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3년 성서와 문화

컴퓨터와 시인

성서와문화 2009.12.28 15:56 조회 수 : 1203

 
[ 작성자 : 유동식 - 신학 ]

1. 오늘의 한국
우리는 과학·기술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다.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국민소득 일만 불 시대를 마지한지도 오래다. 방방곡곡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해마다 늘어나는 골프장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1,000만대를 넘는 자동차들이 굴러다니고, 휴대폰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컴퓨터와 TV가 넘쳐흐르는 정보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음식점과 노래방이 전국을 덮고 있는 향락의 세상을 마지하게 된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그러나 한편 한국 사회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국민소득 일만 불 시대라고 자랑하던 때가 이미 8년이나 지났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도 제자리 거름만 하고 있다. 고급인력들이 실업자가 되어 우왕좌왕하고 있는가 하면, 집단이기주의가 조정하는 데모와 파업사태들은 끝일 줄을 모른다.
경제는 아시아의 상위권에 속한다지만 부정부패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정치와 권력은 불법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왔다. 그런 틈을 타서 온갖 사기행각이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심보로 만든 카드 빚으로 인해 강도와 살인과 자살이 빈번해졌다.
이혼율은 세계의 2위요, 제왕절개율은 세계의 1위라고 한다.
한마디로, 산업과 경제는 성장해 왔는데 인간성은 날로 퇴락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문제는 가치관이다. 본능적인 소유욕과 쾌락욕이 우리들의 가치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한, 기술문명의 발전은 점점 어두운 세계를 만들어 갈 뿐이다.
우리는 이 어둠의 늪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가치체계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되게 하는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2. 컴퓨터와 시
얼마 전 TV토론에서 “한국과 21세기”를 다룬 일이 있었다. 서구의 저명한 미래학자 두 분을 초청한 좌담회였다.
대충 이러한 말들이 오고 갔다.
그간 한국의 산업과 경제발전은 놀라운 데가 있다. 아시아의 후진국들은 한국을 모델로 삼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식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은 이미 그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부분적인 구조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삶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한국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결국 문화와 미래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인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실마다 컴퓨터는 있는데 시가 없더라.”고 했다.
과연 시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이다.
시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언어예술이다. 시(詩)라는 한자는 말씀 언(言) 변에 모실 시(寺)를 단 합성어로 생각된다. 말씀이란 인간의 말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다. 따라서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통로요 길이다. 이 말씀을 모시고 있는 것이 시요 시인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말로 세상에 전하는 예언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태양이라면 시는 그 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이다. 현대는 실로 자신의 존재근거인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두운 밤거리이다.
어두운 밤 속에 잠들고 있는 오늘의 한국을 깨울 수 있는 이는 시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는 시인이요, 그를 믿고 받아드린 우리는 시적으로 살아야 한다.

“대단한 이득, 하지만 인간은
이 대지에서 시인적으로 산다.” (횔데르린)

우리는 컴퓨터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시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3. 기술과 예술
기술을 뜻하는 ‘테크닉’과 예술을 뜻하는 ‘아트’의 어원은 다같이 헬라어 ‘테크네’(tekne)에 있다. 근세에 이르기 까지 ‘아트’란 말도 기술을 의미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과 구별되는 예술이 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기술이 예술화 된 것이다.
기술로만 그린 그림이 있다. 간판장인이 그린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 그것이다. 작가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객관적인 작품이다. 말하자면 인격적 혼이 들어 있지 않은 그림이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 일상성 속에 익숙해짐으로서 사람들로부터 망각되어 가는 그림이다.
이발소 그림과 대조적인 것이 예술작품이다. 여기에는 예술가의 혼이 들어있다. 혼은 하늘에 속한 영성이다. 영성은 본래적 인간의 인격적 핵심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자신의 영성을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를 형상화 하는 것이 창작이요, 예술가의 작품이다.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이름을 밝힌 사인이 들어 있다. 이것은 예술가의 인격적 혼이 들어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그저 거기에 있는 객관적인 물건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감상자가 발을 멈추고 대화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가 예술작품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하늘의 소리를 듣고, 인생과 사물의 본래적 존재양식에 눈뜨게 된다.
기술문명은 육에 속한 겉 사람이 만든 이발소 그림이다. 보기에 좋고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의 빛을 전해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어두운 밤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문화의 앞날을 밝게 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의 기술이기 보다 시와 예술이다. 오늘의 한국 교육이 당면한 과제는 입시 위주의 기술교육이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을 육성하는 데 있다. 육에 속한 겉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영에 속한 속사람에 눈뜨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종교요 기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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