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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없는 천재와 재능 없는 신자

성서와문화 2009.12.28 15:59 조회 수 : 1299

 
[ 작성자 : 이상범 - 밀알교회 명예목사 ]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아시시 성당이 교회를 새롭게 단장하기로 했다. 책임을 맡은 쿠투리에 신부는 전란으로 상처 입은 교회 내·외부를 단순히 복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단장할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실력파 미술가와 건축가들의 도움을 받아내기로 한 것인데, 초청한 미술 및 건축계 인사들의 면면은 오늘날 그 이름을 들으면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하게 될 거장들이 망라되었던 것이다. 루오를 비롯해서 보나르, 브라크, 뤼르사, 레제, 샤갈, 마티스, 리치에 등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였다. 교회 지도자중 더러가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초청받은 미술인 가운데는 유대인도 끼어 있고, 공산당원이나 무신론자도 끼어있으니 어떻게 교회 미술을 그들의 손에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일어날 만한 논쟁거리가 아니었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을 처음 입안했던 쿠튀리에 신부는 말했다.
“그리스도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서는 믿음을 가진 천재들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재능이 없는 신자보다는 신앙이 없는 천재가 더 이 일에 적합할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무릇 위대한 예술가란 영감을 받은 이들로, 정신적 심리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정신적인 주제에 대한 직관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근자에 우리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찬송가를 편찬하면서 재기되어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들으면서, 문득 반세기 전에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찬송가가 신앙고백이요, 기도란 점에서 분명히 신앙적이냐 아니냐는 검증을 받아야하겠지만, 동시에 한 시대의 예술작품으로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쿠투리에 신부가 염려했던 바, 예술적 영감이 없으면서도 형식적으로 신앙인이라는 우월의식이 패거리적 독점권과 연계되어,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서 해보는 말이다.

 

낭만주의 사조라는 격랑의 시대를 산 프란츠 리스트를 어떤 각도로 보아줄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극단적으로 유부녀나 후리며 기독교 윤리를 어지럽힌 바람둥이로 볼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 편,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경건한 교회음악가의 기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말년의 리스트는 아예 수도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수도원 깊은 곳에서 교회음악에만 전염하지 않았는가? 스탕달의 표현을 빌린다면 리스트야말로 <적과 흑>을 한 인격 속에 동시에 지니며 산 사람이라 할 것이다.

 

누가 언제 누구의 요청을 받아 누구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느냐를 두고 신경을 쓰기 보다는 그의 작품이 음악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한 작업이었느냐에 대해서 더 깊은 고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세속적으로나 다른 종교를 위해서 훌륭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작곡가라면 참으로 훌륭한 찬송가도 만들 수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일생을 찬송가만 썼으면서도 제대로 된 작품 하나를 쓰지 못한 삼류 예술가에 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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