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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본 삶과 죽음

성서와문화 2009.12.28 16:00 조회 수 : 1209

 
[ 작성자 : 이정배 -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 ]

모든 종교는 삶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삶과 죽음에 직면하여 반복·재생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초혼재생, 불교의 윤회사상 그리고 기독교의 영생부활 등은 모두 삶의 연속성과 동일성에 관한 답변들인 것이다. 이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특별히 인간의 삶이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고 가르친다. 하느님을 ‘생명의 근원’(시편 36편 1절)으로 직관하는 창조주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대 기독교적 창조신앙 안에서 삶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며,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자 계명이 된다. 즉 삶이란 은총이며 선물이고 영속적으로 보증된다는 특별한 신앙직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적 사고는 성서와는 대단히 이질적이다. 영육 이원론의 희랍적 사고가 기독교 안으로 유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창조신앙은 본래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구원되는 ‘생명의 충만함’(Fulle des Lebens)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 육체와 영혼의 문제 그리고 죽음과 영생의 문제를 논할 수 있다.

 

1. 인간 생명의 특별함
어느 시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이 육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독교는 육신을 지닌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발생하는 갈등을 영과 육의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희랍 사상처럼 인간의 육체를 영혼의 무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영과 육의 개념 쌍을 사용한 것은 하느님의 생명의 영, 루아흐로 가득한 생명과 하느님의 동반자이기를 포기한 인간 사이의 선을 긋기 위함이다. 육에 속한 삶은 자기 자신과 갈등을 겪는 불행한 생명을 이름이며, 영에 속한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충일된 생명을 일컫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기독교적 생명이란 영혼과 육체의 근거인 하느님 영을 말할 뿐이다. 인간은 하느님 영을 지니기 때문에 혼과 육을 지닌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혼, 즉 네피쉬 역시 인간의 몸, 육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육체가 몸의 기관이라 한다면, 네피쉬는 몸의 기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의 혼(魂)이 주를 앙망하고 있다’고 했을 때 이 때의 혼이 육체의 일부분인 목구멍(俟)을 나타내는 ‘네피쉬’라는 단어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목구멍이란 공기, 물, 음식물 등 구체적 물질이 출입하는 기관으로서 인간이 홀로 자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히브리 성서가 구체적 욕망을 지닌 인간의 육체적 삶을 긍정하고 있음을 뜻하는 바이다. 따라서 구약 성서적 생명관은 하느님의 영과 인간의 혼, 그리고 몸(육체)이 서로 구별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약성서 안에서도 인간생명은 비오스, 푸쉬케 그리고 조에 라는 세 측면으로 설명되어진다. 비오스로서의 생명이란 인간생존의 기간, 생애, 일상생활 등 현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생명을 가리킨다. 푸쉬케-이것은 구약성서 네피쉬의 희랍어 역이다-로서의 생명은 ‘내 마음(푸쉬케)이 하느님을 기뻐하였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 생기, 혼 등의 의미를 지닌다. 신약성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조에’로서의 생명이다.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며 그와 관계하는 생명으로서 죽음과 대비된 생명 그 자체를 뜻한다. 영원한 생명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 가지의 생명 양태는 각각 구별은 되나 결코 분리해서 추상적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통합적인 몸으로서의 생명일 뿐이며 생명의 문제는 구체적, 활력적인 인간의 신체성(비오스로서의 생명) 안에서 자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약성서는 비오스로서의 생명의 차원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유한성을 지적하며, 비오스를 초월하는 조에의 생명성을 지향하고 있다. 예수의 생명이 죽을 인간의 몸(육체)속에 나타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약성서는 자신의 몸이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질 것을 권면 하고 있다(로마서 12:1). 여기에서 하느님의 영은 인간에게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처럼 넘쳐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죽음과 그 이후
성서는 자연(비오스) 그대로의 몸인 인간은 죽음이라는 엄숙한 종국을 맞이하나 하느님의 영을 모신 몸으로서는 죽지 않고 부활한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첨단 의학은 인간의 생물학적 몸의 수명을 좀더 연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인간의 죽음 자체를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죽음을 인간의 패배로서 이해하지 않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살 희망으로 이해하는 것이 기독교 고유의 특성인 것이다.
본래 죽음이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영, 곧 생명의 원천이 떠남을 의미했다. 하느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면 영혼과 육체를 지닌 인간의 몸 자체가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얼굴을 감추시고 인간을 잊어버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육체적 생명이 소멸한 뒤라도 인간이 하느님의 권능 속에 있을 수 있다면 죽음 역시 전혀 무가치하지 않다는 확신을 지녔던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란 생명과 반대되는 것이면서도 하느님의 능력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신약성서 역시 그리스도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영원한 생명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속에서 그 실재(Reality)가 드러났듯이 그리스도로 인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인간에게서 죽음의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은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육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린도전서 15:42-44) 이 말씀에서 우리는 희랍적인 영혼불멸 사상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몸의 부활, 곧 영원한 생명에의 약속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영원한 권능의 하느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생명으로 초대하는 은총의 사건 속에서 기독교는 사망아 너의 쏘는 가시가 어디 있느냐 하며 죽음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사건, 곧 죽음까지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이 너무도 크고 강해서 그것을 이길 만한 세력은 존재하지 못한다. “내가 확신하오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든가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일지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로마서 8:38-39). 비록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나타날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이 현세적인 어떤 존재양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지시하지만 그러나 이런 형상, 곧 신령한 몸의 부활은 결코 추상적인 언표방식만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인간이 그 사람 개성에 있어서 부활하는 경우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서 있을 때, 하느님의 영을 받고 있는 경우,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죽음이 인간의 궁극적인 적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적 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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