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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의 시 한 구절

성서와문화 2009.12.28 15:56 조회 수 : 1285

 
[ 작성자 : 허만하 - 시인 ]
 
전라도 순창에 있는 회문산(해발 830m)이란 낯선 이름을 처음 일게 된 것은 이태(1922-1997)의 『남부군』을 읽었을 때였다. 이 논픽션에 나오는 여러 지명이랑 빨치산 사령부 모습은 나와는 무관한 희미한 꿈속의 것이었다. 그런 몽환 같은 이미지가 뚜렷한 윤곽을 띄고 되살아 난 것은 내가 이 산의 정상 가까운 자리에 섰을 때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장군봉(780m)에 이르는 부드러운 능선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웅크리고 있는 짐승 같은 그 모습은 어릴 적 대구의 금호강 뚝길에서 바라본 침산 모양을 떠올리게 했다. 그 짐승의 머리가 장군봉이었다. 이와는 정반대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하나의 장관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앞뒤로 첩첩이 겹치고 있는 능선의 물결이었다. 그 능선들은 소리 없는 음악이었다. 맨 뒤의 보일락 마락한 능선이 지리산 산 덩어리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래 만에, 정말 오래 만에 독일어 시 한 구절이,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떨어지는 것을 깨닫고 놀랬다. “위베르 알렌 깁페른/ 이스트 루/ (Ueber allen Gipfeln/ ist Ruh- 모든 붕우리 위에 휴식이 깃들고”란 한 구절이었다. 그것은 의예과 독어시간에 배웠던 괴테(1749-1832)의 시 첫 구절이었다. 의예과 부장이던 김달호 교수님이 움라우트 발음을 위하여 입을 오물리던 일, 그리고 젊은 너희들이 언젠가 나이가 드는 날, 이 단순한 시의 깊은 맛을 알게 될 것이란 예언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 일 까지 생각났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그 한 구절이, 내 몸의 어디에 숨어 있다가 50년 만에 느닷없이 나타났는지 내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이 내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시 자신의 힘이란 것만은 분명했다. “위베르 알렌 깁페른/ 이스트 루우”로 시작하는 여덟 줄의 그 시 전문을 대강의 뜻(직역)과 함께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한다. 원시의 아름다운 운율이 번역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봉우리 위에
휴식이 깃들고
모든 가지 끝에
바람 기척
하나 없네
숲 속 새 지저귐도 멎었네
기다려라 다만, 머지않아
너 또한 쉬게 되리니.

 

Ueber allen Gipfeln
Ist Ruh
In allen Wipfeln
Spuerst du
Kaum einen Hauch;
Die Voeglein schweigen im Walde.
Warte nur, balde
Ruest du auch.

 

시 감상의 권위자로 이름 있던 에밀 슈타이거 (스위스 취리히 대학 교수)는 서정시의 가장 순수한 예로 괴테의 이 시를 들고 있다. 이 시 제목은 「나그네의 밤 노래」(Wanderers Nachtlied)다. 저녁 무렵은 아니었지만. 내가 서 있던 자리 둘레는 고요했다. 그 보다, 장수 너머 지리산 쪽 먼 산 봉오리들은 안개인지 이내인지 자욱한 기운을 거느리고 태고의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아내와 함께 바라본 그 아득한 풍경이 반세기만에 괴테의 시를 되살려 주었던 것이다. 풀숲에는 까치수염이 휘어진 흰 꽃을 달고 있었다.
괴테가 이 시를 쓴 것은 1783년의 일이니, 25세 남짓한 이때부터 그는 자연에 둘러싸인 자신을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무렵 바위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다. 한해 뒤 그는 「화강암에 대해서」란 산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의 순서도 그렇지만, 그는 무생물에서 시작하여 생물을 거쳐 인간에 이르는 자연계의 질서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 시인이 쓴, 한 산문 제목은 「자연」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과 평가를 가지고 있는 잡지 『네이처』(Nature)의 제호가 괴테의 「자연」이란 글에서 딴 것을 알게 된 것은 내 딸이 부쳐준 한 유인물 덕분이다. UCLA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잡지 창간호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글은 과학 논문이 아니라 괴테의 『자연』(Nature)이란 글이다. 딸은 그것을 복사하여 나에게 부쳐주었었다. 그의 산문 첫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 우리들은 자연에 둘려 싸여있고 또 그 품속에 안겨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자연에서 떼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자연 바깥으로 떠나지도 못한다.” 이런 글을 과학논문 잡지 창간호 머리에 싣는 유럽 문화가 가지는 전통의 뿌리와 깊이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정신의 풍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사회의 메카니즘에 묶여 있는 톱니바퀴의 하나로 나날을 살고 있는 인간이 찾아야 할 정신의 고향이 바로 자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이데거(1871-1976)가 횔더린(1770-1843)의 시에서 귀향의식을 찾아 낸 것도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정신적 실향민이 되어 있다는 인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이데거는 “모든 사색은 시작( 詩作)이고 모든 시작은 사색이다”라고 말했다. 대단한 말이다. 하이데거에 이르러 언어는 비로소 사유의 깊이라는 새로운 성질을 자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동안 시적 언어는 상상력을 담보로 지나치게 감각에 기대어 온 것을 반성해야 할 것 같다. 50년 만에 낯선 회문산 산정 가까운 자리까지 나를 찾아와 주었던 괴테의 시는 감정을 숨기고 있는 아름다운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한국의 시도 이제는 철학과 사귀어야 할 분수령에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상을 장미의 꽃처럼 느낀다”는 엘리어트의 말을 살펴 보드라도 선행하는 것은 사상이다. 이 사상을 향기로 만드는 언어의 특수한 한 양식이 시다.
철학자의 사색이 개념적 사유인데 반해서 시인의 사색은 심정의 사유다. 하이데거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베풀었다. 그가 만년(1959)에 이르러 낸 『언어의 길 위에서』라는 저서의 한 부분에서 트라클( 1887-1914)의 시 「겨울 저녁」을 소재로 존재와 시적 언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언어는 먼저 존재자의 이름을 짓는다. 이름 짓는다는 것은 사물을 언어 쪽으로 불러내는 것이라는 거의 시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그의 철학 안에서 시는 비로소 사유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흔히 언어는 사람들이 의사 전달의 도구라고 생각하기 일 수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언어 안에서 사물은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언어가 가지는 완전한 자율성(독자적인 생명)을 발견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말하는” 것이다.
회문산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분명히 역사의 현장이었다. 복원되어 있는 빨치산 사령부의 구조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캄캄한 굴에서 나온 나는 굴 입구 초록색 풀숲 속에 피어있는 야생의 원추리 붉은 꽃이 눈부신 것을 보았다.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427-347 BC)의 “시작(poiesis)이 역사(historia)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장중하다.” (『시학』)는 말이 생각났던 것은 회문산 자락을 감고 도는 섬진강 상류를 건너는 강진교( 조그마한 다리다.)를 지나 천담 마을 쪽으로 길을 잡는 때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말은 회문산 산정에서 거의 50년 만에 재회했던 괴테의 시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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