다운 도시라고 느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게티 센터에서 바라본 LA는 그 어느 도시 보다도 아름답게 보였다. 시점에 따라서는 이렇게도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는 세상을 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일대 가치 전환이 일어난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귀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빌3:8) 그리고 하치않게 생각했던 인생이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게티 센터에서 한국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하나같이 부패한 정치인들의 각축장, 땅에 떨어진 윤리와 사회 질서, 그 어느 하나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성서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내게는 두 시점이 떠올랐다. 하나는 실존적 시점이다. 부조리와 고난 속에서도 하늘나라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시점이다. “높은 산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게 하는 시점이다.
또 하나는 우주적 종말론적 시점이다. 하나님의 뜻이 역사 안에 실현될 종말에 대한 신앙이다. 그 날에는 쓰레기 같은 한국에도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지배하는 하늘나라가 오리라는 믿음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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